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대 갤럭시S24…버스폰 다시 오나

‘휴대폰 성지’ 현장 르포…출고 한 달 안 돼 불법보조금 판쳐

10만원대 갤럭시s24…버스폰 다시 오나

2019년 8월 18일 서울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유리판에 위약금 지원, 공짜폰 전문점 등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김창길 기자.

[주간 경향] 지난 2월 26일 휴대폰 성지(싸게 파는 곳을 뜻하는 은어)로 알려진 서울 광진구 강변 테크노마트에서는 삼성 갤럭시S24(기본형)가 10만원대에 팔리고 있었다. 갤럭시S24를 사기 위해 매장에 들어가면 “얼마로 알아보고 왔느냐”며 일제히 계산기를 내밀었다.

휴대폰 온라인 카페에서 알아본 시세 ‘15’(15만원)를 계산기에 입력했다. 판매 직원들은 계산기 숫자를 본 후 바로 지웠다. 이어 10만원 이상의 요금제 6개월·부가서비스 2개월 사용, 통신사 교체(번호이동)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매장에 따라 선심 쓰듯 부가서비스 사용기간 등에 따라 ‘14~17’(14만~17만원)을 계산기에 새로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이곳에선 가격을 언급하는 것이 금물이다. 매장 곳곳에는 ‘상담 시 가격을 언급하면 상담을 종료합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한 매장에서는 “앞서 제시받은 조건에 통신사 제휴 카드를 발급받아 교통비 등 한 달에 30만원씩 2년을 쓰면 그냥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단말기 가격이 무료라는 의미다.

제휴 카드 발급받으면 공짜폰까지

올해 2월 29일 기준 출고가 115만5000원인 갤럭시S24의 합법적인 지원금은 제조사와 이동통신사 간 협의로 조정되는 공시지원금 50만원과 유통업체가 지원하는 추가지원금(공시지원금의 15%) 7만5000원이다. ‘성지’에서는 출고된 지 한 달도 안 된 갤럭시S24가 40만원이 넘는 불법보조금까지 받으며 팔리고 있다. 불법보조금은 제조사와 통신사가 ‘정책’으로 지원한다. 이른바 불법 리베이트(판매장려금)다.

이들 매장은 “최근 A통신사가 정책을 풀어 A사로 옮기면(번호이동) 기기변경보다 3~4배 이상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입을 모았다. 판매직원 B씨는 “앞으로는 기기변경 보조금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며 “잡아 놓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 곳이 통신사 ‘국룰’(國+rule·당연한 규칙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결합할인에 묶여 있지 않는다면 번호이동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했다.

앞서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월 21일 기기변경(기변), 번호이동(번이), 신규 등록 등 가입 유형에 따라 통신사가 보조금을 다르게 책정할 수 있도록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번호이동에 더 많은 지원이 쏠릴 여건이 마련됐다.

정부는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를 규정한 단통법 폐지에 앞서 시행령부터 바꿔 통신사 간 경쟁을 촉발하려 한다. 현재는 통신사가 기변, 번이, 신규 모두 같은 액수를 지원한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약정기간이 끝나기 전 통신사를 바꾸면 (해당 통신사가) 보조금을 통해 위약금을 대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보조금 활성화 등으로 가입자를 뺏는 번호이동 경쟁을 활성화하려는 조치다.

10년 전 방통위는 “이통사가 마케팅비를 줄여 수입이 남으면 요금을 내릴 것”이라며 단통법을 만들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출고가가 60만~90만원 하는 최신 스마트폰을 놓고 이른바 ‘버스폰’ 대란이 일었다. 버스폰은 버스요금만큼 싸게 팔린다는 의미다. 당시에는 이통사나 판매점이 대신 내주는 ‘지원금’이 시시때때로 달라지면서 단말깃값도 요동쳤다. 정부는 같은 휴대폰을 누구는 공짜에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통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와 현실은 달랐다. 요금 할인과 품질 개선은 체감하기 어려웠고, 통신사들은 마케팅 비용을 아껴 이익을 극대화했다. 2014년 1조6000억원 정도였던 통신 3사 합산 영업이익은 지난 3년 연속 4조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단통법 폐지를 추진하면서 보조금이 늘어 통신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자급제폰 이용자들을 위한 선택약정할인(공시 지원금을 받지 않은 소비자에게 요금 절감 혜택을 주는 제도)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단통법 유명무실화된 지 오래

서울 신도림·영등포 등 휴대폰 성지로 소문난 곳에서 만난 판매점 직원들은 음성적인 리베이트가 양성화돼 일시적으로는 경쟁이 촉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C씨는 “10년 전에는 단말기가 90만원 할 때도 리베이트가 130만원이 넘게 나왔는데, 지금은 (통신사) 과점체계가 굳어져 경쟁 요인이 줄다 보니 단말기가 200만원을 넘어도 리베이트는 90만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소비자들도 과거와 같은 보조금을 받으려면 (10년 전보다) 2배가량 비싼 고가요금제를 써야 해 시장 자체가 통신사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앞으로는 한곳이 보조금을 풀면 가입자 방어를 위해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매장 직원 D씨는 “판매점이든 이통사든 과태료를 맞아도 불법 영업을 통해 얻는 이익이 더 크다”며 “정부가 리베이트나 담합 등에 대해 제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단통법이 유명무실화된 지 오래됐다. 경찰이나 기자들도 리베이트 지원받아 휴대폰을 사간다”고 했다. 이어 “유통체계 자체가 망가져 누군가 싸게 사면 누군가는 그만큼 비싸게 사야 시장이 유지되는 구조라 단통법이 폐지돼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현재 통신 3사는 “시장 상황이 10년 전과 달라 과거 같은 경쟁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말을 아낀다. 실제로 4세대 이동통신(LTE) 가입자를 유지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5세대(5G) 이동통신 시장이 포화 상태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자급제폰도 자리를 잡았다. 휴대폰 제조 시장에서는 LG전자와 팬택 등이 사라지고 삼성과 애플만 경쟁하고 있다. 기업소비자간거래(B2C) 통신 시장이 정체기로 접어들고 쿠팡 등을 통해 기기를 싸게 살 수 있는 온라인 채널도 늘었다.

E씨는 고령자 등 정보 소외계층 등에 대한 보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공시지원금 받고 6개월 후 낮은 요금제로 갈아타야 하는데, 고령층은 99% 이상이 계속 비싸게 쓴다”며 “마케팅 자율화로 고가모델·요금제로만 지원이 더 쏠리면 어르신들이 주로 쓰는 저가모델·요금제에 대한 혜택이 사라져 정보 약자들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소비자가 보조금만으로는 쉽게(타통신사로) 넘어가지 않아 서비스·품질 경쟁이 촉발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며 “보조금 차별과 시장 경쟁 질서를 위반하는 행위 등에 대해선 사후 규제를 강화해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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