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문명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신, 파라오가 숨쉬고 있네

‘곽민수와 함께 한 고대 이집트 문명 탐사’

5천년 전 초기왕조~로마시대까지

첫 수도 멤피스~아부심벨까지 답사

유적·유물로 속 깊은 공부···현재 의미도 되새겨

이집트학 200년, “아직 모르는게 많은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 문명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신, 파라오가 숨쉬고 있네

고대 이집트 문명의 찬란함을 드러내는 신왕국시대 파라오 람세스 2세(재위 기원전 1279~1213년)의 왕비 네페르타리의 무덤 내부(룩소르의 ‘왕비들의 계곡’). 3000여년 전 채색 벽화로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하다. 앞 기둥에는 네페르타리(왼쪽)가 사랑·미의 여신 하토르로 부터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고리 달린 십자가 모양)를 통해 생명을 부여받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도재기 선임기자

고대 이집트 문명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신, 파라오가 숨쉬고 있네

‘신비롭게만 여긴 피라미드가 여러 시행착오와 건축공학적 실험, 시대변화의 산물임을 알았다’ ‘곳곳에서 만난 다양한 신·스핑크스들로 고대 이집트 신화의 그리스·로마 신화에의 영향을 짐작한다’ ‘인간과 동물들 미라, 그 속에 담긴 뜻으로 당대 사람들의 내세관이 이해된다’ ‘피라미드 건설에 노예 동원 같은 왜곡된 정보를 이제 ‘팩트 체크’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은 많은 것을 안겨준다.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 아니라 유적·유물의 의미를 꾹꾹 되새기는 답사여행은 더 그렇다. 고되지만 모르던 것을 알게하고, 알던 지식은 지혜로 승화시킨다. 답사객은 문화유산을 과거에 박제시키지 않는다. 지금 여기 이 시대, 자신의 삶 속으로 가져와 현재적 의미와 가치를 찾아낸다. 상상력과 깊은 사유를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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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가 자신과 왕비를 위해 각각 세운 이집트 최남단 아부심벨의 대신전(위 사진 왼쪽)과 소신전의 웅장한 모습(위 사진 오른쪽),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에 있는 세티 1세 파라오(람세스2세 아버지)의 신비로운 무덤 내부의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3000~4000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무덤·신전의 화려한 벽화와 부조들, 상형문자(신성문자·히에로글리프), 황금 유물들…. 상상력을 총동원해 당대를 그려봤다’ ‘웅장한 신전들의 무너진 천장에서 폐허의 미학이랄까, 람세스 2세의 미라 등에서 영생의 질긴 욕망을 느꼈다고 할까…. 인간 삶과 죽음을 둘러싼 실존적 질문들, 문명의 흥망성쇠를 사유할 수밖에 없었다’…. 답사여행은 장구한 역사 흐름 속 어제의 문화유산이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오래된 미래’임을 체화시킨다.

‘한국이집트학연구소 곽민수 소장과 함께 하는 2024 이집트 문명탐사’ 2차 여행(1월 16~28일)도 그러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고자 한 답사여행을 동행 취재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신, 파라오가 숨쉬고 있네

답사 참가자들이 지난달 22일 고대 이집트 유적도시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에서 벽을 빼곡하게 채운 신성문자, 부조 등에 대한 곽민수 소장(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교육·여행 전문기업 이티원(ET1·대표 김재영)이 주관하고,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소장 송현숙 논설위원)가 후원한 인문 여행이다. 다양한 직업의 30~70대 34명이 함께했다. 이집트 유적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이자 국내 독보적 이집트학 연구자인 곽민수 소장이 역사 현장에서 ‘특강 같은 설명’도 했다.

이번 답사는 시간적으로 무려 5000여년을 아우른다. 선사시대를 지나 고대 이집트의 초기 왕조시대가 개막한 기원전 3000년쯤 부터 현대까지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르메르(메네스) 왕(파라오)이 나일강 상류 지역인 ‘상 이집트’와 하류 삼각주 지역인 ‘하 이집트’를 처음 통일해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를 세우며 태동한 것으로 본다.

