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금리 내릴 때 아니다'…물가·가계부채 부담에 9연속 동결(종합)

한은, 1년 넘게 3.50% 유지…미국 연준의 ‘인하 신중론’도 영향

미국 6월께 낮추면 한은도 하반기 통화정책 완화로 돌아설 듯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한국은행이 22일 다시 기준금리를 3.50%로 묶고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했다.

통화 정책의 제1 목표인 물가 안정 측면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직 한은의 목표(2%)까지 충분히 떨어지지 않은 데다, 가계부채 증가세도 뚜렷하게 꺾이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금리를 내리면 자칫 이들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미국(5.25∼5.50%)과의 역대 최대(2.0%p) 금리 격차를 고려할 때, 한은이 연방준비제도(연준·Fed)보다 앞서 금리를 낮춰 외국인 자금 유출과 환율 불안을 부추길 이유도 없다.

하지만 2021년 8월 이후 2년 반 넘게 이어진 긴축 탓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대출 부실 위험이 커졌고, 고금리가 계속 민간 소비를 압박하면 올해까지 경제 성장률이 2년 연속 1%대(실질 GDP 기준)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결국 한은도 연준을 따라 하반기부터 통화정책 완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금리 내릴 때 아니다'…물가·가계부채 부담에 9연속 동결(종합)

의사봉 두드리는 이창용 총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새해 두 번째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기준금리(연 3.50%)를 조정 없이 동결했다.

앞서 2020년 3월 16일 금통위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p 낮추는 이른바 ‘빅컷'(1.25→0.75%)에 나섰고, 같은 해 5월 28일 추가 인하(0.75→0.50%)를 통해 2개월 만에 0.75%p나 금리를 빠르게 내렸다.

이후 무려 아홉 번의 동결을 거쳐 2021년 8월 26일 마침내 15개월 만에 0.25%p 올리면서 이른바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섰다.

그 뒤로 기준금리는 같은 해 11월, 2022년 1·4·5·7·8·10·11월과 2023년 1월까지 0.25%p씩 여덟 차례, 0.50%p 두 차례 등 모두 3.00%p 높아졌다.

하지만 금리 인상 기조는 사실상 지난해 2월 동결로 깨졌고, 3.5% 기준금리가 작년 1월 말부터 이날까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아직 금리 내릴 때 아니다'…물가·가계부채 부담에 9연속 동결(종합)

[그래픽] 소비자물가 추이

한은이 9연속 동결을 결정한 것은 물가·가계부채·부동산 PF·경제성장 등 상충적 요소들이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무엇보다 통화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경우 지난해 12월(3.2%)까지 5개월 연속 3%대를 유지하다가 1월(2.8%) 반년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식료품·에너지 가격 등에 따라 언제라도 다시 뛸 수 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최근 물가 상황 점검 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수요 압력 약화,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위험)로 유가 불확실성이 커지고 농산물 등 생활물가도 여전히 높다”며 “당분간 물가 둔화 흐름이 주춤해지면서 일시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소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경제 규모(GDP)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가계부채가 계속 늘고,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개발 공약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까지 다시 들썩이는 점도 한은이 조기 금리 인하를 머뭇거리는 이유다.

실제로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은 1월까지 10개월째 불었다. 특히 1월에만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855조3천억원)이 4조9천억원 늘었는데, 1월 기준으로는 2021년 1월(+5조원) 다음 역대 두 번째로 큰 증가 폭이다.

작년 말 기준 가계신용(빚;가계대출+미결제 카드 사용액) 잔액(1천886조4천억원)도 직전 분기(1천878조3천억원)보다 0.4%(8조원) 늘어 역대 최대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아직 금리 내릴 때 아니다'…물가·가계부채 부담에 9연속 동결(종합)

[그래픽] 가계신용 잔액 추이

그렇다고 물가와 가계부채를 억누르기 위해 기준금리를 다시 올릴 수도 없다. 금리 부담이 더 커지면 태영건설과 같은 부동산 PF 대출 부실이 줄줄이 터지고, 소비도 위축돼 한은이 제시한 올해 성장률(2.1%) 달성이 어려워진다.

