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KBS 1TV ‘사사건건’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출연해 의대 증원 찬반 토론을 벌였다. 사진 유튜브 캡처
23일 KBS 1TV ‘사사건건’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출연해 의대 증원 찬반 토론을 벌였다. 사진 유튜브 캡처
전공의 사직 나흘 째인 23일 의·정이 첫 공개 토론을 벌였지만 의대 증원을 놓고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양측은 이번 사태를 촉발한 ‘2000명’ 증원 규모에 대해 “양보할 문제가 아니다(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양보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이 협상의 걸림돌(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이라며 설전을 벌였다.
이날 토론은 KBS 1TV 시사 프로그램 ‘사사건건’을 통해 90여분간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양측은 의사 부족을 둘러싼 판단에서부터 공방을 주고받았다. 박 차관은 “우리나라 의료 수요는 고령화 등으로 인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라며 “공급은 한정돼 있다 보니 대형병원에 긴 대기 시간이 생기고, 상경 진료, 응급실 뺑뺑이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택우 위원장은 “외국은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당일에 전문의를 만나지 못하는 문제는 전혀 없다”며 “국민이 느끼기에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필수 의료과에 일부 부족한 것은 맞다”면서 “필수 의료과를 기피하는 원인이 무엇인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는 이른바 필수과가 낮은 수가, 열악한 근무환경 등으로 인해 기피되는 게 문제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민수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민수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김택우 위원장은 기술 발전을 고려하면 오히려 의사 감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 외국에 비해 의료이용 횟수가 약 3배 정도 많다. 과도한 의료이용 횟수를 줄여나간다면 오히려 의사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라며 “인공지능(AI) 받달로 인해 업무가 줄 거라고도 보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 차관은 “국내 최고 연구자들이 연구한 보고서에서 공통적으로 (2035년이면) 1만여명이 부족하다고 예측한다. 정부가 추가로 분석한 결과 현재도 5000명 정도가 부족하다”며 “국민 건강 증진, 의사 인력의 재배치, AI 도입으로 인한 업무 효율 등으로 보완적으로 채울 수는 있겠지만, (의사가 부족한) 기본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양측은 기존에 주장해왔던 논리대로 팽팽한 기싸움을 보였다.
정부가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를 의료계와 협의 없이 확정지은 부분에 대해서도 평행선을 달렸다. 김 위원장은 “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정부가 현재 제시한 2000명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며 논의 절차를 문제삼은 반면, 박 차관은 “작년 1월 대통령 업무보고 때 증원 계획을 밝혔고 의료현안협의체에서 28번 만나서 논의를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최종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숫자를 두고 의료계와 흥정하듯이 ‘2000명 받을래? 아니면 1000명으로 줄일까?’ 이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00명에 대해 한 발도 양보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이 지금 협상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지만, 박 차관은 “(증원 숫자는) 협상을 통해 양보하고, 밀고 당기고 할 과제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차관은 “의대 정원을 늘려도 당장 내년에 의사들이 나오는 게 아니고 10년 후에 나온다. 지금 결정을 해야만 하는 것”이라며 “늦어질수록 국민 고통이 더 커진다”고 증원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17일 서울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김택우 위원장이 의료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제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서울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김택우 위원장이 의료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제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 중 환자단체가 전화 연결로 출연해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안선영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 이사는 “정부도, 의협도 환자를 내팽개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선영 이사는 정부와 의사 양쪽 모두를 대상으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정부 정책에 대해 도저히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어 (전공의) 개개인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하면서도 “피교육생인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났다고 해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전공의에 의존하는 의료체계를 해결하고자 종합적인 그림을 만든 것”이라며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앞으로 있어야 하는데, 머리를 맞대고 논의도 하기 전에 전체 그림이 맘에 안 든다고 뛰쳐나가버렸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함께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 제시한 정책 패키지를 두고도 의협 측은 현실성을 문제삼았으나, 정부는 정책 추진 의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반박했다. 정부는 의대 증원 발표에 앞서 지난 1일 필수의료 분야 수가 인상 등에 2028년까지 건강보험에서 10조원 이상(연간 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대책 등을 발표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재정적으로 1년에 2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일본의 소아 진료 수가의 절반으로만 올려도 연간 1조 5000억원이 들어간다”며 “(연간 2조원이) 충분한 금액이라는 판단이 있었다면 아마 모든 분들이 오케이 하셨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박 차관은 “저희가 10조원 ‘플러스 알파’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만약에 부족하다면 더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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