병원들, 전문의 대신 전공의로 비용 절감…“의료 대란에 한몫”

인턴·레지던트 ‘값싼 인력’에 기대…‘빅5’는 10명 중 4명꼴

일본 10%와 대비…정부 “비정상적 의료체계, 반드시 해결”

병원들, 전문의 대신 전공의로 비용 절감…“의료 대란에 한몫”

‘응급’엔 때 없는데…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의 집단 이탈 일주일째인 26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한 주 동안 코드블루(심정지 환자 발생 시 의료진 출동을 명하는 응급코드)가 많았던 것 같아요. 환자분들이 잘못될까 하루하루가 걱정이에요. 당직을 설 때면 ‘제발 무사히 넘어가라’ 하면서 일하곤 합니다.”(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소속 진료보조 간호사 A씨)

“전공의가 없어 외래 초진환자 진료를 볼 수가 없고 입원도 어렵습니다. 당직 교수의 연락이 늦어져서 산소 공급이 늦어질 뻔하거나, 전공의가 없어 심장 수술을 못할 수 있다는 환자의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습니다.”(윤수미 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인하대병원노조 수석부위원장)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일주일째 이어진 26일 양대 노총의 병원 노동자들이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를 촉구했다. 이들은 전공의들의 단체행동에 대해 명분 없는 집단 진료 거부라고 비판했다.

의료노련은 당장의 인력 부족으로 인해 응급·중증 환자에 신경쓰다 보니 병원 내 감염관리를 위해 시행하는 CRE 검사(카바페넴분해효소 유전자 검사)가 중단됐다고 전했다.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가 이 균에 감염될 경우 치사율이 40~50%에 이른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암 치료를 위해 입원한 환자가 퇴원당하고, 투석치료와 혈액검사도 미뤄지고 갈 곳 없는 급성기 환자들은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중증·응급 환자가 주로 찾는 대형병원이 피수련생인 전공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기형적인 인력구조가 의료대란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공의는 의사 면허를 받았지만 특정 과목의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동시에 교육받는’ 인턴·레지던트를 통칭하는 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빅5 병원의 전공의는 2745명으로 전체 의사(7042명)의 40%를 차지한다.

정부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일본은 전공의 의존 비율이 약 10%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30~40%, 어떤 병원은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라며 “상당히 정상적이지 않은 의료체계로, 반드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대형병원들이 전공의에게 의존하는 이유는 전공의가 비교적 ‘값싼’ 인력이기 때문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전문의보다 전공의를 현장에 배치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든다. 민간의료 중심의 의료현장에서 상대적으로 수가가 낮은 필수의료과 전문의를 병원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인력체계 탓에 전공의 절반 이상은 주당 80시간 이상을 근무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 과로가 특히 심한 필수의료 분야에선 상급종합병원의 전담전문의 배치 기준을 강화하는 등 전문의 중심의 채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보건의료 분야의 한 전문가는 “대형병원들은 중증 환자를 많이 보는데 면허를 막 딴 초보 의사인 전공의에게 일정 역할이 주어진다는 건 환자의 입장에서 봐도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며 “다만 전문의를 더 많이 고용하려면 수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 부분은 국민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서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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