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 “참사 반복 말자”는 기억식… 정치인 말들은 공허했다
거친 봄비가 내린 땅에 다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짧아지는 그림자와 달리 경기도 안산으로 향하는 길은 유달리 길었다. 화랑유원지 주위로 수천 명의 발걸음이 모여들었다. 슬픔과 위로를 나누면서, 10년 전 그날과 현재를 떠올리길 반복하면서. 2024년 4월 16일, 304명과 함께 가라앉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열 번째 봄이 여기, 안산에도 기어코 왔다.
이날 오후 3시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이 열렸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이태원, 스텔라데이지호 등 참사 유가족이 함께 자리했다. 여야 정당 대표들도 참석했다. 해양수산부 장관과 안산시장은 추도사를 낭독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자리는 끝까지 비어 있었고, 계속해서 미뤄진 4·16 생명안전공원의 구체적인 착공 계획, 세월호 참사 재조사 여부 등은 언급조차 없었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안전한 바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생명안전공원 착공과 세월호 재조사 계획 등을 묻자) 오늘 행사 성격상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
이날 시민들은 단원고 희생자 250명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고 묵념을 시작했다. 이들과 같은 나이의 97년생은 직접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고, 추모 시 낭송과 합창단 공연이 뒤따랐다. 오후 4시 16분이 되자 한 번 더 묵념이 이어졌다. 첫 번째 묵념 때 하늘로 올라간 수백 명의 이름이 두 번째 묵념과 함께 땅으로 다시 내려앉았다.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졌지만, 슬퍼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가 또 다른 참사를 막는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고, 이 자리에 모인 정치인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시민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여기 앞자리에 앉아 있는 정치인들이 지난 10년 동안 애도와 추모를 게을리했잖아요. 생명안전공원 건립 문제도, 세월호를 비방하는 사회 분위기도 결국 그들이 노력해야죠.” (10주기 기억식에 참여한 한낱씨)
“말로만 ‘약속한다’, ‘책임진다’는 공허한 말들이 아니라 책임자 처벌 등 실질적인 변화가 있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참사가 반복되는 문제를 세월호로 매듭지었으면 해요.”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김선자씨)
이날 식순에서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 ‘기억’, ‘약속’, ‘책임’이었다. 세 단어는 서로 연결돼 있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말은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서로의 약속이자,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하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기억하겠다는 말, 약속하자는 말, 책임지겠다는 말은 이날 노란 물결이 되어 화랑유원지를 가득 메웠다. 기억식은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뻔한 소리” “위로 없어”… 정부 추도사, 냉담한 반응
정부 관계자들의 추도사는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을 불렀다.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른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인내하고 계신 유가족께 다시 한번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추도사를 시작했다. 강 장관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그동안 무뎌지지 않는 아픔을 큰 교훈으로 삼아 재해와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바다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부끄럽다”며 추도사를 읽어나갔다. 김 지사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12가지 권고안을 제시했으나 중앙정부는 공식 사과, 재발 방지 등 모두 약속하지 않았다. 세월호 추모사업과 의료비 지원 예산도 줄줄이 삭감됐고 생명안전공원도 비용의 논리에 밀려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이민근 안산시장은 “세월호 이후 안타까운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법적 제도적 변화가 있었다”며 추도사를 이어갔다. 이 시장은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산시는 생명 존엄의 가치를 나누고 화합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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