고대 이집트 문명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신, 파라오가 숨쉬고 있네

5000여년 전 상·하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한 나르메르(메네스) 초대 파라오의 통일 업적 등을 부조로 표현한 석판 ‘나르메르 팔레트’(기원전 3000년경, 히에로폴리스 출토, 이집트박물관 소장). 초기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귀중한 고고학 유물이다. 도재기 선임기자

상·하 지역의 통일은 물리적 공간 통합과 함께 혼란을 잠재우고 질서를 구축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파라오들은 그 통일 업적을 자신의 이름 등과 함께 조각상·신전 등 기념물에 깊게 새겨 놓았다. 주요 유적·유물에서 자주 만나는 연꽃과 파피루스를 하나로 묶는 장면이다. 연꽃은 상이집트를, 파피루스는 하이집트를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는 30왕조에 이르는 파라오 시대를 구가하며 인류사상 유례 없이 3000여년 지속된다. 물론 정치체의 난립과 분열, 이민족의 지배 등 ‘중간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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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는 연꽃(상이집트)과 파피루스(하이집트)를 하나로 묶는 장면은 주요 유적, 유물 곳곳에서 만난다. 사진 위는 아부심벨 신전의 람세스2세 좌상 (왼쪽 식물 무늬가 파피루스), 아래는 룩소르의 ‘멤논의 거상’(아멘호테프 3세 거상) 옆면 부조. 도재기 선임기자

학자들마다 편년이나 왕조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초기왕조시대는 기원전 3100~2600년 쯤(이하 연대는 기원전), 이어 ‘피라미드 시대’로 불리는 고왕국시대(2600~2100년쯤·제3~6왕조)다. 이후 분열의 제1중간기(2100~2055년쯤·제7~10왕조), 재통일된 중왕국시대(2055~1600년쯤·제11~14왕조), 제2중간기(1600~1550년쯤·제15~17왕조), 최고 전성기 신왕국시대(1500~1069년쯤·제18~20왕조), 제3중간기(1069~660년쯤·제21~25왕조), 후기왕조시대(664~332년쯤·제25~30왕조)다.

또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 편입과 그의 사후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가문이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 시대(332~30년쯤), 그 시대 통치자이자 마지막 파라오로도 불리는 클레오파트라 7세(재위 51~30년쯤)와 안토니우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해 이집트가 로마 속주가 된 로마시대(기원전 30~기원후 4세기쯤), 이슬람시대 등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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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들은 카르투쉬(파라오 이름을 기록한 타원형 틀)에 자신의 출생명, 즉위명 등 이름을 새겨 놓았다. 사진은 각각 고왕국시대 우나스 피라오(위 왼쪽, 우나스 피라미드), 신왕국시대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위 오른쪽, 카르나크 신전 오벨리스크)와 람세스 2세(아부심벨 대신전 좌상)의 이름이 새겨진 카르투쉬. 도재기 선임기자

곽 소장은 “여느 문명과 달리 오래 지속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 속주가 된 기원전 30년쯤까지, 문화적으로는 일신교 기독교를 국교화해 고대 이집트의 다신교 기반을 해체한 기원후 4세기 말까지로 본다”고 밝혔다. 기독교 국교화 전까지만 해도 고대 이집트의 종교적·문화적 의례의 상당부분이 사실상 지속됐기 때문이다.

답사단의 여정은 고왕국~중왕국~신왕국~그리스·로마시대, 즉 3000여년 동안의 유적·유물에 특히 집중했다. 공간적으로는 카이로 인근의 최초 고대 도시 멤피스부터 남쪽 수단과의 국경 지대인 아부심벨까지 나일강을 중심으로 거의 전역을 아우른다. 첫 답사지는 물론 멤피스·사카라·다슈르·기자 등 고왕국시대 유적지다.

