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싫다더니, 지방 공기업은 탐나?"..'지거국' 쏠림에 배아픈 학생들

2일 오전 10시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입구에서 개강을 맞은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사진=노유정 기자

2일 오전 10시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입구에서 개강을 맞은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사진=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공공기관이 위치한 지역의 대학 졸업생을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제도가 자칫 ‘거점 국립대학 전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기관은 점차 지방으로 거점을 옮겨가는 반면 ‘타향살이’ 중인 수도권 대학생들의 귀향길은 오히려 좁아진 셈이다. 의대 정원 확대와 맞물린 지역의로의 의료인력 유입에서도 ‘출신 대학’이 걸림돌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19일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 7년차를 맞아 점검한 결과 “지역거점국립대학으로 쏠림현상 발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은 이전한 지역에 위치한 학교의 졸업자를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하는 것을 2018년부터 의무로 두고 있다. 대졸 채용의 경우 해당 지역의 대학교, 고졸 채용의 경우에는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역내에서 학교를 졸업한 인재에게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인재 유출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유명 ‘국립대학’ 출신↑…인재 다양성은↓

128개의 공공기관은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에 따라 신입 직원을 받는 중이다. 지역인재 채용율은 2018년 23%, 2019 년 26%, 2020년 29%, 2021년 34%, 2022년 38%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제도 도입 이전과 비교해봐도 2012년 2.8%, 2014년 10.2%, 2016년 13.3%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지역인재를 위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셈이다.

다만 일자리가 지역 인재 전반에 골고루 분배됐는 지는 지적을 받는 지점으로 남았다. 입법조사처가 지역별로 규모가 큰 8개 공공기관의 지난 6년 간 채용 결과를 분석한 결과, 합격자 중 절반 이상이 지역거점국립대학 출신으로 나타났다.

신규채용 지역인재의 대학별 분포(2018~2023) /사진=국회 입법조사처

신규채용 지역인재의 대학별 분포(2018~2023) /사진=국회 입법조사처

부산의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최근 6년간 지역인재로 입사한 147명 중 사원의 58%인 86명이 부산대 졸업자였다. 뒤를 이어 22%를 차지한 부경대 직원도 32명에 이른다.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대학 2개 만으로 80%가 채워졌다.

경남권의 한국토지주택공사는 67%가 경상대(283명 중 190명), 19%가 창원대(283명 중 53명) 졸업자로 나타났다. 대구·경북 지역의 신용보증기금은 경북대와 영남대가 각각 52%(211명 중 109명)와 18%(211명 중 38명), 한국도로공사에서도 경북대 49%(286명 중 139명), 영남대 34%(286명 중 97명)로 높은 비중을 보였다.

광주·전남 지역 역시 한국전력공사는59%가 전남대(681명 중 401명), 18%가 조선대(681명 중 124명) 출신이었다. 대학 분포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전북의 경우, 국민연금공단의 전북대 출신 채용은 74%(280명 중 208명)에 달해 8개 기관 중 쏠림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인재 기준 넓혀야…생활권 등 실상 고려

입법조사처는 ‘지거국’으로의 쏠림 현상이 상대적으로 입학장벽이 높은 수도권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쏠림 현상이 고착되는 경우에 대해서도 “조직 구성이 특정 출신대학에 편중되거나 기관 내 특정 부문 종사자의 전문성 부재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중장기적으로 기관 내 파벌 형성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는 공공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5월에는 기관 특성에 따라 지역내 초·중·고교 졸업 이력까지 인재풀을 넓히는 방식이 제안됐다. 수도권으로 진학한 지역인재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공기관이 위치한 거점을 중심으로 채용 권역도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방 도시들이 광역화를 모색하며 점차 하나의 ‘메가시티’처럼 변해가는 반면 채용 기준은 여전히 ‘다른 지역’으로 여겨져서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경우에도 ‘부울경’으로 서로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채용 의무제도’ 내에서는 명확히 갈라져 있는 상태다.

특히 충청도에서 충북, 충남, 세종시, 대전시를 모두 포함하는 채용권역을 운용하자 실제로 출신대학의 다양성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가스안전공사의 경우 충북대 35%(148명 중 51명), 교통대 20%(148명 중 30명), 충남대 10%(148명 중 15명), 기술교육대 10%(148명 중 15명) 등 타 권역에 비해 특정 대학의 편중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입법조사처는 “과감하게 지역의 벽을 허물고 비수도권 전체로 확장하면 인재풀을 넓히는 동시에 지역인재의 입장에서도 선택권이 확장될 수 있다”며 “채용 규모가상대적으로 크고 구직 선호도가 높은 일부 기관에대해서는 지역인재로 인정하는 지역 범위를 기관 소재지역에서 비수도권 전역으로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공계와 같이 모집단위가 적거나, 제주·강원처럼 자체 인재풀이 좁은 경우에는 비수도권 전체에서 인재를 끌어오는 방식도 도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방 공통으로 인력 유입을 호소하는 의료인력 역시 권역별 의대 벽을 허물어 채용문을 넓힐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입법조사처는 ”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가 일부 순기능을 가져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획일적 기준으로 인해 탄력적 운용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제도 개선의 적기를 놓치기 전에 다양한 제도 개선 방향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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