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일본 닮은 ‘증시 밸류업’…배당 증가 기대만으론 어림없다

윤 정부의 일본 닮은 ‘증시 밸류업’…배당 증가 기대만으론 어림없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 및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금융당국은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 실행 계획을 밝혔다. 세부 계획은 이달 말 발표된다. 각 기업의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 방안 기재, 주가순자산비율(PBR·자본 대비 주가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 공시 의무화, 주주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구성된 지수를 만든 뒤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등이 언급된다. 주식시장 반응은 제법 좋았다. 1월17일부터 설 연휴 전까지 코스피는 약 7.6% 상승했다.

주가상승률 상위 50개 종목을 보면, 하나금융지주(37%)·KB금융(35.7%) 등 금융회사들이 10곳으로 많다. 롯데지주(31.9%)·LG(30.2%)·GS(30%) 등 지주회사도 다수 포함된다. 시장에서는 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데 내실은 나쁘지 않아 배당 또는 자사주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주가가 뛰었다고 보는 듯하다. 한국같이 주주권익이 낮은 시장에서 배당률 증가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대단한 경제정책이나 증시부양정책인 양 말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윤 정부의 일본 닮은 ‘증시 밸류업’…배당 증가 기대만으론 어림없다

2023년 8월1일 일본 도쿄에서 주가지수가 표시되는 전광판 앞을 남성 한 명이 지나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 정책은 일본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일본 상장기업 중 주가순자산비율이 1보다 낮은 기업에 경영개선 방안을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작년 일본주가지수(니케이225)는 2만6000대 초반에서 3만3000대 중반으로 크게 올랐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좀 주춤했다가 다시 상승세를 탄 것이다.

시간을 좀 더 늘려보자. 새로운 그림이 보인다. 일본 주가지수는 1989년에 약 3만9000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03년까지 지속 하락하며 약 8천까지 떨어졌다. 2012년에 추세적 상승으로 전환해 최근 약 3만8000까지 올라왔다. 일본 경제성장률이 1988년에 6.22%를 찍고(당시 미국 3.24%) 그다음부터 추락했으니 일본 경제의 전성기 막판 시절로 주가는 회복된 셈이다.

일본 주가가 추세적 반등으로 돌아선 2012년은 그 유명한 아베노믹스(Abenomics)가 시작된 시점이다. 아베노믹스는 2012년 말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뒤 추진된 일본재흥정책으로 ‘세 개의 화살’(공격적 통화정책·유연한 재정정책·구조개혁정책)로 구성된다.

윤 정부의 일본 닮은 ‘증시 밸류업’…배당 증가 기대만으론 어림없다

일본 증시 부양 스토리…아베노믹스

아베노믹스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아베노믹스의 궁극적인 목적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탈출과 경제성장을 위해 각각의 화살이 어떤 파급경로(transmission channel)를 상정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를 분석한 연구는 적잖다. 간단히 정리해보자. 우선 첫 번째 화살은 아베 신조 총리의 “윤전기를 쌩쌩 돌려서 일본은행으로 하여금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게 하겠다”라는 말로 대표된다. 공격적인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시장주체들에 일으켜 경제활동 의욕을 고취하고 실질이자율 하락, 주식 등 자산 가격 상승, 엔화약세를 만들어 소비·투자·수출이라는 국내총생산(GDP) 주요 항목을 증가시키려는 의도다. 일본중앙은행은 (전 세계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발권력을 동원해 주식시장에서 직접 주식을 사는 비전통적 통화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일본중앙은행의 주식(ETF) 보유 잔액은 약 60조엔(2023년 6월말 기준)으로 일본공적연금펀드(GPIF) 일본주식보유액(50조엔)보다도 많다. 일본의 증시부양은 단순히 지난해부터 시작한 일본 거래소의 밸류업 정책뿐만 아니라 일본 중앙은행의 파격적 통화정책이 근저에 있다는 뜻이다. 한국 중앙은행은 이렇게 할 수 있나? 아닐 것이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불러일으켜야 할 정도로 물가가 낮지도 않고, 한은이 주식시장에 직접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두 번째 화살은 유연한 재정정책이다. 초기 의도는 확장재정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13년에 10조엔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으며 10년간 200조엔을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중장기 경제 계획과 유사하다. 이는 전통적인 케인스식 부양책으로 총수요 항목인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또한 아베 내각은 지출 재원 확보를 위해 소비세를 올렸다. 조세수입 추세를 보면 1990년도에 약 60조엔이었다가 지속해서 감소하여 2009년도에는 약 38조엔이었는데 2020년에는 약 63조엔으로 회복했다. 이런 재정정책이 일본 주가상승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긴축재정과 감세 정책은 아베노믹스와는 반대방향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아베노믹스는 저물가와 저성장을 탈피하려는 거시부양정책과 미시개혁정책의 종합 패키지인데 한국은 달랑 밸류업 프로그램 하나만 있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본, 기업구조개혁은 10년 프로젝트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은 구조개혁정책이다. 일본경제의 체질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성장 동력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통화정책이 일본 병을 낫게 하는 초기 처방 약, 재정정책이 회복을 위한 식사, 구조개혁이 근본적 체질개선을 위한 근력 트레이닝이라고 비유되기도 한다. 이 구조개혁정책에 일본의 기업지배구조개선정책이 포함된다.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면서 전 정부 차원에서 기업지배구조 관련 법률과 규범을 정비하였다. 2014년 이후 2021년까지 회사법이 두 차례 개정된 것을 비롯해, 스튜어드십 코드, 기업지배구조 코드, 기업지배구조 관련 각종 가이드라인의 제정 및 개정이 이뤄졌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도쿄거래소 1부 시장 상장회사 중 이사회에서 독립사외이사를 3분의 1 이상 선임하는 비율은 2014년 6.4%에서 2020년 58.7%로 급속하게 증가했다. 한국의 국민연금 격인 일본공적연금펀드의 활약도 상당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해 일본의 밸류업프로그램은 이런 흐름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윤석열 정부는 연초부터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면서도 일반주주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은 접었다. 반면 공매도 폐지·금융투자소득세 폐지·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확대·상속세 완화 등을 이야기한다. 국민연금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지만 현재까지 국내기업 지배구조개선에 있어 중요한 재벌에 대한 언급은 없고 소유분산기업인 민영화된 옛 공기업에 대해 언급만 할 뿐이다.

과녁 벗어난 한국 정부의 일본 벤치마킹

아베노믹스의 성과에 대한 논쟁을 보면 아베노믹스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통화정책은 성공, 재정정책은 중간, 구조개혁정책은 화살이 아니라 바늘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비판 진영에서는 주가상승 효과는 인정하지만, 소비·투자·수출 등 총수요 항목의 제고 효과가 미미하여 경제성장에 한계를 드러냈으며, 수출기업·대기업 및 자산소유자가 승자이고 내수·중소기업 및 저소득층이 패자라는 주장이 나온다. 자산 거품 경제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금도 진행되는 이 논쟁의 최종 결론이 어디에 이를지는 모르겠으나 윤석열 정부는 첫 번째, 두 번째 화살은 아예 없고 세 번째 화살은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늘도 아니라 과녁을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한국 밸류업 정책에 대한 주식시장의 기대는 안타깝게도 과잉으로 보인다. 몇몇 기업의 배당에 대한 기대가 주가의 중장기 상승 모멘텀 이 될 정도로 시장은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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