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연고 없는 사람들이 들쑤셔" '명룡대전'에도 냉담한 계양을

편집자주

수도권은 4월 총선의 최대 승부처다. ‘명룡대전’이 임박한 인천 계양을과 ‘운동권 청산’ 논쟁에 불을 지핀 서울 영등포을이 대표적이다. 여야 거물의 출사표로 빅매치를 앞둔 두 지역을 찾아 설 연휴 끝자락의 민심을 들었다.

“(이재명, 원희룡) 두 사람 다 계양구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세 싸움하는 것처럼 느껴져 굉장히 불쾌해요.”

인천 계양을에서 태어나 계속 살아온 이모(32)씨

‘인천 계양을’은 4월 총선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역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성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도전장을 던져 이른바 ‘명룡대전’을 앞두고 있다. 대권을 꿈꾸는 여야 정치인의 격돌 가능성에 ‘미니 대선급’으로 판이 커졌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다른 길을 걷는 이 대표의 생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12일 찾은 인천 계양을 민심은 냉담했다. 거물 정치인의 맞대결을 기대하며 분위기를 달구는 외부의 시각과 딴판이었다. 지역 연고 없는 후보를 내세우려는 여야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내리 5선 의원을 지내고도 돌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빈자리를 외지에서 온 이 대표가 채우면서 주민들은 이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중년의 택시 기사는 “이곳에서 30년을 살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나오는 대로 찍어주는 바보, 호구가 됐다”고 푸념했다.

“민주당이 이기겠지만”… 달갑지만은 않은 지역 민심

[르포] “연고 없는 사람들이 들쑤셔” ‘명룡대전’에도 냉담한 계양을

12일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위치한 계양산전통시장을 찾았다. 이 시장은 나흘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동시간대에 설 연휴 인사를 위해 찾은 곳이다. 우태경 기자

계양산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설 연휴 초입인 지난 8일 이 대표와 원 전 장관이 동시간대에 앞다퉈 들르며 ‘민심 잡기’에 공들인 장소다. 반면 주민들은 두 정치인에 대해 썩 달가운 표정이 아니었다. 상인 정모(67)씨는 “두 사람 다 이곳에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아무 연고도 없는데 여기서 뭘 어떻게 하겠나. 주민들은 시끄러워 죽겠다”고 불평했다.

이 대표와 원 전 장관 모두 내키지 않아 아예 투표를 포기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개혁신당이나 녹색정의당에서는 아직 거론되는 인물이 없어 유권자의 선택지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계양을에서 20년 동안 거주한 최모(60)씨는 “그동안 민주당만 찍어왔는데 이번에는 아예 투표를 하지 않을까 싶다”며 “두 후보 모두 국민을 위해서 온 것도 아니고 이 지역을 위해서 온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백민성(27)씨는 “국가를 위해 일할 사람이 없어 보여서 무효표를 던질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계양을은 민주당의 텃밭, 국민의힘의 불모지로 통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계양갑·을로 나뉜 이래 2010년 보궐선거를 제외하면 20년간 보수 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 없는 곳이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했지만 다른 수도권 지역과 달리 계양을은 늘 민주당 손을 들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망도 작용했다. 여기에 행정 경험이 풍부한 이 대표의 경쟁력이 더해졌다. 시장에서 만난 정기보(54)씨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을 예정”이라며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려는 이유가 제일 크다”고 말했다. 상인 태승구(44)씨는 “두 사람 모두 지역에서 반길 만한 큰 인물들이지만 이 대표가 성남시장일 때 성남이 좀 더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표 측은 2022년 보궐선거 당시 ‘계양에는 큰 일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실력 있는 정치인’의 면모를 부각시켜 선거에 나설 계획이다.

불출마·사법리스크·개발 수요 ‘변수’로 남아

이처럼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지만, 원 전 장관이 판세를 흔들 변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지속되면서 일부 주민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계양을에서 35년을 살아온 상인 윤용만(58)씨는 “우리 지역구가 유명해지는 것은 좋지만 그런 일(사법 문제)로 유명해져서 수치스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며 “유권자 입장에서는 저런 분 말고 다른 깨끗한 분이 하면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

높은 개발 수요 또한 지역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계양구가 1990년대 형성된 구도심인 만큼 도처에 재개발, 재건축 수요가 분출하는 상태다. 인접한 부평구는 2000년대 개발돼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데다 청라신도시와 계양신도시까지 들어서면서 구도심 주민들의 소외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원 전 장관은 이 부분을 파고들 참이다. 원 전 장관 측은 “국토부 장관 출신으로서 할 수 있는 공약들을 준비해 적당한 시기에 공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빅매치’를 앞두고 시큰둥하거나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민심이 또다시 흔들릴 여지가 남아있다. 이 대표가 출마 계획을 바꾸는 경우다. 이 대표 측은 시종일관 계양을 출마 의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총선에 임박해 민주당이 대표 불출마나 험지 출마, 또는 비례대표 출마로 방향을 트는 ‘깜짝 카드’를 배제하긴 어렵다. 그에 따라 이 대표 저격수를 자처해온 원 전 장관이 어떤 선택을 할지도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등산객들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위치한 계양산을 오르고 있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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