‘피라미드 시대’인 만큼 피라미드를 찾았다. 사후세계에서의 부활·영생을 갈망한 파라오의 무덤이자 당대 왕권·건축·과학 등 국가의 총체적 역량, 시대상이 오롯이 담긴 것이 피라미드다. 4600여년 전 제3왕조 조세르 파라오 당시 세워진 최초 피라미드인 ‘계단식 피라미드’, 이후 스네페루 파라오의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 또 3대 피라미드로 유명한 기자의 쿠푸·카프라(레)·멘카우라 파라오 피라미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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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도 시대에 따라 내부 구조, 재료 등이 변화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카라에 있는 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식 피라미드’, 다슈르에 있는 굴절된 외부 경사각의 ‘굴절 피라미드’와 경사각이 완만한 ‘붉은 피라미드’, 경사각 50여도로 피라미드의 절정 단계를 보여주는 기자의 스핑크스 뒷편 ‘카프라 피라미드’(왼쪽)와 ‘쿠푸 피라미드’의 일부 모습. 도재기 선임기자

‘계단식 피라미드’는 기존 무덤 형식인 직사각형의 단층 구조물(마스타바)을 쌓아올린 듯한 모습이다. 긴 세월 후 마야문명, 고구려·백제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적석총) 등 세계 곳곳의 석조 건축구조물의 원조격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이후 외부 경사각을 50도 내외로 쌓다가 기술 한계로 40도 내외로 굴절된 ‘굴절피라미드’, 삼각뿔이지만 경사각이 40도 안팎인 ‘붉은피라미드’로 발전한다. 이어 경사각 약 53도·아파트 45층 높이로 경외심을 부르는 전형적 피라미드인 쿠푸 피라미드로 최고 수준에 이른다. 피라미드는 종교와 사상, 무덤 양식 등 시대상에 따라 내부 구조·재료 등이 바뀌다가 결국 사라진다.

피라미드들 가운데 허물어져 거대한 돌더미가 된 우나스 파라오(재위 2375~45년경) 피라미드는 학술적으로 중요하다. 내부 널방(현실)에 최초의 ‘피라미드 텍스트’(피라미드 내부에 새긴 신성문자 기록)가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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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귀중한 사료인 첫 ‘피라미드 텍스트’가 양쪽 벽 등에 새겨져 있는 고왕국시대 우나스 파라오(재위 기원전 2375~2345년경) 파라미드 내부 널방(위),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에 있는 신왕국시대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 내부 널방. 도재기 선임기자

이 ‘피라미드 텍스트’는 피라미드의 축조 목적·용도 등을 일부 확인해줘 획기적인 사료다. 그 내용은 죽은 이의 부활을 통한 영생을 염원하는 주문들이다. 벽면에 빼곡 새겨진 피라미드 텍스트는 고대 세계 곳곳에서 최고급 석재로 활용된 유백색 반투명의 설화석고(앨러배스터)로 장식한 널방을 더 신비롭게 만든다.

‘피라미드 텍스트’는 파라오 무덤이 피라미드에서 석굴 양식 등으로 변하면서 벽, 석관 등에 새기는 ‘관 텍스트’로 계승된다. 또 신왕국시대에는 부활·영생의 주문을 집대성한 주문서이자 저승세계 안내서라 할 ‘사자의 서’ 내용을 글·그림으로 기록한 두루마리 형식의 ‘파피루스 텍스트’ 등으로 전환된다.

고왕국에 이은 답사지는 각 시대 유적들이 중첩돼 남아있는 남부 지역(고대에는 상 이집트)인 아스완·룩소르다. 아스완댐으로 유명한 아스완은 고대에는 누비아 문화와 접한 상이집트의 핵심 도시다. 각종 건물터와 나일강 수위를 측정하는 ‘나일로 미터’ 등 복합유적의 엘레판티네 섬, 중왕국 시대의 ‘귀족 무덤군’ 등을 통해 고대 이집트 속으로 한발 더 다가설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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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의 채석장 유적에 남아 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3000여년 전 신왕국시대 이집트 장인들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특히 오벨리스크 몸체를 만들다 균열로 방치된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있는 채석장 유적은 흥미로운 현장이다. 아스완은 이집트 전역의 석재 공급지였고, 석재들은 나일강을 통해 운송됐다. 채석장 바위면 곳곳에는 작은 구멍들이 남아 있다. 구멍에 나무를 박아 물을 부으면 팽창하면서 바위가 갈라지는 고대의 석재 절단법이다. 세계 곳곳의 채석장 유적과 국내 경주의 남산에서도 신라시대의 그 구멍들을 만날 수 있다. 당시 건축 재료·운송체계의 이해를 높이고, 3000여년 전 오벨리스크를 만들던 이집트 장인들의 손길·체취를 느껴보는 유적지다.

