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사과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든가, YS도 여러 차례 했다”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윤 대통령·한동훈 갈등을 보고

 

“실수 사과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든가, ys도 여러 차례 했다”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 25일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중앙SUNDAY와 만나 정치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그의 뒤로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포용한다’란 의미의 글 ‘厚德載物(후덕재물)’이 보인다. 그는 YS 정부에서 정무장관을 지냈다. 김상선 기자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 25일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중앙SUNDAY와 만나 정치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그의 뒤로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포용한다’란 의미의 글 ‘厚德載物(후덕재물)’이 보인다. 그는 YS 정부에서 정무장관을 지냈다. 김상선 기자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 논란, 2인자들의 개입 그리고 권력 핵심부의 혼돈. 우리 정치사에서 종종 마주하는 정극(政劇)이다. 대개 대통령들은 민심이 한참 돌아선 후에야 현실을 자각했다. 현재 권력의 실책이 미래 권력의 공간을 열어주곤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간의 공개 갈등이 낯설어 보이지만 않는 까닭이다.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한 대처 방식을 두고 두 사람이 이례적으로 한때 대치했다.

 

“제일 가까운 사람 말도 거북하면 어떡하나”

 

원로 정치인 김덕룡(83) 김영삼(YS)민주센터 이사장을 떠올렸다. YS 정부 때 2인자로 거론된 실세였고, YS의 아들 현철씨의 국정 개입을 견제하다가 외려 견제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젠 스스로 ‘보수’로 여기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지난 대선 때 후보이던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앞에 두고 “차악 선거”(YS 6주기)라고 질타한 일도 있다.

 

25일 오전 서울 방배동 사무실로 그를 찾아갔다. 곳곳에 1993년 창립한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세계한민족공동체재단을 통한 활동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쌓여있었다. 테이블 위엔 ‘立春大吉(입춘대길)’이라고 쓰인 한지도 여러 장 있었다. 누구든 가져가라고 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YS 정부 출범 30주년 행사를 하느라 유독 바빴다는 그는 변함없이 활기찼다.

 

그는 처음엔 정치 얘기하길 꺼렸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는데, 여러 차례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달라지길 고대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을 두곤 “봉합이라고 하는데 봉합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며 “선거를 앞두고 문제가 될 것 같으니 우선 덮자는 건데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시끄러워야 한다. 문제가 있는데도 시끄러운 것이 두려워 조용히 덮어두겠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김 여사 건이 문제인 듯하다. “악의에 찬 함정취재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받은 건 사실이고 그것이 부적절하고 부끄러운 일 아닌가. 사과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국민적 상식에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우리가 음모에 빠져서 이런 실수를 했다. 잘못이다’라고 사과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든가. YS는 ‘용기 있는 사람이 사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도 여러 차례 했다.”

YS 당시엔 차남 김현철씨가 논란이었다. “YS는 당시 검찰총장에게 몇 차례 연락해서 왜 빨리 구속을 안 하느냐고 했다. 오죽하면 검찰총장이 나에게 ‘각하께서 이러시는데 그리해도 괜찮으냐’고 하소연했다.”

 

김현철씨의 국정 개입 논란은 정권 초기부터 있었다. ‘소통령’으로 불렸는데 그저 아들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론조사를 처음으로 선거운동에 접목했고, 엘리트 사조직을 운용했다. 공적 보고보다 더 충실한 사적 보고를 했다. 순기능이 있었다. 그렇더라도 비공식 권력은 언젠가 공분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특히 재계 14위 한보그룹의 부도가 계기가 됐다. 한보가 부도를 막기 위해 김현철씨 등에게 로비했다고 알려지면서다. YS의 검찰 질책은 그 이후였다. ‘국민이 납득하겠냐’는 시각이었다.

 

사실 김현철씨는 한보 건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YS의 대선 자금 중 쓰고 남은 뭉칫돈이 문제가 됐다. 별건 수사였다.

 

한보로부터 금품 수수는 드러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억울한 면이 있었지만 그렇게 국민에게 비칠 정도로 처신했다는 건 본인도 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가 옳았다. 그리고 세상에 안 알려진 얘기인데, 내가 YS에게 ‘현철이 이렇게 놔두면 안 된다. 미국에 보내는 게 옳다’고 했을 때 YS가 ‘그래 맞아’라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1년인가 후에 돌아왔지만.”

다른 분들도 문제 제기했지만 YS가 듣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나는 할 얘기는 다 했다. 배석자를 두지 않고 둘이 얘기했다. 배석자가 있으면 ‘비서실장 문제 있다’라는 식의 얘기를 할 수 있겠나. YS의 장점 중 하나가 진짜 경청하는 자세였다. 하지만 그분도 2년이 지나니 달라지더라. 대통령이 바쁜 자리거든. 본인이 할 얘기가 많고 장관·수석·비서관 등 전문가들이 모두 ‘각하 말씀이 옳습니다. 참 대단하십니다’라고 하고 아부하고, 자기 할 얘기도 많기 때문에 듣는 걸 번거로워하더라. 그걸 보며 경청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출신이라 폭넓게 세상을 알 기회가 적었는데 그렇다면 더욱 겸손한 자세로 경청하고 조언도 듣고 그래야 하는데, 그게 아니지 않나 답답하다.”

