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증원과 관련해 시민 분노를 살 만한 의사들의 발언이 많이 나왔지만, 병원에는 무엇보다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경제적 사정에 상관없이 제대로 치료받는 사회를 바라는 의사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시민들이 함께 도와주면 좋겠어요.”
최근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다생의) 인스타그램과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의사 파업은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는 글을 올린 흉부외과 전공의 ㄱ씨는 의사를 향한 차가운 여론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2024년 의대생의 동맹휴학과 전공의 파업에 동의하지 않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모임’을 표방하는 다생의 계정은 폐쇄적인 의사 집단 안에서 소수 의견을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이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한겨레는 계정 운영자 가운데 ㄱ씨와 의대생 ㄴ씨가 실제 전공의·의대생임을 확인한 뒤 2~3일 이틀에 걸쳐 인터뷰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다생의) 계정을 만든 계기는
ㄱ씨: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전공의 집단 사직·의대생 휴학계 제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여,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을 찾아 이야기 나누고 목소리를 내보려는 취지다. (의사 집단 안에선) 소수 의견을 내기 부담스럽다. 사직서를 내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의대 증원에 대해 찬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ㄴ씨: “(의대생) 개인 사정에 따라 휴학이 어려운 경우도 있을 텐데 무조건 동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의대생 커뮤니티에 ‘어떤 학교는 만장일치로 휴학에 참여한 좋은 곳, 어떤 학교는 이탈자가 있어 군기가 빠졌다’는 식이다. 신입생에게도 기명 투표를 통해 휴학에 참여할지 묻고 있다. 신입생이 어떻게 ‘나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겠나.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다생의는 어떤 활동을 하나
ㄱ씨: “지난달 29일 흉부외과 전공의로서 쓴 글을 계정에 올렸고, 나를 시작으로 다섯 명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각자 의견을 담은 글을 올릴 예정이다. 익명 대화방을 열어 (집단행동 등 지금 국면에서) 답답했던 것들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전임의(펠로)나 전공의를 이제 막 수료한 분도 참여한다.”
ㄴ씨: “학교에 돌아가고 싶은 의대생을 모아 너무 늦어지기 전에 함께 학교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20년에도 전공의는 진료 거부, 의대생은 휴학·국시 거부 같은 집단행동을 했다. 그 당시 집단행동에 참여했나
ㄱ씨: “2020년에도 전공의였지만 진료 거부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했는데 나는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ㄴ씨: “2020년에도 의대를 다니고 있었다. 그땐 (선배들이) 집단행동을 압박하는 상황으로 인해 동맹휴학에 참여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다생의) 계정 갈무리
—2020년과 비교해 2024년 집단행동은 어떻게 다른가
ㄱ씨: “방법적인 면에서 좀 더 문제의식이 있다. 2020년엔 전공의들이 시민사회를 설득하기 위해 공부 모임도 만들고 여러 차례 성명서도 발표했다. 병원 내 간호사 같은 다른 직종에도 ‘이런 이유로 파업한다, 이해해달라’는 선전물을 배포했다. 일부 병원에선 파업하더라도 환자가 정말 위험할 때를 대비해 병원에 몰래 남는 이른바 ‘심폐소생술(CPR) 대기조’를 운영하기도 했다. 2020년 이후 동료 의사들이 (시민사회 설득에 대해) 고민을 했고 노력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흔적이 이번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의아하다. (증원 규모가 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서인지 분위기가 과열된 면도 있는 것 같다.”
ㄴ씨: “이번이 (2020년보다) 다른 의견을 말할 기회가 없다고 느낀다. (동맹휴학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도 전혀 없다.”
—의대 증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ㄱ씨: “의사는 더 필요하다. 환자도,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도 그렇게 느끼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 등을 봐도 그렇다. 특히 흉부외과 같은 ‘기피 과’엔 의사가 부족하다. 응급 수술이 몰려 2~3일 밤을 새운 뒤 근무할 때는 내가 처방을 맞게 내는 건지 걱정스럽다. 내가 건강한 상태로 일해야 환자들도 안전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의사가 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ㄴ씨: “한국 의사 수가 부족한 건 통계로 봐도 사실이다. 의사 단체가 통계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그럴수록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증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의 의대 2천명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ㄱ씨: “숫자보다 어떻게 늘릴지가 훨씬 중요하다. 의대 증원으로 미용·성형·비급여 시장에서 일할 사람이 아닌 지역·필수의료에 일할 사람을 양성해야 하지 않나. 이를 위해선 현재의 정책으로는 안 될 것 같다. 공공의대를 만들고,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이상 의무 복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 등이 함께 추진돼야 실효성이 있다.”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이탈한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ㄱ씨: “정부 정책에 문제의식이 있지만, 의사들이 주장하는 의대 증원 백지화나 파업엔 동의할 수 없다. 여러 전문가는 의사들이 파업하더라도 입원 환자나 응급환자는 잘 치료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사태로 환자들을 퇴원시키고 수술을 무기한으로 미뤘지 않나. 환자 입장에선 굉장히 불안하고 힘들 것이다.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한 상황에서 예전처럼 전공의들이 역할을 분담해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인력 공백으로) 업무가 더 늘어난 간호사들이 참여하는 등 힘들게 돌아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동료 전공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ㄱ씨: “나는 전공의로 일하기 전까지 이렇게 많은 환자가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서, 집안 형편 탓에 당장 일해야 하는 까닭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전공의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많다는 것을 같이 알고 같이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 그리고 (병원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밝히기 어려운 전공의들은 어렵겠지만 저희가 손을 내밀었으니 익명 대화방에서 힘든 마음이라도 같이 이야기하면 어떨까.”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고 싶나
ㄱ씨: “내가 수술방에 있는데 중환자실이나 병동에 응급환자가 생겨 몸이 세 개였으면 좋겠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어지면 좋겠다. 기다리느라 지친 환자에게 다른 응급환자가 있어 늦었다며 계속 사과해야 하는 게 아닌, 환자가 말하기 전에 수시로 가서 살필 여유가 있으면 한다. 환자들이 몸은 아프지만 그래도 최선의 치료를 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진료 환경이 되면 좋겠다.”
ㄴ씨: “사람들에게 신뢰받고, 사람들이 찾는 의사가 되고 싶다. 지금 의사들이 (시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 안타깝다. 일부 의사들이 직역 이기주의에 기반한 발언을 계속하면서 집단행동을 지속하면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시민들의 신뢰를 잃을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일단 파업을 멈춰야 한다.”
김윤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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