아스완 남쪽 수단과의 국경지대에는 신왕국 대표 유적 ‘아부심벨 신전’이 있다. ‘이집트 제국’이라 부를만큼 전성기를 구가한 람세스 2세(재위 1279~1213년, 신왕국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의 대신전과 왕비 네페르타리 소신전이다. 파라오를 넘어 신이 되려한 그의 기개와 뜨거운 욕망을, 3000여년 전 고대 이집트 최고 전성기 문화유산을 함께 감상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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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 위기로 해체, 이전, 복원된 ‘아부심벨 신전’을 옆과 뒤에서 감싸고 있는 산은 복원하면서 인공적으로 조성한 산(왼쪽 사진)이며, 오른쪽 사진은 당시 해체 모습을 기록한 자료사진들로 아부심벨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더욱이 아부심벨 신전은 인류사상 최대 규모의 유적 해체~이전~복원 사업의 결과물이다. 지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를 낳은 유적이기도 하다. 1960년대 아스완댐 건설로 많은 유적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은 유적·유물의 긴급 구조에 나섰다.

아부심벨 신전, 이시스 신전(필라에섬) 등이 이때 이전·복원됐다. 아부심벨 신전의 원래 자리는 신전 앞 나세르 호수 수면 아래 약 70m 지점이다. 신전 안팎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체·복원 흔적들이 있다. 이전·복원 과정에서 세계 각국은 인류사적 문화유산의 보존 중요성을 절감했고,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제도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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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야외 박물관’이라 불리는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은 이집트 최대 규모의 신전이다. 사진은 스핑크스가 양쪽에 도열해 있는 탑문 입구다. 도재기 선임기자

중~신왕국시대 핵심 도시였던 룩소르도 다양한 시대 다채로운 유적·유물들이 전해진다. 투탕카멘(제18왕조)·람세스1세의 아들이자 람세스2세의 아버지인 세티1세(재위 1294~1279년경·신왕국 제19왕조) 등의 무덤, 네페르타리 같은 왕비들의 무덤이 계곡을 채운 ‘왕들의 계곡’‘왕비들의 계곡’은 세계적 유적이자 유명 관광지다. 무덤들은 계곡의 암반을 파고든 지하에 전실, 널방, 부속실 등 각종 공간들로 이뤄져 있다.

또 카르나크·룩소르 신전,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제18왕조) 장례신전, 마을 유적인 데이르 엘 메디나, 신전은 사라져 버리고 거대한 좌상 조각만 남아 있는 ‘멤논의 거상’(아멘호테프 3세 거상) 등도 있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야외 박물관’이다.

답사단은 유명 유적지만 아니라 찾기 힘들지만 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들도 기꺼이 찾았다. 아스완과 룩소르 사이의 콤옴보·에드푸·에스나의 신전들이다.

콤옴보의 ‘소베크·호루스 이중 신전’은 이집트·파라오의 수호신이자 왕권 보호를 상징하며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신, 나일강의 신이자 악어 머리를 한 소베크신을 함께 모신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료시술 기구·출산 장면·달력 등을 확인하고, 악어 미라 등을 통해 고대 이집트의 과학·기술 문화유산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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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시 콤옴보의 ‘쇼베크·호루스 이중 신전’ 외벽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출산장면(좌식)과 각종 의료 기구 등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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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년 전 유적인 고대 도시 에스나의 크눔신전 내부에는 채색 부조 등이 남아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천장 복원 중 12개 별자리 채색부조가 새롭게 확인되기도 했다. 도재기 선임기자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은 안팎을 가득 채운 신성문자를 비롯해 천장이 드물게 보존돼 훼손 전 고대 신전의 온전한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나일강을 관장하며 창조신이자 숫양 머리를 한 크눔신을 모신 에스나의 크눔신전은 남아 있는 채색 부조와 벽화가 돋보인다. 특히 현 지표보다 크게 낮아 지난 2000여년의 세월 동안 지층 퇴적을 실감케하는 신전에서는 지난해 3월 ‘황도 12궁’으로 불리는 12개 별자리 채색부조가 천장에서 새롭게 확인되기도 했다.