“실수 사과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든가, ys도 여러 차례 했다”

김영삼(YS)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1월 YS 서거 8주기 추모식에서 발언하던 모습. [중앙포토]

김영삼(YS)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1월 YS 서거 8주기 추모식에서 발언하던 모습. [중앙포토]

YS가 아들 논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가 국민적 공분 사안이 됐고, 별건 수사로 아들을 구속해 민심을 달랠 지경까지 갔다는 소리다. 이와 관련 YS의 최장수 장관이었던 오인환 전 공보처 장관은 “정치에서 손을 떼게 하거나 아들의 자리를 공식화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 사권화(私權化) 시비를 근원적으로 막았어야 했다”(『김영삼재평가』)고 썼다.

 

다시 윤 대통령 쪽으로 질문을 돌렸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충돌을 어찌 보나.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자기 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완전히 대통령 사조직같이 가는 건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체제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는 걸 알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 정치 경험이 없으니 조언·충고를 들어야 하는데 자신을 따르는 사람만 데리고 정치하겠다? 그래서 되겠나.”

“윤 대통령도 이재명 대표도 정치 초보”

 

YS야말로 강력한 대통령이었다. “정당 운영을 그리하지 않았다. 내가 정무장관일 때 당은 4인 체제(사무총장·원내대표·정책위의장·정무장관)였다. 우리가 새로운 세력을 영입해 공천을 폭넓게 했는데, 영입하는 건 전적으로 당에 맡겼다. 큰 틀의 방향은 대통령이 정했지만, 구체적인 사안은 당에 맡겼다.”

원래 대통령들은 본인보다 인기 있는 사람의 등장을 꺼리지 않나. “대개 2인자를 안 두려고 한다. 한 위원장이야말로 (윤 대통령과) 제일 가깝고 심지어 야당에선 아바타라고 하는데 이 사람 말까지도 듣는 게 거북하다면 누구 얘기를 편하게 듣는다는 거냐. 한 위원장까지 거추장스럽게 생각한다면 참 문제 아닌가. 이번 두 사람 갈등을 일부 사람들은 처음에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했다.”

한 위원장의 지적이 수용됐다고 보나. “윤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부인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선거에 지장 있을 듯하니 그냥 덮어둔 건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결국 윤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 제일 문제는 대통령이다. 그걸 두고 다른 걸 잡겠다고 하니 비대위를 하게 되고 그런 것 아닌가. 장화 신고 그 위를 긁는 식이다.”

사실 대통령 권한이 세 보이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행정권을 장악하고 있고 인사권·예산권이 있으니까 두려워하고, 이익을 위해 따르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으니까 (대통령) 뜻을 국민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지지율을 보며 느끼는 게 있어야 한다고 본다. 야당에 대해 국민의 거부적 평가가 있는데도 (대통령) 지지율이 왜 높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단임제 대통령 중 임기 끝나고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대통령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나. 지나간 대통령들은 다 나름대로 정치발전과 정치에 기여했다는 사람들이다. 윤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보다 더 그렇다. 그럼에도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둘도) 뒤돌아보면 좀 뻔히 보이는 일인데 자기들은 그렇게 모르고….”

어느 시점 이후엔 대통령보다 차기 권력 눈치를 더 보게 될 때도 오더라. “총선이 끝나면 바로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세상을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시간이 와선 안 되겠지만, 총선에서 실패하면 식물 대통령을 만들려고 할 거다. 결국 권력이란 게 미래 권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 외적 환경은 갈수록 어려운데 진짜 안타깝고 걱정된다.”

정치 경험이 없다는 게 결국 한계라고 보나. “좋게 말해서 초보 정치, 아마추어 정치다.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재명 대표도 마찬가지다. 경륜 있는 조언도 듣고 겸손한 자세로 폭넓게 참모진을 구성하고 해야 하는데 편한 사람들만 데리고 한다. 동네 정치다. 정치의 요체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대화하고 양보할 건 양보하면서 협상하는 것이다. 상대를 섬멸시키려고 적으로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죽기 살기로 하면 이게 전쟁이지 어떻게 정치냐.”

대화 간간이 드러났지만, 민주당과 이 대표에 대해서도 김 이사장은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민주당이 하는 걸 보면 정말 아니다”라며 “이 정권의 존립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대표가 아니면 이 정부가 지금 어떻게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대적 공존, 공생”이라고 했다. 대신 제3지대 정당의 등장을 바랐다. 그는 “양당 패권정치, 대결 정치 이런 걸 끝장내고 정치권을 재편성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3당, 제4당이 성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인터뷰 전에 있었던 조찬 자리에 이낙연 전 총리가 참석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한때 안주하는 듯했던 이 전 총리가 민주당을 탈당한 걸 반겼다. 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 등의 ‘원칙과 상식’과 이낙연 신당과의 합류 가능성은 낙관했으나 이준석 신당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 신당, 진보 신당으로 가는 게 옳지 않은가”라며 “(모두 통합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된다고 했다가) 나중에 국민을 실망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고정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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