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보다 권력 눈치 본 여야, 동물국회보다 못해"

편집자주

2020년 5월 개원한 21대 국회는 극단적 진영 대결의 장이었다. 여야는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보다 상대방 공격을 통해 손쉽게 반사 이익을 누리려 했다.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란 독선은 입법 독주와 꼼수 탈당, 정치의 사법화 같은 제도 오남용으로 이어졌다. 철저한 원인 진단과 반성이 없다면 내년 4월 총선을 통해 구성될 22대 국회도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이다. 이에 여야 중진ㆍ초선 의원들의 21대 국회 평가를 징비록(懲毖錄)으로 남긴다.

“국민보다 권력 눈치 본 여야, 동물국회보다 못해”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본보 인터뷰에서 21대 국회에 대해 “완전한 정치의 실종”이라고 평가했다. 고영권 기자

“과거 최루탄 국회, 동물 국회라고 불리던 시절에도 의원들이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염치마저 사라졌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1대 국회를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몸싸움은 물론 전기톱에 해머까지 등장했던 과거 국회보다 후퇴했다”며 이같이 답했다. 그는 2002년 보궐선거를 통해 16대 국회에 입성한 이후 5선 의원과 부산시장을 지낸 당내 최다선 의원이다. 정치가 극심한 갈등으로 얼룩진 원인으로 그는 “국민보다 소속 정당의 권력자를 더 두려워하는 의원들의 태도”를 꼽았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본분을 잊은 이런 종속적 자세가 각 진영 권력자들의 팬덤 정치와 맞물려 극단 대치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 결과 “국민 행복과 안전 추구라는 정치권의 큰 방향성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서 의원은 “입법 권한을 독점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의 태도가 문제를 불렀다”고 지적하면서도 “국민의힘 역시 대통령만 바라보면서 다른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았다”고 자성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1대 국회를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완전한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 본연의 임무는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 용광로처럼 녹여서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의견을 나누기 위한 대화와 소통이 여야 간은 물론 당내에서조차 없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진영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고 있다.”

-과거엔 달랐나.

“과거 국회에서는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뒤엉켜 몸싸움을 하고 전기톱에 해머까지 동원했다. 심지어 최루탄도 터졌다. 국가보안법이나 사학법 처리 과정에선 장외 투쟁도 있었다. ‘동물 국회’라는 비난을 받으며 국민을 실망시켰을 때다. 그래도 그때는 여야가 ‘국민을 어떻게 좀 더 윤택하고 안전하게 살게 할 것인지’에 대한 큰 방향성은 함께했다. 그런데 (부산시장 임기를 마친 뒤) 21대 국회에 와 보니 이런 공통의 기반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그래도 국회선진화법이 생겨서 몸싸움은 없어지지 않았나.

“국회 다수당 출신 의장이 법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해서 법을 마음대로 통과시켜려 할 때 몸싸움이 발생했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됐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회선진화법을 교묘하게 무력화시켰다. 21대 국회 전반기에 민주당은 임대차 3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갑자기 상임위원회(기획재정위)를 열었다. 회의 자료도 나눠주지 않고 군사 작전 하듯 법안을 통과시켰다. 내가 화가 나서 ‘대체 무슨 법이길래 이러느냐’고 따졌는데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통과시키는 법안 이름마저 몰랐다. 상임위 단계에서부터 다수당의 힘으로 일방적으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해버리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실종 아닌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9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표결을 앞두고 본회의장에서 퇴장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정치 실종의 원인이 무엇인가.

“여야 의원들이 국민보다는 소속 정당의 권력자를 더 두려워하고, 권력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뭐하는 사람인지 기본을 잊은 것 같다. 의원은 국민과 지역구를 대표하는 대표자이고 한 명 한 명이 입법기관이다. 각자 가치와 철학을 갖고 토론을 해서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국정이 잘 운영되도록 의정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엔 관심은 없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힘 있는 사람에게 기대서 정치적인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집착한다.”

-각 정당 지도부의 문제는 뭐였나.

“지난해 대선을 통해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5년간 권한을 맡겼다. 그러면 대통령이 제대로 국가를 운영해 볼 수 있게 우선은 존중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대통령과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신 공격부터 시작했다. 자기 진영만 바라보는 정치를 한 것이다. 국민의힘도 그 반작용으로 세게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문제가 없었나.

“집권 초인 데다 윤석열 대통령의 그립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당대표나 원내대표가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지도부가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그렇게 생긴 힘을 바탕으로 야당과 협상도 하고, 정부와 대통령이 제대로 가지 못할 때는 제 목소리도 좀 내면서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했다. 하지만 당내에서 의원들이 소신 발언을 하면 이를 ‘해당 행위를 한다’고 몰아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다음부터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의원총회 분위기부터 달라졌다. 예전엔 어떤 이슈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지도부와 다른 의견을 꺼내면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과거엔 정기적으로 했던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도 열지 않는다. 중진의원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당과 국정 운영에 조언할 수 있는 통로가 막힌 것이다. 이는 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 73주년 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에선 여야 모두 초·재선 의원들이 주로 당 개혁보다 단합을 강조한다.

“과거 국회에선 초·재선 의원이 당의 개혁을 외치면 중진의원들이 화합을 강조하며 균형을 잡았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다. 중진 의원들이 ‘당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고, 초·재선 의원들은 되레 ‘당이 단합하고 한목소릴 내야 한다’고 중진을 압박한다. 생소한 풍경이다.”

-이유가 뭔가.

“국회의원이 지역구 대표자로서 자긍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뚜렷하게 밝히고, 그것을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 다음 공천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보다는 권력자와 관계가 어떤지, 인맥에 의해 공천이 좌우되는 분위기이다. 이런 환경에서 초·재선 의원들도 인맥을 만드는 데 치중하고 권력에 거슬리는 말은 삼간다.”

-과거에도 친이·친박 같은 계파 정치가 있지 않았나.

“개혁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초·재선 의원들에게 공천 불이익을 주진 않았다. 한나라당 시절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이 당 개혁을 주장했다고 불이익을 줬다면 지금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있었겠나. 박근혜 정부 때도 초선인 김세연 전 의원은 여러 번 박 대통령을 비판했지만 공천을 받아 재선을 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22대 국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진영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성 있는 입법활동을 해야 한다. 21대 국회는 이를 방기했다. 각종 안전 사고나 교권 침해 같은 사건사고가 얼마나 많았나. 하지만 이슈가 됐을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다가 이슈가 지나면 쳐다보지 않았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본보 인터뷰에서 “초·재선 의원이 오히려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중진을 압박한다”고 지적했다. 고영권 기자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정치 관행은 무엇인가.

“상대방 공격에 치중하는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상대를 공격하면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런 악순환은 국가와 국민의 불행이다. 국민들은 이런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이 계속 박스권에 갇혀 있는 이유가 뭐겠나.”

-바뀌어야 할 제도를 꼽는다면.

“중앙당 폐지를 중장기 과제로 검토해보자. 중앙당이 공천 권한을 통해 국회의원을 줄 세우는 일이 진영 정치를 심화시킨다. 미국은 중앙당이 없다. 국회의원이 소신을 갖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일할 수 있으려면 이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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