룩소르 북쪽의 고대 도시 덴데라, 아비스도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다. 덴데라의 하토르신전은 사랑과 미·행복 등을 상징하며 암소 뿔과 원반(태양 상징) 머리장식으로 자주 표현되는 하토르 여신을 경배한 곳이다. 2000여년 전 별자리 부조인 ‘덴데라 12궁도’(루브르박물관 소장), 외벽의 클레오파트라 모습, 파라오 모습을 한 트라야누스 황제 부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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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시 아비도스의 세티 1세 신전에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이름 등을 새겨놓은 획기적 사료인 ‘아비도스 왕명표’(Abydos King Lists)가 세티 1세와 아들 람세스 2세 모습과 함께 남아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아비도스의 ‘세티 1세 신전’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가장 중요 사료의 하나인 ‘아비도스 왕명표’(Abydos King Lists)를 살펴봤다. 왕명표는 일부 파라오는 제외됐지만 초대 파라오부터 세티 1세·람세스 2세까지 70여명의 역대 파라오 카르투쉬 등이 벽에 새겨졌다. 보존상태가 좋은 신전인데다 인근에는 폐허가 되다시피한 람세스 2세의 신전도 만난다.

유적 현장에서의 부족한 부분은 박물관의 다채로운 유물을 통해 보완했다. 아스완의 누비아박물관, 룩소르의 룩소르박물관, 카이로의 신생 국립이집트문명박물관과 유서 깊은 이집트박물관(이집션 뮤지엄) 등이다.

네페르타리 왕비 무덤에서 세네트(고대 보드게임) 놀이를 하는 왕비 모습을 보고, 이집트문명박물관에서 실제 세네트 유물을 확인하는 식이다. 유적과 더불어 고대 이집트 문화를 수놓고 있는 수많은 유물은 당대 역사와 문화를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한다.

고대 이집트 문명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신, 파라오가 숨쉬고 있네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가 고대 이집트 보드게임이라 할 ‘세네트’를 앉아 즐기는 모습(네페르타리의 무덤 내부 벽화, 왼쪽)과 국립이집트문명박물관에 전시된 세네트 놀이 도구들. 도재기 선임기자

답사 여정에는 보통사람들의 생활유적이 적고, 파라오가 생전 생활한 궁궐유적도 없어 아쉬울 수 있다. 파라오·귀족층 무덤과 신전 등 최고 지배층, 그들의 사후 관련 유적에 집중된 것이다. 물론 고대 이집트의 생활·궁궐 관련 유적도 있다.

하지만 보존상태가 좋지 않고 복원도 부족해 상대적으로 ‘볼거리’가 적다. 사실 세계 어느 곳이든 고대 유적·유물은 지배층이 향유하던 것이고, 또 그것이 당대 문화의 정점이자 최고 수준을 보여주기에 당연히 먼저 찾게된다.

또 생활유적보다 무덤 유적이 세계 어디서나 잘 남아 있다. 이집트도 마찬가지다. 생활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조성된 무덤들은 사막기후, 메마른 토양 등으로 생활유적보다 오래 보존되고 훼손도 적기 마련이다. 한국을 포함해 여느 고대 유적·유물들도 그렇다.

특히 고대 이집트에선 나일강 동쪽은 산자의 땅인 ‘검은 땅’, 서쪽은 죽은자의 땅인 ‘붉은 땅’으로 인식해 무덤들은 서쪽 메마른 땅에 축조했다. 생활유적은 거의 사라졌지만 무덤 유적은 보다 나은 보존환경 덕에 살아 남았다.

