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 수주…‘제2중동 붐’ 기대
삼성E&A로 사명을 바꾼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 잭팟을 터뜨리면서 건설업계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한국 기업이 사우디에서 수주한 공사 중 역대 최대 규모라 ‘제2의 중동 붐’ 기대도 크다.
남궁홍 삼성E&A 사장(사진 왼쪽 두 번째)이 지난 4월 2일 사우디 다란 아람코 플라자 콘퍼런스 센터에서 진행된 ‘파딜리 가스 증설 프로그램 패키지’ 서명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E&A 제공)
삼성E&A, 사우디 가스 플랜트 수주
일본 JGC와 경합 끝 따내
삼성E&A와 GS건설은 최근 사우디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가 발주한 ‘파딜리 가스 증설 프로그램 패키지’ 사업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사업비만 총 72억2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9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북동쪽으로 350㎞ 떨어진 파딜리 지역의 가스 플랜트를 증설하는 사업이다. 파딜리 플랜트는 육상, 해상에서 추출한 천연가스를 전력 생산, 도시가스 등에 쓰일 수 있도록 정제하는 시설이다.
이번 수주는 그간 해외 건설 수주 사업 중에서도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191억달러), 2012년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77억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앞서 지난해 6월 현대건설이 50억달러(약 6조8000억원) 규모 ‘아미랄 석유화학 플랜트 프로젝트’를 따내며 사우디 역대 최대 수주고를 올린 뒤 1년도 채 안 돼 이를 경신한 점도 의미가 크다.
삼성E&A와 GS건설이 공동 수주했지만 사실상 삼성E&A가 사업을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E&A 수주 규모(60억달러, 약 8조원)가 GS건설(12억2000만달러, 약 1조6000억원)의 5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60억달러는 1970년 삼성E&A 설립 이래 최대 규모다.
삼성E&A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핵심인 가스 처리시설을 짓는 ‘패키지 1’과 부대시설을 짓는 ‘패키지 4’ 공사를 도맡는다. 이 공사가 끝나면 하루 가스 처리량은 기존 25억입방피트(2500MMSCFD)에서 38억입방피트(3800MMSCFD)로 52%가량 늘어난다. 삼성E&A는 현재 사우디에서 자푸라 가스 처리, 우나이자 가스 저장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데, 이번 수주로 사우디 대표 가스 프로젝트에 연이어 참여하게 됐다. 글로벌 EPC(설계·조달·시공) 업체인 일본 JGC 등과 치열한 경합 끝에 따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삼성E&A는 “아람코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혁신 성과가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주력 시장 사우디에서 경험이 풍부한 상품을 수주한 만큼 향후 기술력과 품질로 발주처 신뢰를 얻고, 나아가 중동 시장 입지도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우디 등 중동에서 수주 성과가 잇따르면서 ‘제2중동 붐’ 기대도 커졌다. 올 들어 4월 2일까지 해외 건설 수주액은 127억2000만달러(약 17조1600억원)로 전년 동기(61억1000만달러) 대비 2배에 이를 정도다. 연간 수주액이 2015년 이후 처음으로 400억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삼성E&A가 수주 잭팟을 터뜨리면서 향후 실적 전망도 밝아졌다.
삼성E&A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0조6249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9931억원으로 같은 기간 41.3% 늘었고 순이익도 16.8% 증가한 6956억원에 달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수주액도 넉넉하다. 지난해 수주만 8조8000억원으로 수주잔고만 16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번 사우디 수주 외에도 연내 수주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가 꽤 많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TPPI 올레핀 콤플렉스 프로젝트(35억달러), 말레이시아 쉘 OGP(15억달러)가 후보군이다.
김승준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사우디 수주로 삼성E&A는 올 상반기에만 10조원 수주를 달성하게 됐다. 인도네시아 TPPI, 말레이시아 쉘 OGP 수주만 포함해도 최대 18조원 수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난의 세월 이겨내
남궁홍, 사명 바꾸고 수주 전성기 이끌어
올 들어 대형 호재가 쏟아지지만 삼성E&A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그룹 ‘미운 오리’ 계열사로 불리며 고난의 세월을 겪어왔다.
삼성E&A 전신은 1970년 설립된 코리아엔지니어링이다. 삼성그룹이 1978년 인수한 이후 1991년 사명을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바꿨다. 정유, 화학 플랜트 사업에 주력하면서 플랜트 기술력을 차근차근 키운 덕분에 2005년 세계 최대 에너지 플랜트인 ‘사우디 샤크 프로젝트’ 수주를 따내며 업계 화제에 올랐다. 2007년에는 사우디 아람코 정유 플랜트를 수주하면서 삼성엔지니어링의 기술력을 중동이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동 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늘리면서 ‘글로벌 우량 플랜트 회사’로 급부상했다. 해외 플랜트 수주 호황에 직원 수가 늘면서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신사옥을 지어 입주하는 등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해외 공사 덤핑 수주, 현장 관리 등 잇따른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실적 부진에 시달리더니 2013년부터 적자 규모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 한 해에만 1조3053억원 순손실을 내며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핵심 인력을 삼성엔지니어링에 투입하는 등 체질 개선에 힘썼지만 효과를 내지 못했다.
한때 삼성그룹 조선 계열사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을 합병해 초일류 종합 플랜트 회사로 키우는 시나리오까지 나왔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양 사 합병을 반대하고 주요 주주들 주식반대매수청구권이 쏟아지면서 합병은 결국 무산됐다. 이 여파로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도 폭락했다.
이후 전임 박중흠 사장이 용퇴하고 2017년 말 최성안 사장이 삼성엔지니어링 구원 투수를 맡으면서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엔지니어 출신 플랜트 전문가답게 중동 발주처와의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고수익 프로젝트를 선별 수주하는 성과를 냈다.
지난해 초에는 남궁홍 플랜트사업본부장이 신임 사장에 오르면서 해외 수주에 더욱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남궁홍 사장은 삼성엔지니어링 입사 후 사업 관리, 영업, 기획 등 주요 보직을 경험한 화공 플랜트 사업 전문가다.
남궁홍 사장은 올 들어 사명까지 삼성E&A로 바꾸며 변화를 꾀했다. E는 엔지니어링(Engineering) 기술과 함께 미래 사업 영역인 에너지(Energy), 환경(Environment) 등 다양한 의미를 담았다.
A는 변화를 선도하려는 의지를 담아 ‘앞서다’라는 의미의 영단어 ‘Ahead’에서 따왔다. 정리하면 ‘앞선 기술로 더 나은 미래를 구현하는 엔지니어링 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이다.
삼성E&A에 희소식이 쏟아지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니다. 석유화학 플랜트 의존도가 워낙 높아 국제유가 변동에 따라 언제든 실적이 고꾸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고 해외 플랜트 발주 물량이 줄어들면 삼성E&A가 수주 가뭄에 시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귀띔한다. 남궁홍 사장이 삼성E&A 전성기를 계속 이어갈지 건설업계 관심이 쏠린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5호 (2024.04.17~2024.04.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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