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법 개정안 국회 통과 초읽기
방산업계를 괴롭히던 ‘수은법 개정’ 문제가 해결됐다. 2월 21일 임시국회 기재소위에서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 한도를 현행 18조4000억원에서 25조원으로 늘리는 개정안이 통과됐다. 해당 개정안은 2월 23일 기재위를 거쳐 2월 29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될 전망이다.
방산업계는 30조원이 넘는 대형 계약이 무산할 위기를 넘기며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국내 방산 수주액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폴란드 방산 계약이 엎어졌다면, 정부와 방산업계가 제시한 ‘2027년 글로벌 방산 수출 4대 강국’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셈이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방산업계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개정안으로 증액하는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 금액이 여전히 적고, 경쟁국에 비해 금융 지원 정책이 빈약하다는 주장이다.
수출입은행 자본 한도를 25조원으로 늘리는 법안이 기재소위를 통과했다. 29일 본회의를 통과하면 확정된다. 문제가 됐던 폴란드 방산 수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창원에서 열린 폴란드 K9PL 자주포 출하식. (창원시 제공)
수은 한도가 왜 중요할까?
금융 지원, 방산 수출 핵심
수출입은행의 자본 한도와 무기 수출의 연관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방위 산업의 수출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무기 수출 사업은 정부 간 거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규모가 크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출하는 국가에서 금융 지원을 하는 방식이 통용된다. 전체 계약 대금 일부를 저리 대출로 메워주는 것이다. 재정 규모가 넉넉한 일부 선진국은 금융 지원을 받지 않지만, 대다수 국가는 금융 지원을 받는다. 주로 수입국이 수출국이 지정한 금융기관으로부터 일정 규모 돈을 빌려 무기 생산 기업에 지불하고, 돈을 대출해준 수출국 금융기관에 돈을 갚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한국은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금융 지원 역할을 맡는다. 한국은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으로 수출하는 경우가 많다. 두 기관의 금융 지원은 무기 수출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동안은 수출입은행의 한도가 작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존 한도로 충분히 금융 지원이 가능한 규모의 거래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2022년 폴란드와 무기 수출 계약을 맺으며 커졌다. 유례없는 대규모 계약이 체결된 탓에, 수출 규모가 금융기관들의 대출 한도를 넘어섰다.
폴란드는 2022년 한국 무기 수입 계약을 맺었다. 당시 K9자주포와 K2전차 물량 계약은 2022년 1차, 2023년 2차로 나눠서 체결하기로 했다. 1차 계약은 17조원, 2차 계약 물량은 최대 30조원 규모다. 1차 계약 종료 후 2차 계약을 체결하려 하니 수출입은행 대출 한도가 발목을 잡았다. 수출입은행은 법적으로 특정 대출자에 대한 신용 제공 한도가 자기자본의 40%로 제한돼 있다. 수출입은행 자기자본은 18조4000억원이다. 폴란드 정부에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최대 7조3600억원이다. 이 중 이미 지난해 계약 때 6조원을 지원했다. 남은 한도가 1조3600억원에 그친다. 무역보험공사 지원도 있지만 무역보험공사 역시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다. 안보 라인을 중심으로 자금 지원 해결책 마련을 모색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잔여 물량 중 당장 계약이 급한 2023년 12월 수출 물량은 시중은행의 금융 지원을 받아 해결했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급한 불은 껐다. 자본금이 25조원으로 늘어나면, 폴란드 정부에 대출할 수 있는 자금이 증가한다. 그동안 폴란드 정부는 금융 지원 부족을 이유로 계약을 미뤄왔다. 발목을 잡던 금융 문제가 해결된 만큼, 추가 계약은 무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단기 위기는 해결했지만
금융 지원 제도 재점검 필요
당장의 위기는 해결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위기가 다시 올 것이라는 게 방산업계의 주된 의견이다. 수출입은행이 자본 한도를 25조원까지 늘렸지만, 기존 업계가 기대한 30조~35조원 규모보다 여전히 작다. 수은 자기자본이 최소한 30조원은 넘겨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다른 국가들은 금융 지원을 대폭 늘리며 자국 방산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은 새겨볼 대목이다. 실제 지난 10여년 동안 국내 방산업계는 경쟁국의 막강한 금융 지원에 밀려 수주전마다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2017년 태국 잠수함 사업은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장기 저리 융자 정책에 밀려 탈락했다. 2020년 필리핀 잠수함 사업은 초저리 금융 지원을 제안한 프랑스에 밀렸다.
최근 한국 방산이 공들이는 동유럽 시장에서는 서방 방산 기업의 공세가 한창이다. 한국 방산 업체의 진출을 견제하는 서방 방산 기업이 적극적으로 공들이고 있다. 루마니아의 경우 이미 300대의 전차 도입 물량 중 54대를 미국 에이브럼스 전차로 들여온 바 있다. 국내 방산 업체의 라이벌 회사인 프랑스의 다쏘와 독일의 라인메탈은 자국 정부 지원에 힘입어 한국산 무기가 들어갈 시장을 점령 중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방위 산업의 근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금융 지원 제도를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기 수요가 높은 수입국에 대한 여신약정 제도 도입과 새로운 수출 금융 지원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여신약정 제도는 수출입은행의 부족한 한도를 보완하는 제도다. 수입국과 수출입은행이 별도로 협약을 맺어 금융 지원 한도·절차 등을 사전 확정하는 방안이다. 향후 한국 기업이 해당 국가에 무기를 수주하면 수출입은행은 약정에 따라 자금을 대출한다. 한국 무기 수요가 높고, 신용도가 높은 국가를 선정하면 적은 한도 내에서도 효과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심순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무기 수요가 많은 무기 수입국에 대해 수출입은행과 기본여신약정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부실 등 위험은 낮추고, 금융 지원 조건을 신속하게 협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현행 대출 제도의 개편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방산 수출에 특화된 수출 금융 지원 제도가 없다. 수출입은행의 대출과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은 방산뿐 아니라 인프라 수출 등에 일괄 적용되는 기준이다. 해당 제도는 OECD 신용등급에 따라 금융 지원 규모가 확연히 갈린다. 국가신용등급이 비교적 높은 3등급 이상 국가에 대해서는 경쟁력 있는 금융 지원이 가능하나, 6등급 이하의 낮은 신용등급 국가에 대해서는 선진국과는 달리 금융 지원 여부 자체가 불확실하다. 문제는 무기 수요가 높은 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등 국가는 OECD 신용등급이 낮다는 점이다.
“미국, 프랑스 등을 벤치마킹해, 방산 수출에 특화된 맞춤형 수출 금융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방산 수출 금융에 대한 보증요율 할인, 위험 프리미엄 우대, 장기 상환 기간(30~50년) 보장, 파이낸싱 한도의 유연성 강화 등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사례와 같이 향후 우리나라 자체 국가 신용등급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체계적이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8호 (2024.02.28~2024.03.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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