미국의 인하 시점이 시장의 기대와 달리 계속 늦춰지는 점도 한은의 동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1일(현지 시각) 미 연준이 공개한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대체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목표 수준(2%)을 향해 계속 둔화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준금리 인하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고물가 시기의 마지막 국면에서 너무 일찍 통화정책 완화로 돌아섰다가 물가 안정기 진입 자체가 무산되는 이른바 ‘라스트 마일(목표에 이르기 직전 최종구간) 리스크’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한은의 동결 행진이 상반기까지 이어지다가, 미국이 6월께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면 한은도 하반기부터 금리를 낮추기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연준이 6월 인하를 단행하면, 이를 확인한 한은도 7월부터 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있다”며 “0.25%포인트(p)씩 7·8월 연속 인하한 뒤 10·11월 중 한 차례 더 내려 연말까지 모두 세 번, 0.75%p 기준금리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7월 인하 설’이 다소 우세하지만, 4분기까지 미뤄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이 예상하는 미국 금리 인하 시점이 3월, 5월을 거쳐 이제 또 6월로 계속 늦춰지고 있다”며 “한은은 미국이 인하 기조로 돌아서 꽤 금리를 낮춘 뒤에야 모든 것을 확인하고 4분기께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직 금리 내릴 때 아니다'…물가·가계부채 부담에 9연속 동결(종합)

[그래픽] 주요 기관 2024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News Related

OTHER NEWS

황일봉 전 광주 남구청장 "정율성 기념사업 추진 사죄"

정율성 사업 철회 촉구 집회 참석한 황일봉 전 회장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황일봉 5·18 부상자회 회장이자 전 광주 남구청장은 28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전범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 Read more »

대입 준비, 기본에 충실한 '적기교육'이 정답

대입 준비, 기본에 충실한 ‘적기교육’이 정답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 날인 17일 대구 수성구 정화여고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가채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었다. 킬러문항이 없어지면 물수능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 Read more »

서울 도봉구,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 완료…보행로 확장·조명 설치

서울 도봉구,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 완료…보행로 확장·조명 설치 오언석 도봉구청장이 지난 24일 우이천 제방길 정비공사 현장을 주민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사진=도봉구청 서울 도봉구(구청장 오언석)가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를 완료하고 ... Read more »

허재현 기자 "최재경 녹취록, 신뢰할만한 취재원에게서 확보"

검찰 피의자 조사…”공수처에 검찰 관계자 고소” ‘대선 허위보도 의혹’ 허재현 기자, 검찰 피의자 조사 (서울=연합뉴스) 조다운 이도흔 기자 =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리한 허위 보도를 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받는 ... Read more »

‘담배 모르는 세대’ 세웠던 뉴질랜드…세수 모자라 금연법 철회

한 남성이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다음 세대 완전 금연을 목표로 한 뉴질랜드의 야심적인 금연 대책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27일 출범한 뉴질랜드의 중도 우파 국민당 주도의 연정은 2009년 1월1일 ... Read more »

'수억 광고 수익 숨기고 해외 여행 유튜버', 재산 추적한다

‘수억 광고 수익 숨기고 해외 여행 유튜버’, 재산 추적한다 김동일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28일 정부세종청사 국세청에서 지능적 재산은닉 고액 체납자 집중 추적조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유명 유튜버 A씨는 매년 수억 ... Read more »

식사 직후 '과일' 먹는 습관… 당장 멈춰야 하는 이유

건강을 위해 매일 과일을 챙겨 먹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과일도 언제 먹느냐에 따라 몸에 끼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식사 후 곧바로 과일을 먹는 습관은 오히려 독이 될 수 ... Read more »
Top List in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