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다 죽어' 설 맞은 중소기업들의 한숨

'이러다 다 죽어' 설 맞은 중소기업들의 한숨

은행 대출 상담. 연합뉴스

은행 대출 상담. 연합뉴스

#1. 인천 강화군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이 운용하는 구조개선전용자금을 신청할 예정이다. 매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때보다 절반 이상 줄었고, 대출금리는 2~3배 가까이 치솟아 회사 운영이 어려워졌다.

A씨는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좋아질 수 없는데 은행은 매출실적으로 금리와 대출금을 정한다”며 “손해를 보더라도 매출을 늘리면 대출금액은 늘어나 잠시 숨통이 트이겠지만 결국 회사 자금 사정은 더욱 나빠진다”고 말했다. A씨는 폐업을 막기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중진공에 문을 두드리지만 이 선택이 맞는지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2. 경기 김포시에서 20년 넘게 건설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B씨는 최근 공장을 매각하고 1인 기업으로 전환했다. 한때 연매출 10억 원을 넘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주요 거래업체와의 납품이 줄면서 지난해 연매출이 1억 원을 겨우 넘겼다.

B씨는 “회사를 차리고 처음으로 직원들에게 ‘설 보너스’를 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서글프다”며 “이렇게 버텨서 다시 재기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이후 지속된 경제불황이 최근 들어 더욱 심화되면서 설을 맞은 수도권 지역 중소기업들의 ‘신음’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급증한 파산 기업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법인 파산 신고 최근 10년새 최대…수도권 기업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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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이미지 제공

스마트이미지 제공

11일 대법원 통계월보를 보면 지난해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수도권 지역 법인은 모두 1103곳(서울회생법원 678건, 의정부지방법원 42건, 인천지방법원 63건, 수원회생법원 320건)으로 전국 신고 건수인 1657건의 66.6%를 차지했다. 전국에서 문을 닫는 기업의 3분의 2가 수도권에 있었고, 하루에 3곳 꼴로 수도권 소재기업이 법원을 찾아 파산을 신청한 셈이다.

 

이는 대법원이 법인 파산 신고 통계를 공개한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많은 수치다. 이전에 법인 파산 신고가 가장 많았던 해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을 보였던 2020년으로 전국 1069건, 수도권 719건이었는데, 지난해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건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데다 미국발 고금리 쇼크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당시 대출을 받은 기업들이 장기불황과 고금리를 버티지 못한 결과로 추정된다.

 

2년새 7배 오른 은행 금리…시중은행 中企 대출 연체율도 급증

앞서 한국은행은 2021년 8월 0.50%였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1월까지 10차례 인상해 3.50%로 급격히 끌어올렸다. 2년 사이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이자액은 7배가량 늘어났다. 이후 금리 동결 기조가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소기업들이 감당하기엔 높은 수준이다. 경기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수익이 감소한 기업들은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신한·우리·NH농협)의 중소기업 대출 평균 연체율은 0.39%로 가계대출 평균(0.28%)보다 0.11%포인트가량 높았다.

 

각 은행별로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을 보면 농협은행이 0.51%로 가장 높았다. 농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0.5%를 넘은 건 코로나19가 확산했던 2020년 1분기 이후 처음이다. 이어 하나은행이 0.4%, 우리은행 0.38%, 신한은행 0.34% 순이었다. 모두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러다 다 죽어' 설 맞은 중소기업들의 한숨

2023년 11월 기준 국내은행 원화대출 부문별 연체율 추이. 금융감독원 제공

2023년 11월 기준 국내은행 원화대출 부문별 연체율 추이. 금융감독원 제공

지원 절실하지만 높은 대출·정부지원의 문턱

이같은 분위기는 중소기업 업계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경기도의 한 세무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업체 100여 곳의 세무 업무를 대행했지만 올해 들어 80여 곳으로 줄었다”며 “장기불황으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이 발주 물량을 줄이면서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먼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금리 문제도 중소기업을 옥죄고 있다”며 “일례로 경기도의 한 업체는 은행 이자를 갚지 못해 부동산을 매각하려 했지만 고금리와 불황으로 팔지 못해 수입도 없는데 연체 이자는 쌓이는 경우가 최근 자주 목격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의 숨통이 트이기 위해서는 은행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행태지수는 –6으로 대기업(3)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았다. 이 지수가 음수이면 대출 심사와 지급, 관리 등을 보다 까다롭게 한다는 의미다.

 

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중소기업중앙회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의 지원기관에도 문을 두드리지만 이 역시도 도움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진공 관계자는 “정부나 국회에서 중소기업 지원 심사 기준을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며 “구조개선전용자금 또는 선제적 자율구조개선 프로그램 등 중소기업이 부실 상태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도록 많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원 대상과 지원 폭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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