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업무개시명령’ 법적 적절성 따져보니 [뉴스AS]

의사 ‘업무개시명령’ 법적 적절성 따져보니 [뉴스as]

이른바 ‘빅5 병원’ 전공의들이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한 뒤 20일부터 병원 근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1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한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벌이자 정부가 연일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강경대응의 바탕이 되는 의료법상 ‘업무개시명령’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의사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헌법에만 유독 ‘국가의 국민 보건 보호 의무’가 명시되어 있는 만큼 위헌소지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25일 기준, 보건복지부는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 703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이 가운데 5976명에게는 ‘업무복귀 불이행 확인서’를 받았다. 대다수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따르지 않은 셈이다. 26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차장)이 “29일까지 떠났던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당근’을 제시했지만, “불응시 주동자 및 배후 세력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21일 박성재 법무부 장관)는 ‘채찍’은 여전하다. 전공의들은 지난 19일부터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집단행동을 이어오고 있다.

업무개시명령 위반은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이 가능하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사면허가 취소될 수 있어 형사처벌은 의사들에겐 위협이 된다. 업무개시명령이 가능한 직군은 의료인과 약사(의약품 제조업자·약국개설자 등), 화물기사(화물 운송사업자·종사자)다. 각각 1994년 ‘한약 취급권’을 놓고 약국과 한의원이 일제히 문을 닫았던 ‘한약분쟁’과 2002년 화물기사들의 ‘화물연대’ 결성이 도입 배경이 됐다.

업무개시명령이 부당하다는 주장의 핵심 근거는 노동을 강제한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022년 12월 화물기사 업무개시명령 조항에 대해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 바 있다. 당시 화물연대본부는 업무개시명령이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2조1항 위반이자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7조 등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정부가 비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국제노동기구 29호 협약에도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29호 협약은 ‘어떤 사람이 처벌의 위협 아래에서 강요받거나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닌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를 강제노동으로 규정한다.

반면 의사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합헌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헌법 36조 3항(‘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이 핵심 근거다. 헌법에 ‘보건권’을 규정한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므로, 다른 나라에서보다 위헌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법학박사인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23일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쓴 글에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헌법 제36조 제3항’에 국가의 보건책무를 명시하고 있는 국가다. 이런 명시적 조문이 없다면 업무개시명령이 국가가 의사들의 직업선택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위헌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이 크겠지만, 이 조항으로 인해 국가의 책무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강력하게 인정된다는 점이 그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의사면허제도는 면허를 가진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국가가 무면허 의료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운용하는 제도”라며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나라의 의사는 ‘국가의 보건사무를 대신하기 위해 면허를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법률적인 특성 (때문에) 의료법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위헌 소송을 할 수는 있으나 이길 확률은 낮다”고 밝혔다.

제도 자체는 합헌이라 해도 절차상 흠결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허창환 헌법 박사(변호사)는 2022년 쓴 ‘헌법상 근로의 의무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의사는 단기간 대체 불가능한 직업군이며, 헌법상 ‘근로의 의무’도 있기 때문에 업무개시명령의 대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화물기사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처럼 국무회의 심의 과정 등을 거치는 절차가 없으므로 ‘적법절차 원칙’ 위배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처분권자 재량권이 커 “최소한의 공정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 전공의가 2020년 8월 의대 정원 확대로 ‘전국의사총파업’이 벌어지자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지만 2021년 ‘당사자 부적격’을 이유로 각하됐다. 청구인이 개별적인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광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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