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새마을금고 계좌가 있으신가요? 국민 절반이 이용하는 대표 상호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가 창립 60여 년 만에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섰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내부 구조는 시대에 뒤처진 탓입니다. 내가 맡긴 돈은 괜찮은지 걱정도 커져갑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새마을금고의 문제를 뿌리부터 추적해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새마을금고, 고위험 투자 PF 대출에 ‘1조 부당 투입’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 잡은 새마을금고중앙회 1층 로비에 설치된 금고 출범 60주년 관련 기록 사진. 한국전쟁 후 지역경제 재건을 위해 1963년 경남 산청군 생초면 등지에서 향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새마을금고 설립사가 응축돼 있다. 새마을금고는 이후 전국으로 확산해 1973년 지금의 새마을금고중앙회에 해당하는 마을금고연합회가 결성됐다. 대표적 상호금융기관으로서 재직증명서나 담보가 없는 소상공인, 서민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반성장했지만 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경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정민승 기자
새마을금고가 최소 1조 원 이상의 자금을 고위험 대체투자·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등에 부당하게 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조직 1ㆍ2인자(박차훈 전 중앙회장·류혁 전 신용공제 대표)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회사들에 금고 돈이 뭉텅이로 꽂힌 정황이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실무 직원들이 반대했지만 묵살당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해 새마을금고 위기가 가시화하자 정부 고위층이 총출동해 가까스로 진화했지만, 더 큰 불씨가 남아 있었던 셈이다. 정부는 새마을금고의 이런 문제를 발견하고도 수사의뢰 등 후속 조치를 주저하고 있어 새마을금고 수뇌부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1일 행정안전부와 새마을금고중앙회, 예금보험공사 등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9월부터 새마을금고 대체투자 600여 건(약 30조 원)과 PF대출 300여 건(약 8조 원)을 특별감사해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작년 7월 남양주동부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 이후 규모가 큰 대출을 중심으로 점검하던 중 특혜 대출 등 위법성이 의심되는 건을 다수 발견해 대체투자와 PF대출 전체로 특별감사를 실시한 결과 비정상적 대출과 투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행안부가 새마을금고의 대체투자와 PF대출을 특정해 전수조사한 것은 처음이다.
뒷돈 수수 의혹을 받는 박차훈 전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이 지난해 8월 8일 서울 송파구 동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9월에 시작된 특별감사는 3개월 만에 사실상 마무리됐다. 국내 금융 시스템의 ‘약한 고리’인 새마을금고의 위기(6월 14일 기준 연체율 6.49%)가 금융권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신속하게 움직인 결과다. 한국일보는 지난 2개월 동안 부동산·법인 등기부등본 156건(신탁원부 19건), 기업 공시 등 각종 자료와 부산·울산, 경남 거제·고성, 경기 광명·시흥 등 전국 각지의 현장 취재 등을 토대로 새마을금고 투자ㆍ대출의 문제점을 살핀 뒤 불법성이 의심되는 사업지 6곳을 확인했다. 새마을금고가 이곳에 투입한 자금은 1조 원이 넘었다.
문제가 된 대출과 투자에는 박 전 회장과 류 전 대표 등 중앙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흔적이 있었다. 예컨대 서울 서초구의 한 상가 재건축 관련 대출 건은 중앙회 실무자들이 ‘회수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대출 불가’ 판단을 내렸지만, 윗선의 영향력 탓에 770억 원이 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마을금고에서 거액을 수혈받은 기업과 자산운용사들이 중앙회 고위층의 민원 해결사로 뛴 정황도 잡혔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무마 압력” 여당 정치인 개입설 등 의혹도
문제는 감사를 끝내고도 행안부가 후속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감사 결과는 이상민 장관에게 지난달 보고됐고, 이후 대통령실에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높은 분들의 외압으로 (감사 내용이) 묻힐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행안부는 ‘선택적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특별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중앙회 내부에선 비위 덮기에 급급한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다. ‘직장협의회로는 경영진을 견제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지난해 7월 중앙회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조합도 출범했다.
지난해 7월 일부 새마을금고의 부실로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발생했을 당시 서울 시내 한 금고 지점에 예금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행안부 고위 관계자는 “덮어달라는 민원이 많이 들어온 건 사실이지만 조사해서 나온 내용을 어떻게 덮겠느냐”며 “감사 결과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검찰에 수사 의뢰하려면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있을 뿐”이라며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안부의 후속 조치가 지연되면서, 새마을금고중앙회 안팎에선 박 전 회장과 친분이 깊은 여권 유력 정치인의 감사 무마 압력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해당 정치인은 한국일보에 “박 전 회장은 젊었을 때 JC(지역 청년봉사단체) 활동을 함께한 선배로,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한두 번 만난 게 전부”라며 “(감사 무마를 위해) 누구에게도 전화한 적이 없으며, 누구를 소개해준 적도 없다”고 밝혔다.
※ 지역 새마을금고와 중앙회에서 발생한 각종 부조리(부정·부실 대출 및 투자, 채용·인사 과정의 문제, 갑질, 횡령, 금고 자산의 사적 사용, 뒷돈 요구, 부정 선거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email protected])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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