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의 세계적 석학이었던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하버드대 교수가 된 서른두살에 대학에서 미적분 강의를 들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는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윌슨 교수는 자존심을 꾹꾹 누르고 미적분을 공부했다.
대공황 시기 허술하게 정규교육을 받은 탓에 미적분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윌슨 교수는 생물학을 연구하면서도 늘 미적분에 대한 허기를 느꼈다. 미적분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어떤 생명체 군집이 여러 세대를 거쳐 지수적 성장을 할 경우 성장의 속도나 군집 크기의 변화값을 구하기 위해서는 미적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진화생물학의 석학 에드워드 윌슨 전 하버드대 교수의 모습. 매경DB
미적분 수업에서 겨우 C학점을 받은 뒤 윌슨 교수는 “수학 실력은 외국어 실력과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수학 실력도 외국어처럼 늦은 나이에 시작하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또 실력 향상에도 한계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윌슨은 미래의 과학도들에게 수학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선택의 폭이 줄어들 수 밖에 없으니 미리 수학의 기초를 다져놓기를 당부했다.
윌슨 교수가 살았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는 수학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수학이라는 세포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디지털 세상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쌓아올린 세상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2028학년도 수능부터 수학의 기초이자 중요한 부분인 기하학과 미적분2를 수능 과목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했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수능 과목에서 빠지면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고 학생들은 공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다.
교육부의 결정에 대해 비판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홍유석 서울대 공대 학장은 “인공지능(AI)이나 양자(量子) 등 분야는 심화 수학이 기본이 되지 않으면 공부할 수 없는 학문”이라며 “나라를 먹여살리는 공학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한탄했다.
이공계열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비판하는데 교육부는 왜 이런 시대착오적인 결정을 했을까? 이런 의사결정을 내린 국가교육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그 이유가 짐작이 된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은 77세의 역사학자이고, 상임위원은 68세의 경제학자와 67세의 정치학자다. 17명의 비상임위원 대부분 60대 이상의 문과계열이나 사범대 졸업자였다. 전체 20여명의 위원중 이공계열은 건축공학을 전공한 홍원화 경북대 총장이 유일하다. 연령별로 70대 2명, 60대 11명으로 60대 이상이 65%를 차지했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위원 개인의 자격을 문제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교육 전문가들이다. 문제는 구성이다. 편중된 구성으로는 균형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더구나 미래의 과학기술 분야와 관련된 결정을 내리기에는 부적절한 구성이다.
한국전쟁 발발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자 한 일간지 1면에는 ‘국력은 과학력’이라는 제목의 당시 문교부 최규남 차관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에서 그는 “인문 계통 졸업생이 사회에 나와서 정치 경제 법률 기타 모든 중요 방면에 지도자 격으로 군림하여 이공학부 출신의 기술자를 부리는 지도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고 비판했다(민태기 ‘조선의 만난 아인슈타인’에서 재인용).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지도자가 내릴 결정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그런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백년지대계를 결정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두었는데 그 위원회 구성마저 편향됐다.
쏟아지는 비판론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인공지능(AI)으로 챗GPT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이상의 역할을 하는 시기로 수학을 교육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교육방식이 수학의 핵심이 되는 과목을 제외시키는 방향이어서는 안된다. 교육부가 미래를 주도할 과학기술 인재를 키울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김기철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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