고대 이집트 문명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신, 파라오가 숨쉬고 있네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강 동쪽은 ‘산자들의 땅’, 서쪽 메마른 지역은 ‘죽은자들의 땅’으로 인식해 무덤들은 나일강 서안에 조성했다. 사진은 아스완의 나일강 섬에서 서안 사막지대를 바라본 모습이다. 도재기 선임기자

이번 답사여행은 역사·문화의 시간적 씨줄과 공간적 날줄의 조합으로 웅장한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구한 흐름을 어렴풋하나마 그려냈다. 고대 이집트의 속살을 엿보고, 서양 문명의 뿌리로 후대에 끼친 영향력을 확인했다. 여느 고대 문명과 달리 오래 지속된 근원에 특유의 보수성이 있고, 독특한 보존환경으로 수준 높은 유적·유물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음도 이해했다.

무엇보다 이성과 합리·과학의 시대에 시나브로 사그라드는 상상력과 환상·감성을 자극하는 신화의 세계, 신들의 시대도 접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이집트를 찾아 오늘도 뜨거운 모래 위를 걷는지 공감하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 역사·문화의 상당부분이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신비로운 점도 있음을 깨우쳤다. 아직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의 내부에서 새로운 공간들이 발견되거나 미라 제작장·황금 마스크 등이 확인되는 등 곳곳에서 놀랄만한 유적·유물이 나와 국제적 주목을 받는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2000여년 전에 부실하지만 이미 고대 이집트를 언급했고, 나폴레옹 침략 이후 이집트학(Egyptology)까지 등장한 게 200년이 지났음에도 그러하다. 영국에서 이집트학을 공부한 곽 소장은 “1822년 프랑스의 샹폴리옹의 신성문자 해독 등 그동안 각국 학자들의 연구로 학술적 성과들이 많이 쌓였다”면서도 “학계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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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 역사의 ‘이집트학’ 등 국내외의 많은 연구 성과, 계속 이어지는 발굴조사에도 불구하고 고대 이집트는 여전히 신비에 싸인 부분들이 있다. 사진은 룩소르의 ‘람세스 3세 장례신전’ 옆의 발굴조사 모습. 도재기 선임기자

실제 발굴조사를 했지만 학술적으로 규명되지 않거나, 아직 발굴 시작조차 못한 유적들이 숱하다. 지금 ‘이집트는 온통 발굴 중!’이라고 할만큼 전국 곳곳에서 발굴조사와 보존·복원 작업이 한창인데도 그렇다. 발굴·복원 작업에는 세계 각국이 참여 중이다. 한국 문화재청도 올해부터 룩소르의 라메세움(람세스 2세 장례신전) 탑문 복원·정비, 룩소르박물관 디지털화 작업 등의 지원에 나선다.

세계 각국이 나서야 할만큼 고대 이집트 문명은 더 없이 깊고 넓다는 의미다. 룩소르의 람세스 3세 장례신전(메디넷 하부) 옆에서 발굴조사를 하던 이집트 고고학자는 “저 쪽 ‘아멘호테프 3세 거상’ 뒤쪽부터 여기까지 발굴 중인데, 적어도 십수년을 할 것 같다”며 “사실 당신을 포함해 세계에서 오는 이들이 접하는 유적은 전체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신, 파라오가 숨쉬고 있네

고대 이집트 왕비들의 무덤이 계곡 곳곳에 조성돼 있는 룩소르의 ‘왕비들의 계곡’에는 전 세계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고대 이집트는 ‘모두가 알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이 어울린다. 수많은 유적·유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의 영역이 존재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의 보물창고이자, 상상력을 요구하는 공간이다. 무언가 기대, 꿈, 환상을 품게하는 게 고대 이집트 답사여행의 또다른 매력이다.

다음은 곽민수 소장·오경세 이티원 팀장 외 답사객들이다. 구영준 김규영 김기돈 김미선 김상권 김아인 김은수 김정순 김천순 박경희 박민경 박용성 송지원 신해봉 심상엽 옥복연 유중호 윤월근 이조원 임달기 임애경 임현서 임현진 정인정 정일준 조윤지 조윤희 최은숙 최은희 한정선 허태곤. 이집트 문명 탐사 동행 취재기는 상·중·하 3회 연재될 예정이다.

도재기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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