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냐의 계약 당시 함께 기념촬영을 한 요나단 페라자(왼쪽) ⓒ한화이글스
▲ 페냐의 계약 당시 함께 기념촬영을 한 요나단 페라자(왼쪽) ⓒ한화이글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23년 11월 19일은 아직 한국시리즈의 여운이 다 가시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해 일찌감치 시즌이 끝난 한화의 시계는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11월 19일,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26)와 계약하며 오프시즌의 시동을 걸었다.
당시는 아직 각 팀들의 재계약 대상자들도 계약을 마무리하지 못한 시점이었다. KBO리그의 선수 수급처 중 하나인 미국도 자유계약선수(FA) 시장 초입이었다. 대어급 선수들이 계약하기 이전이었기에 당연히 그 아래의 선수들 시장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일찌감치 새 외국인 타자를 낙점한 한화의 행보에 비상한 관심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그것도 신규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인 100만 달러(계약금 20만 달러‧연봉 60만 달러‧인센티브 20만 달러)를 꽉 채웠다. 말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계약했다.
페라자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한화는 페라자를 영입 1순위로 놓고 꽤 오랜 기간 관찰했다. 그리고 페라자가 FA 자격을 얻어 신분이 자유로워지자 곧바로 접촉해 사인을 받아냈다. 외국인 선수 시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페라자는 국내 몇몇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던 선수다. 한화가 재빨리 손을 썼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돌아봤다. 한화 고위 관계자 또한 “다른 팀과 경쟁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2015년 시카고 컵스와 국제 아마추어 계약을 한 페라자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다. 아무리 시장가가 많이 뛰었다고 해도, 또 경쟁이 있었다고 해도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는 선수에 100만 달러를 꽉 채워 풀베팅하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투수보다 첫 계약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야수라면 더 그렇다. 한화가 페라자의 기량과 성장 가능성에 큰 만족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한화는 왜 페라자에 베팅, 혹은 모험을 한 것일까. 기본적으로는 한화가 원하는 공격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화는 영입 당시 페라자에 대해 “작지만 탄탄한 체형에 빠른 배트스피드를 바탕으로 강한 타구를 생산하는 중장거리 유형의 타자”라면서 “열정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젊은 팀 분위기에도 활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위치 타자라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다.
페라자의 어린 시절 스카우팅 리포트를 살피면 콘택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갈수록 홈런 개수가 늘어나면서 더블A와 트리플A 한 시즌 모두 20개 이상의 홈런을 만들어냈다. 체구가 큰 편은 아니지만 배트 스피드가 워낙 빠르고, 이 때문에 잡아 당겨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난 2년간 보여줬다. 흔히 페라자의 체구를 봤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플레이 스타일이 아니다. 타율보다는 장타 쪽에서 더 빛을 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지난해 트리플A에서 인상적인 공격 생산력을 보여준 요나단 페라자
▲ 지난해 트리플A에서 인상적인 공격 생산력을 보여준 요나단 페라자
비록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지만 지난해 마이너리그 성적에서도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페라자는 지난해 시카고 컵스 산하 트리플A 팀인 아이오와 컵스에서 뛰었다. 121경기에서 타율 0.284, 23홈런, 85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22의 맹활약으로 주목을 받았다. 메이저리그 콜업에는 실패했지만, 트리플A 최고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성적이었다. 마이너리그 레벨을 거치며 더 발전하는 공격 생산력에도 주목할 수 있다.
수비 문제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지만 그럼에도 한화는 페라자의 공격적인 재능을 외면하지 못했다. 아직 젊은 나이인 만큼 KBO리그에 적응만 잘 한다면 2년 이상 롱런할 수 있는 타자가 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구단의 기대는 크다. 구단의 한 관계자는 “페라자에 구단 전체가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잘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페라자의 활약 없이는 한화의 도약을 설명하기 힘들다. 한화는 2023년 팀 타율이 0.241에 머물렀다. 리그 평균(.263)보다 한참 떨어지는 최하위 성적이었다. 팀 OPS도 0.674에 불과했다. 팀 OPS가 0.700을 넘기지 못한 KBO리그 유일한 구단이었다. 마운드에서는 나름대로 젊은 세력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며 가능성을 남겼지만, 타선은 전반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노시환의 등장, 채은성의 가세에도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외국인 타자의 부진이었다. 장타 측면에서 기대를 건 브라이언 오그레디는 22경기에서 타율 0.125라는 극심한 부진 끝에 퇴출됐다. 시즌 초반 부진이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전체적인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그 악순환의 고리에 제대로 걸렸다. 대체 외국인 타자인 닉 윌리엄스도 68경기에서 타율 0.244, OPS 0.678로 기대에 못 미쳤다. 타구 속도 자체는 좋았지만 그것이 성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한화는 노시환 채은성에 안치홍을 추가로 영입해 중심타선을 보강했다. 하지만 든든한 주축 선수들과 아직 자리를 못 잡은 젊은 선수들의 기량 차이가 상대적으로 크다. 그래서 페라자가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페라자에 확신을 가졌던 한화의 구상이 그라운드에서 그대로 구현될지도 올해 한화의 관심거리다.
▲ 한화 구단의 기대를 한몸에 모으고 있는 요나단 페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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