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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수술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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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이 잡혀있는 환자 진료, 수술까지는 마무리 지어야지요. 어떻게든 최소 6월까지는 버텨볼 생각인데, 하루에 10억 대 중반 규모의 적자가 나고 있다니 현실적으로 병원이 버틸 수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
지난 9일 상급종합병원 유방외과 A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혼자서는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지 8주째 접어들면서 그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의대 교수들은 극도의 정신적, 신체적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충남대의대 교수 비대위가 자체 조사한 결과 87%가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 100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도 11.9%에 달했다. 다른 병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림대의대 교수협의회의 자체 조사 결과 69%가 당직 또는 24시간 근무 후 휴식 없이 외래, 수술, 시술 등의 진료 업무를 지속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육체적 소진 뿐 아니라 정신적 어려움이 극심해 응급 및 중증 환자의 진료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전국 39개 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단체가 지난달 25일부터 집단 사직서 제출과 함께 근무 축소(주 52시간) 방침을 선언한 건 그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부분 A교수처럼 사직서를 내고도 52시간을 넘기며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다. A교수는 언제가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수술을 미뤄야 한다는 말을 꺼낼 때”라고 답했다. 십중팔구 ‘언제 수술이 가능하냐’고 묻는데 ‘수술방이 없다. 수술이 언제 가능할지 기약하기 어렵다’는 말을 전달하기가 너무도 두렵다는 것이다. 혹자는 “의사가 환자를 버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왜 교수들마저 사직서를 내느냐”고 비난한다. A교수는 “저 혼자 밤새워 수술을 해서 해결할 수 있다면 며칠 밤이고 새겠다. 그런데 그게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사직서를 낸 것도 어떻게든 사태를 빨리 해결해 보겠다는 의도가 컸다고 한다. 다만 “수술이 급한 환자들을 생각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이제 방법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병원 내부에서는 이미 ‘정리해고가 머지 않았다. 문을 닫는 병원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란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실제 빅5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이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는 소식은 병원에 소속된 직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병원을 지키고 있는 교수들은 하나 같이 “전공의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부는 협상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애간장을 태웠다. 환자들에 대한 미안함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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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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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데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이 의료비 상승과 필수의료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20개 의대 비대위로 구성된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소속 B교수는 단적인 예로 2018년 폐교한 서남대 의대를 들었다. 1991년 3월 전남 남원에 설립된 서남대는 4년만에 의예과가 신설되며 지역 거점 대학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서남대에 배정된 의대 정원은 49명. 내년도 의대 신입생 정원이 기존 49명에서 200명으로 4배 이상 늘어난 충북대와 비교하면 그닥 많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남대 의대는 의대생 49명의 교육을 담당할 교수가 모자랐다. 의사 출신은 커녕 기초의학을 가르칠 교수들조차 부족했고, 카데바(해부용 시신) 확보에 차질이 생겼을 뿐 아니라 기자재, 강의실 등 교육 공간 등도 부족했다. 부속 병원조차 없어 의대생들은 수련을 받으러 버스를 타고 서울로 원정을 갔다. 줄곧 부실 교육 논란에 시달리던 서남대 의대는 설립자의 교비 횡령 사건을 겪은 끝에 2018년 폐교됐다. 이 과정에서 재학 중이던 의대생 345명이 전북대와 원광대로 편입되며 이들 대학도 진통을 겪었다. B교수는 “정원이 110명이던 전북의대는 32명이 늘어났는 데도 강의실, 교수진, 실습 기회가 부족했다. 재학 중이던 학생들의 손해가 막심했다”며 “무분별한 의대 증원의 피해는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일단 의대를 설립하고 나면 무관심하고 학교(재단)는 등록금 장사에만 관심이 있으며, ‘교육의 질에 문제가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정책 책임자는 사라져 버린 뒤라 책임을 물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B교수는 “암 진단을 받았다며 진료 예약을 잡겠다는 연락을 받으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환은 커녕 기존 환자들도 간신히 소화하고 있는 지 한참”이라며 “사태가 장기화할 수록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환자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교수들도 사태가 하루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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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9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의 심장전문병원인 부천세종병원을 방문, 중환자실을 찾아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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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부와 전공의 양쪽 모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4.10 총선 뒤 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던 의료계는 내부 갈등을 이유로 돌연 합동 기자회견을 연기했다. 이날 정부도 평일마다 이뤄지던 브리핑을 생략한 채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의 보도자료만 내면서 의정 대화는 다시 안갯 속으로 접어들었다. 이를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전날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의대 증원 1년 유예’에 대한 질문에 “내부 검토하겠다”고 답했다가 당일 오후 대통령실이 나서 “검토할 계획도 없다”며 바로 잡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탓이란 관측이 쏟아졌다. 환자들은 아우성인데 의료계와 정부 모두 내부 혼선을 겪으며 엇박자만 내는 모양새다. 전국 39개 의대 교수협의회가 모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관계자는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의료정책이 수많은 부작용만 남긴 채 실패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았다. 그걸 알면서 또다시 실패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며 “사태 해결에 힘을 보태도 모자란데 의료계 내부에서도 한 목소리가 나오질 못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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