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시사’ 편지 공개…동료 가수·작곡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것이 그의 생각”
70년대 남진과 강력한 라이벌 형성…2020년대에도 ‘테스형’으로 화제
직접 작곡하고 공연 연출한 예술인 “폄하된 트로트 복원 노력”
나훈아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가황'(歌皇) 나훈아(77)가 데뷔 58년 만인 27일 갑작스럽게 은퇴를 시사하면서 가요계 안팎에 충격을 주고 있다.
나훈아는 이날 소속사를 통해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진리를 따르고자 한다”고 밝히며 마지막 콘서트 일정을 공개했다.
그는 은퇴를 못 박지는 않았지만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사실상 올해 콘서트가 그의 마지막 무대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간 대외적인 접촉을 극도로 꺼려온 나훈아는 이날도 편지 외에는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아 마지막 콘서트의 의미에 대한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나훈아와 수십 년의 인연이 있는 동료 가수, 작곡가들은 은퇴를 암시한 발표를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다면서도 그간 나훈아가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실행에 옮긴 것 같다고 했다.
나훈아와 친분이 깊은 한 원로 가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공연이 매번 솔드아웃(매진) 되지 않냐”며 “직접 공연을 연출하고 음악도 연구하니 새로운 무대를 만드는 데 대한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얘기하면서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다고 띄엄띄엄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나훈아가)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도 컸다. 그럴 때마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박수받을 때 평소에 하던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 같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실하고 고집 있는 사람이니까”라고 말했다.
나훈아와 오랜 인연이 있는 한 원로 작곡가도 “얼굴을 본지는 좀 됐다”면서도 “이전에도 나훈아 씨는 무대에 설 때마다 언제까지 이런 박수가 나올 수 있을까, 박수가 끊이기 전에 내려가야 하는데, 그것이 언제 올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항상 두렵다고 이야기했다. 관객들에게 박수받을 때 좋은 모습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나훈아의 편지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나훈아는 ‘무시로’, ‘잡초’, ‘갈무리’, ‘울긴 왜 울어’, ‘임 그리워’, ‘강촌에 살고 싶네’, ‘물레방아 도는데’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사랑받았다.
부산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시 교육위원회 개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는 등 어릴 적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여왔다.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한 뒤로는 여러 작곡가 사무실을 전전하며 데뷔 기회를 엿보다 취입 예정인 가수를 대신해 노래하며 기회를 잡았다.
그는 목포 출신 남진과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를 대표하며 1970년대 가요사에서 서로 다른 외모와 음악 스타일로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2006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끝으로 2007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취소하면서 건강 이상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렸고 기자회견까지 여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후 여러 차례 복귀설이 제기되다 2017년 11년 만의 컴백을 알렸고, 새 앨범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을 선보이며 건재함을 보여줬다.
같은 해 11월 컴백 공연을 펼친 뒤로는 매해 신보를 발매하거나 콘서트를 열면서 꾸준히 무대 위에 올라 ‘노년돌’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2020년 추석 연휴 KBS 2TV에서 방송한 공연 ‘2020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테스형!’을 불러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다.
나훈아
공연을 열었다 하면 매진 행렬을 기록해온 나훈아는 반세기 넘게 독보적인 음악 스타일과 창법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가수로 평가받는다.
압도적인 가창력과 쇼맨십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나훈아는 한국적인 정서를 녹인 곡을 직접 만들고 화려한 공연 무대를 연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뒤집고, 꺾고, 굴리고, 여러 테크닉들을 더해 본인만의 창법을 만들었고, 같은 노래도 나훈아가 부르면 다르게 불리는 게 있다”며 “복잡한 세상살이를 귀에 쏙 들어오도록 표현한다는 점도 대중 가수로서 그만이 가졌던 강점”이라고 전했다.
나훈아는 전통 가요의 계보를 잇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한 폄하를 씻어내기 위해 노력한 가수로도 알려져 있다.
‘아리랑 가수’, ‘아리랑 소리꾼’으로 불리고 싶다고 언급해온 나훈아는 “전통 가요를 불러온 대중가수의 한 사람으로서 ‘뽕짝’, ‘트로트’라는 호칭이 아닌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해 아리랑이라고 칭하자”며 ‘아리랑이라 호칭하기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헌식 대중음악평론가는 “전통 소리라는 차원에서 트로트를 바라보고, 폄하됐던 트로트가 전통 가요라는 장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도록 도움을 준 가수”라고 평가했다.
이어 “나훈아만큼 오랜 기간 ‘현역 가수’로 활동해온 가수는 흔치 않다”고 강조하며 “이 시점에는 나훈아 선생님을 놓아드릴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는 “한국적인 정서를 본인의 음악에 녹여내려고 노력한 인물이고, 공연에도 국악기를 동원해왔다”며 “한국적인 이미지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걸 숙제처럼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나훈아와 인연이 깊은 또 다른 원로 작곡가는 “60년 가까이 한결같이 사랑받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진정한 국민 가수이고 진짜 예술인이고 스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간 나훈아 씨는 훈장도 고사했는데, ‘사람 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훈장 받고서 좀 잘못해 입에 오르내리면 반납하러 가야 하지 않느냐’고 웃더라”며 “어딘가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소신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훈아, 데뷔 55년 기념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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