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가 대거 사직하고 의대생 10명 중 7명이 대학에 휴학을 신청하는 등 의료계가 집단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1만2000명 넘는 의대생들이 휴학계를 냈고 전국 의대 6곳에서는 수업 거부도 확인됐다.
의대생들의 단체 행동이 길어지면 집단 유급 사태로 번질 수 있어서 문제가 된다. 이 경우 내년에 배출되는 의사 인력이 대폭 감소한다. 대학들은 휴학계를 반려하고 개강 일정을 미루고 있지만, 정부가 엄격한 학사 관리를 요구하는 만큼 의대 수업을 계속 미룰 수만은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한림대 4학년생을 비롯한 전국 40개 의대생이 동맹휴학을 결의한 가운데 지난 15일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본인 서명 빠진 휴학계도…61%는 형식 요건 갖추지 못해
27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37곳에서 지난 19일부터 26일 오후 6시까지 1만1389명이 휴학계를 제출한 상태다.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의대생 1만8793명의 70.2%가 휴학을 신청한 셈이다. 지난 19일 1133명, 20일 7620명, 21일 3025명, 22일 49명, 23~25일 847명, 26일 515명이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계를 냈다가 철회하고 다시 내는 경우도 있어 실제로는 1만2527명이 휴학을 신청한 것으로 교육부는 판단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3개 학교 의대생 48명이 휴학 신청을 철회했다. 휴학 허가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날 군 입대(3명)와 유급·미수료(1명) 등 동맹 휴학과 관련 없이 학칙에 근거한 요건과 절차를 지킨 4명이 신청한 휴학계가 승인됐다.
1개 학교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201명의 휴학 신청을 무더기로 반려했다. 휴학을 신청한 전국 의대생의 61%(7647건)는 요건과 절차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본인 서명이 빠진 채 휴학을 신청하는 의대생이 있었고, 보호자 등 보증인 연서가 없거나 대리 제출을 하면서 위임장을 내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형식과 요건을 갖춘 휴학 신청은 39%(4880건)로 전체 의대생의 26% 수준이다. 교육부는 형식과 요건을 갖추지 못한 휴학계는 반려하라고 각 대학에 요구하고 있다. 형식과 요건을 지켰더라도 동맹 휴학은 휴학을 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 15일 강원 춘천시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의 복도에 불이 꺼져 있다. /연합뉴스
◇의대 개강 언제까지 연기되나…정부는 ‘정상 수업’ 요구
대학이 휴학계를 승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대생들이 동맹휴학에 참여해 수업을 거부하면 집단으로 유급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각 대학은 수업에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 결석하면 F 학점을 준다. 의대는 F 학점을 한 번이라도 받으면 유급돼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한다.
집단 유급을 막으려면 일단 개강을 늦춰 ‘결석’이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대다수 대학은 의대생들을 면담해 휴학 철회를 독려하고, 의대 본과 개강 시점을 2월에서 3월로 연기했다.
다만 교육부가 대학에 정상적인 학사 관리를 당부하는 상황에서 의대 수업을 미룰 수 있는 기간에도 한계가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대학의 수업 일수를 매 학년도 30주 이상으로 정하는데, 의대 본과는 실습까지 더해져 수업 일수가 40주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 각 의대는 방학 기간을 제외해도 3월 말에는 1학기 수업을 시작해야 수업 일수를 채울 수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천재지변이나 교육 과정상 부득이한 사유로 수업 일수를 채울 수 없으면 매 학년도 2주 이내 수업을 단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동맹 휴학은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교육부 입장이다.
앞서 지난 정부가 2020년 의대 정원 400명 증원을 추진했을 때도 의대생들은 수업을 거부했고, 교수들은 보충 수업에 나서 수업 일수를 충족시켜줬다. 현 정부는 의료계에 백기를 들었던 과거와 달리 집단 행동을 벌인 의대생들을 구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각 대학이 학사 일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수업을 실시해달라고 거듭 요청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수업 거부가 이뤄지면 학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달라”고 했다.
한편 의대 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이날 정기 총회를 비공개로 열고 의대 증원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들이 의대생을 가르치는 스승이자 선배로서 정부와 의대생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시각도 일부 있다. 앞서 교육부는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에 2025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수요를 3월 4일까지 제출해달라고 했고, 이들은 합의가 필요하다며 제출 기한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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