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림프종 아내, 입원못해 여관방 전전"…가족들 피눈물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02.19. [email protected]

의과대학(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사직이 현실화하면서 수술과 입원 취소가 줄 잇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대형병원을 찾은 환자와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입원 취소 통보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19일 뉴시스가 찾은 서울의 ‘빅5’ 병원의 로비에서는 수술과 입원 예약이 연기되거나 취소돼 발을 동동 구르는 환자와 가족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남 광양에서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손병관(90)씨는 “아내가 악성림프종 4기를 앓고 있다. 원래 오늘부터 입원 치료를 받기로 했는데 인력이 없어서 입원을 안 시켜준다고 한다”며 “통원하면서 항암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오늘 여인숙이라도 가서 자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손씨는 “의료진이 모자라서 시골에는 의사 한 명이 세 곳을 돈다. 그런데 왜 의사 증원을 못하게 하냐”며 “의사들이 부당한 짓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충남 태안에서 온 양모(71)씨도 “아내가 종양내과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길”이라며 “작년 7월 수술한 뒤 통원치료와 입원치료를 번갈아 가며 하고 있다. 일단 상태가 호전돼서 퇴원하는데 급할 때 응급실에 자리도 없고 문제”라고 걱정했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서울대병원 소아과를 찾은 김모(39)씨는 “아기가 일찍 태어나 추적 진료를 받고 있다”며 “서울은 의료 공백이 사실상 없는 곳인데도 외래 잡기가 힘든 실정인데 다른 곳은 얼마나 심하겠냐. 지방에 있는 지인들은 소아과가 잘 없어서 아동병원에서 새벽부터 기다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가 아프면 부모 입장에서는 목숨이라도 내주고 싶은데 의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고 환자들의 소중한 수술을 미룬다는 건 잘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02.19. [email protected]

충북 충주에서 온 이태영(33)씨는 “세쌍둥이 중 두 명이 내일 청력 검사를 하기로 했는데 전공의 파업 때문에 마취약 서명이 안 돼서 못 한다더라”며 “지방에서 올라와서 호텔까지 잡았다고 따지니까 다른 교수님으로 봐준다고 했다. 만만해 보이면 그대로 일정이 밀렸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아이가 미숙아라 지금 검사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파업 때문에 아이의 병을 못 알아차려서 큰일나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며 “의료인이라면 부모와 어린아이들을 볼모로 잡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진료 대기 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졌다는 불만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세브란스 응급진료센터를 찾은 강모(60)씨는 “배가 아파서 병원 두 군데를 갔는데 쓸개가 부었다며 응급실에 가라고 했다. 한 시간째 기다리는데 파업 때문에 진료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며 “외래로 예약하면 6개월 뒤에나 가능해서 계속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영국 런던에서 온 외국인 여성은 “무릎을 다쳐서 왔는데 최대 45시간 기다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기다려도 들어갈 수 있을지 보장 못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된다”며 “의대 문제 떠들썩해서 알고 있는데 한국 의사들이 돈 때문에 증원에 반대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세브란스 병원 소속 전공의 상당수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날부터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엄순덕(89)씨는 “오전 11시로 아산병원 진료를 예약했는데 오후 3시로 미뤄졌다”며 “온 김에 아들을 보고 버스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못 볼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 해남에서 온 70대 박정우씨도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이틀 걸려서 올라왔다. 오전 11시 반 예약인데 한 시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며 “파업 때문에 진료를 안 해 줄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다고 밝히고 있다. 2024.02.19. [email protected]

온라인 환자 커뮤니티에도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피해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척추질환을 앓는 어머니를 둔 A씨는 “어머니의 협착증으로 강남 세브란스에서 수술 날짜를 잡으려고 했는데 교수님이 파업으로 진행하려던 수술이 취소됐으니 추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며 “지방에서 오는 분들은 병원에 미리 알아보고 오라”고 썼다.

암환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의 운영자는 전날 “20일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전공의 파업으로 우리 암환우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냐”며 “집에서 막막히 불안에 떨고 있을 환우분들 힘을 내시라. 환우 및 보호자, 가족분들이 병원에 입원 중이거나 진료, 또는 수술과 관련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게시글에는 “신촌 세브란스는 예정대로 항암을 진행한다” “강남 세브란스는 초진을 받지 않는다” “서울 아산병원 항암 환자 입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일명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의 전공의들이 이날 사직서를 내고 오는 20일부터 근무를 중단하겠다고 예고했다. 다른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 예고도 뒤따르고 있다.

정부는 이날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하고, 이날 현장점검을 실시 중이다. 법을 위반해 출근하지 않은 전공의가 확인될 경우 고발조치도 검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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