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칼럼] 국민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든 ‘백년전쟁’의 침묵

[김윤덕 칼럼] 국민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든 ‘백년전쟁’의 침묵

1962년 하와이에서 병상의 이승만 곁을 지키고 있는 프란체스카. 1960년 4월 하야한 이승만은 같은 해 5월 하와이로 간 뒤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19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눈을 감았다.

영화 ‘건국전쟁’은 70년 전 이승만 대통령의 뉴욕 카퍼레이드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지만, 586 세대를 사로잡은 건 4·19혁명 당시 이승만 모습이다. 4·19가 일어나고 나흘 뒤, 85세의 이승만이 부상당한 학생들을 찾아가 북받치는 눈물을 삼키는 장면이다. “내가 맞아야 할 총을 귀한 아이들이 맞았다”며 울먹이는 영상에 객석은 당황한다. 골수 운동권이었던 민경우는 “나는 4·19를 그렇게 많이 공부했으면서도 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을까. 어느 독재자가 자신을 몰아내려는 학생들을 찾아가 사과하고 눈물 흘리며 위로하겠는가” 탄식했다.

한강다리 옆에 설치된 부교 사진도 놀랍다. 6·25 때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대통령 혼자 서울을 탈출했다는 건 정설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영화는 한강다리 폭파 전 부교를 설치해 피란민들이 한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왔다고 주장한다. ‘런승만’이란 멸칭을 낳은 이승만의 라디오 연설 또한 날조라고 했다. CIA 소속 해외방송정보국(FBIS)이 감청한 라디오 음성 원본을 곧 공개할 예정이라는 김덕영 감독은 전화로 연설문의 한 대목을 읽어주다 울음을 터뜨렸다.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란 말은 연설문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자님도 원문을 꼭 읽어보세요.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문장입니다. 70년 동안 우리는 거짓을 믿고 살아온 거예요.”

‘건국전쟁’이 제기한 이슈들에는 엄격한 검증이 따라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드는 의문은 ‘백년전쟁’의 침묵이다. 2013년 제작돼 수백만이 시청한 이 다큐물은 이승만을 하와이 깡패, 테러리스트, 백인 미녀들과 놀아난 플레이보이로 원색 비방한 ‘이승만 죽이기’의 결정판이었다. 그런데 조용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100만 관객 몰이 중인 ‘건국전쟁’의 기세를 꺾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특히 김구의 이중성을 지적한 대목엔 발끈할 법한데 민족문제연구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이유를 이승만과 직접 맞섰던 4·19 세대가 설명했다. 서울대 1학년생으로 4·19 시위대에 있었던 현승일 전 국민대 총장은 “건국전쟁이 우리가 기억하는 이승만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울먹이는 장면은 당시 모든 언론에 보도됐다. 장례식에 수백만 인파가 몰렸듯이 이 박사에 대한 국민 반감도 크지 않았다. 이승만에 대한 증오는 이승만 시대를 살지 않은 586 종북 세력이 80년대에 만들어낸 것이다.”

4·19 주역 중 한 사람인 이영일 전 국회의원은 오히려 ‘건국전쟁’이 놓친 부분을 지적했다. 조병옥의 사망으로 대통령에 무투표로 당선된 이승만이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하야하는 대목에 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국민이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나는 지도자는 세계 정치사에서도 찾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북한의 대남 전략에 우리 정부가 휘둘리면서 이승만 혐오를 방치했다.” 범민련 사무총장을 지낸 민경우는 주사파가 성공시킨 최대 프로젝트가 ‘이승만 죽이기’라고 고백한 바 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판타지가 강고히 작동하는 사회, 민중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들려는 삼류 다큐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에 절실한 건 객관적 사실이다. 그레그 브레진스키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1950년대를 증언할 수준 높은 자료들이 한국엔 턱없이 부족하다. 더 많은 역사적 자료를 찾아내 거짓과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김덕영 감독도 “객관적 사실, 날것으로만 이승만 다큐를 만들기 위해 문서, 사진, 영상, 증언들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의 진심은 적중했다. 70년간 은폐돼온 이승만의 공(功)을 증언하는 사료들을 발굴, 표현의 자유란 명분으로 현대사를 멋대로 왜곡해온 좌편향 영상물들에 경종을 울리며 국민을 사로잡았다.

1920년 이승만의 중국 밀항을 도왔던 절친 보스윅이 이승만 영결식에 남긴 절규는 그래서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든다. “내가 자네를 안다네. 내가 자네를 알아. 자네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고 있는지, 자네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내가 잘 안다네.”

‘Why I Stood Alone?’은 휴전협정을 서두르는 아이젠하워 정부에 맞서 홀로 분투하던 이승만이 1953년 8월 미국 유력지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70년 뒤 그는 똑같은 질문을 대한민국에 던진다. ‘왜 나는 여전히 홀로 서 있는가?’ 이제 국민이 답할 차례다.

[김윤덕 칼럼] 국민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든 ‘백년전쟁’의 침묵

미국 유력지 ‘이브닝 스타’의 일요판(1953년 8월16일자)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의 기고문 ‘Why I Stood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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