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카이엔 성공에…SUV 거부하던 페라리 푸로산게 출시·맥라렌도 동참”스포츠카 오너 여러대 소유한 경우 많아…가족 위한 차 필요”
지난해 페라리 ‘푸로산게(Purosangue)’ 아시아 최초 공개 행사에서 차량이 공개되고 있다. 푸로산게는 페라리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4도어 4인승 차량으로 이탈리아어로 ‘순종(thoroughbred)’를 의미한다. 2022.10.21/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스포츠카의 사전적 정의는 ‘스피드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둔 오락용 자동차’다. 차고가 높고, 오프로드 주행용인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는 스포츠카 브랜드에서는 터부시되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포르쉐를 시작으로 페라리, 맥라렌 같은 브랜드까지 SUV 시장에 발을 들이밀고 있다. 결국 시장의 흐름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페라리는 지난 10월 용인에서 최초의 4도어 모델 푸로산게의 고객 초청 시승 행사를 진행했다. 페라리는 기존에 차량을 구매한 이력이 있는 고객에게 신모델 구매 우선 순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신차 출시 전 이같은 행사를 진행한다. 이미 국내에 배정된 사전계약 물량은 완판됐고, 올해 유럽 출시를 시작으로 국내 고객에게는 내년 2분기 즈음 인도될 예정이다.
페라리는 그동안 “SUV는 만들지 않겠다”던 브랜드였다. 경쟁 브랜드인 포르쉐가 카이엔을 처음 내놓았을 때 스포츠카 애호가들 사이에선 “멍청이들이나 타는 차”라고 혹평했는데, 이 흐름을 같이했다.
홀가 게어만 포르쉐코리아 대표가 17일 서울 강남구 레스파스 에트나에서 신형 카이엔 터보 GT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2023.8.17/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그러나 시장 변화는 어쩔 수 없었다. 2000년대 초반 적자에 시달리던 포르쉐는 카이엔 출시로 기사회생했다. 올해 3분기까지도 포르쉐는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한 24만2722대의 차량을 인도했는데, 이중 준대형 SUV 카이엔이 6만4475대를 차지했다. 이마저도 부분변경 모델 출시를 앞두고 소폭 줄어든 성적이다. 카이엔의 성공 이후 출시된 중형 SUV 마칸(6만8345대)과 함께 쌍두마차로 포르쉐 실적을 끌고 가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6424만1363대 중 SUV는 43.1%(2770만3641대)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판매 비중은 2021년 38.4%, 2022년 40.8% 등 점점 증가 추세다. 국내 시장에서도 SUV 차종(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은 올해 10월까지 누적 66만1036대 판매되면서 세단(41만8804대)을 크게 앞선다.
16일 강남 도산대로 로터스 플래그십 전시장에 로터스의 전기 SUV 엘레트라가 전시돼 있다. ⓒ News1 이형진 기자
그럼에도 페라리는 변심을 인정하기 어려웠는지, 업계에서는 푸로산게를 SUV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4도어 모델’ ‘FUV(페라리 유틸리티 차량)’라는 어색한 분류명으로 정신승리를 하는 중이다.
‘포람페’ 중 하나인 람보르기니도 2018년 우루스를 출시하면서 고속 성장하는 SUV 시장에 합류했다. 지난해 람보르기니는 9233대를 인도하면서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는데, 우루스가 절반 이상인 5367대를 차지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람보르기니는 국내에 351대가 팔렸는데, 이중 우루스는 217대(76%)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는 지난 16일 국내에 브랜드 최초의 SUV 전기차 엘레트라를 공개했고, 내년 출시를 예정하고 있다. 맥라렌 역시 SUV 도입을 거부하던 브랜드였지만, 마이클 라이터스 맥라렌 CEO는 지난 8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SUV 도입을 시사했다. 업계에서는 2028년 출시를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포츠카 브랜드 오너들은 차량을 한 대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대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본인 차량 말고도 가족들과 타야 할 차량이 필요한데, 이 때문에 SUV에 대한 요구도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