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조원 사기 혐의'로 사형 선고...베트남 억만장자 쯔엉 미 란은 누구?

'60조원 사기 혐의'로 사형 선고...베트남 억만장자 쯔엉 미 란은 누구?

쯔엉 미 란 반틴팟홀딩스 회장은 지난 11년간 베트남 최대 은행 중 하나의 돈을 빼돌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찌민시 소재 웅장한 식민지 건축 양식의 법원에선 마치 법정 드라마와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쯔엉 미 란(67)이다.

베트남 역사상 가장 이목이 쏠린 재판으로 손꼽히는 이번 재판에선 쯔엉 미 란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부동산 기업 ‘반틴팻홀딩스(VTP)’의 회장인 란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은행 사기를 조직한 혐의로 이 날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실 이러한 사건에서 사형이 선고된 건 극히 이례적인 일로, 란 회장은 베트남에서 화이트칼라 범죄로 사형까지 선고받은 몇 안 되는 여성 중 하나로 남게 됐다. 란 회장에겐 여전히 항소의 기회가 남아 있다.

호찌민 법원은 란 회장이 11년간 사이공상업은행(SCB)에서 허위 대출 신청으로 440억달러(약 60조원)를 빼돌렸다는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이중 270억달러(약 37조원)는 영원히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2023년 기준 베트남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한편 베트남 현지에선 평소와 달리 여러 세부 사항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이번 사건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공산당 당국의 모습에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베트남 공산당 당국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선 증인으로만 2700명이 소환됐으며, 검찰 10명과 변호사 200명이 관여했다고 한다. 게다가 증거는 상자 104개에 담길 양으로 무게만 해도 총 6톤에 달했으며, 혐의를 부인한 란 회장과 함께 관련 피고인 85명이 재판에 섰다.

그러나 모든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중 4명은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나머지엔 징역 3~20년 형이 내려졌다. 란 회장의 남편 및 조카는 각각 징역 9년, 17년 형을 선고받았다.

전직 미 국무부 관료이자, 베트남과 관련해 오랫동안 일해온 데이비드 브라운은 “공산주의 시절에도 이런 식의 법정 쇼는 없었던 것 같다”면서 “확실히 이 정도로 큰 규모의 재판은 전례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법정 드라마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란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60조원 사기 혐의'로 사형 선고...베트남 억만장자 쯔엉 미 란은 누구?

란 회장은 과거엔 ‘사이공’이라 불렸던 호찌민시의 어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정상에 오르다

호찌민시의 어느 소박한 중국계 베트남 가정에서 태어난 란 회장은 야망을 갖고 정상으로 올라 결국 대형 금융 스캔들의 중심에 서게 된 인물이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노점상을 운영했던 란 회장은 ‘도이 모이’로 알려진 베트남의 경제 개혁 시기에 부동산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1990년대 중반엔 각종 호텔과 레스토랑 등 화려한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축적하며 기민한 사업적 감각을 뽐냈다.

그러나 란 회장을 법정으로 몰아간 건 사이공상업은행(SCB)과의 관계가 드러나면서부터다.

현지 검찰은 란 회장이 각종 유령회사 및 대리인 명의 등을 동원해 SCB의 지분 약 90%를 소유하면서, 개인 소유 지분을 5%로 제한하는 법을 어겼다고 봤다.

그리고 란 회장은 이러한 자신의 은행 제국에서 사기 행각을 벌였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빼돌린 것이다.

란 회장의 대출이 SCB 전체 대출의 93%를 차지할 정도였다.

검찰에 따르면 2019년 2월부터 약 3년간 란 회장은 운전기사를 시켜 SCB에서 108조베트남동(약 6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인출해 자신의 개인 지하실에 보관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가장 고액권인 지폐로 구성됐다고 하더라도 순수 현금 무게만 무려 2톤에 달하는 양에 많은 국민이 경악했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은행에서 대출받기 위해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심지어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란 회장은 자신의 대출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거액의 뇌물을 건넨 혐의도 받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중 1명은 당시 SCB의 수석 검사관 출신으로, 란 회장 측으로부터 뇌물 500만달러(약 70억원)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전직 검사관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제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60조원 사기 혐의'로 사형 선고...베트남 억만장자 쯔엉 미 란은 누구?

이번 재판은 ‘사이공상업은행(SCB)’의 본사가 자리한 호찌민시에서 진행됐다

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은 란 회장 앞엔 여전히 채권 사기 등 또 다른 혐의와 관련해 최소 2건의 추가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

한편 SCB의 채권 사기 범죄 피해자는 4만2000명이 넘는다. 27~60세인 이들은 나이도, 사회적 배경도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단 트렁 롱(48)이다.

롱은 번화한 호찌민시에서 부동산을 판매했다. 그는 딸을 해외에서 교육시켜 좋은 미래를 보장해주겠다는 한 가지 확고한 목표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20년 동안 쉴 새 없이 일한 끝에 총 17억베트남동(약 9000만원)을 모을 수 있게 됐다. 월 평균 소득이 330달러(약 45만원)를 간신히 넘는 베트남에선 엄청난 액수다.

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하나뿐인 딸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모았지만, 이번 사기 사건으로 인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건으로) 제 세상은 무너졌으며, 제 딸의 꿈도 깨져버렸습니다.”

“모든 걸 다시 이뤄낼 수 있을 만큼 제가 건강한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

'60조원 사기 혐의'로 사형 선고...베트남 억만장자 쯔엉 미 란은 누구?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총비서는 반부패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란 회장에 대한 첫 번째 재판이 진행되면서 어떻게 10여 년간 이러한 사기가 발각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싱가포르 ‘유소프 이삭 연구소(ISEAS)’서 베트남 연구를 담당하는 르 홍 히엡 연구원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비밀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란 회장과 반틴팟홀딩스가 입지가 가장 좋은 부동산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데 필요한 돈을 대고자 SCB를 마치 개인적인 돼지저금통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건 시장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란 회장이 어디선가 돈을 구해오는 것만큼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실 흔한 관행입니다. 이런 은행이 SCB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시장에 비슷한 사례가 하도 많아서 정부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 브라운은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란 회장이 조사 대상으로 오르지 않도록 보호해준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베트남 금융기관은 이러한 고질적 부패에 시달린다.

이렇게 각종 의혹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 이면의 이야기가 드러났고, 이번 재판은 단순히 란 회장을 단죄하는 자리가 아닌, 베트남 정치계 내 권력 다툼의 자리가 됐다.

반부패 캠페인을 이끌고 있는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총비서는 호찌민시의 유력 인사들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해 제멋대로인 이곳의 비즈니스 관행에 대한 공산당의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베트남에선 반부패 캠페인으로 현재까지 국가주석 2명과 부총리 2명이 물러났으며, 관료 수백 명이 징계받거나 수감됐다.

란 회장의 재판은 이러한 권력 다툼의 전쟁터이자 보수적인 이상과 경제적 야망이라는 현실 간 긴장 상태를 상징하는 자리가 됐다.

기술 및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을 꿈꾸는 베트남에선 경제 성장 동력을 유지하면서도 부정부패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역설적 상황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

히엡 연구원은 “이게 바로 역설”이라면서 “베트남의 성장 모델은 부패한 관행에 오랫동안 의존했다. 부정부패가 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기름과도 같은 역할을 한 것”이라면서 “이 기름칠을 멈추면 더 이상 기계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란 회장의 재판은 권력, 야망, 책임 소재 등 급변하는 베트남 사회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재판이 마무리되며 란 회장의 이야기는 법원 담장을 넘어 과거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며 미래에 대해선 불확실한 베트남 사회 전체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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