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의 한 식료품 가게에서 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의 한 식료품 가게에서 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연이은 ‘물가 쇼크’에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더 늦춰질 거란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상업용 부동산 위기 등 그간의 고강도 긴축 여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착륙(경기 침체 없는 물가 안정) 시나리오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현지 시간) 미 노동부에 따르면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0.9% 상승했다. 시장 전망치(0.1%, 0.6%)를 웃도는 수준으로 5개월 만에 최고치다. 특히 변동성 큰 식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는 전월비 0.5%, 전년동월비 2%로 예상치(0.1%, 1.6%)를 더 크게 상회했다.
생산자물가는 일정 시차를 두고 최종 소비재 가격에 반영되는 만큼 향후 소비자물가지수(CPI)도 튀어오를 수 있다. 앞서 1월 CPI도 2%대에 진입할 거란 예상과 달리 전년비 3.1% 상승했다. PPI에 포함되는 일부 항목은 Fed가 선호하는 물가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 지수에도 반영된다.
끈적한 물가 상승(sticky inflation)을 이끄는 건 서비스물가다. 1월 PPI 항목 중 병원 외래진료비(2.2%) 등 특정 의료 서비스 부문과 금융 포트폴리오 관리 수수료(+5.5%) 등 서비스 부문이 0.6%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고용 호조에 임금 인상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빅테크 기업 실적에 힘입어 주가도 상승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의료 서비스 부문의 노동력 부족 등을 고려하면 서비스 가격 상승 압력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1월 CPI에서도 에너지를 제외한 서비스 물가가 0.7% 상승했는데 이는 2022년 9월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업들이 늘어나는 인건비와 재료비, 임대료 비용을 시차를 두고 고객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라며 “소비자들은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저축액이 남아 있고 임금은 인상되고 있기 때문에 소비를 줄이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 노동통계국]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 노동통계국]
심상찮은 물가 지표에 금리 인하 기대감은 차츰 꺾여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 전문가들은 Fed가 오는 3월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10%로 낮게 보고 있다. 연초만 해도 80%에 육박했는데 한 달새 한자리 수 코앞까지 곤두박질쳤다. 5월에도 금리를 동결할 거란 의견이 60%대로 인하(30%대)보다 우세하다. 다만 6월에 내릴 거란 의견은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AXS 인베스트먼트의 그레그 바숙 최고경영자(CEO)는 “최근까지 대부분 투자자들이 금리 인하가 올 3월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Fed는 하반기에 들어서야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메리카은행의 빌 애덤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Fed는 1월 CPI와 PPI 보고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낼 것”이라며 “지난 몇 년 동안 휘발유ㆍ기초 식료품ㆍ내구재 가격이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곳곳에서 인플레이션이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금리 인하가 늦어질수록 미 정부와 Fed가 목표로 하는 경제 연착륙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전미실물경제협회(NABE)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경제 전문가의 24%는 미국이 올해 경기침체를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2월(58%)보다는 완화됐지만 4명 중 1명은 여전히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Fed가 너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응답은 21%로 지난번 조사(14%)보다 높아졌다. 알리안츠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수석 경제고문은 “경제 강세에 미국이 침체에 빠지지 않고 있으나 Fed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지속한다면 경기침체가 나타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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