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여성의 몸' 무시하는 엘리트 스포츠...그녀가 그래도 달린 이유

'사춘기 여성의 몸' 무시하는 엘리트 스포츠...그녀가 그래도 달린 이유

게티이미지뱅크

중학생 시절 내내 달리기 1등을 놓치지 않는 여학생이 있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또래 남학생에게 갑자기 1등을 빼앗기고 만다. 가슴이 커진 만큼 운동하기 힘들어졌고, 월경이라도 하면 움직일 수조차 없는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다가도 옷매무새를 신경 써야 하는 자신을 보며 여학생은 생각한다. “내 가슴은 어떻게 변할까. 과연 나는 가슴과 엉덩이가 가져오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운이 좋을까.”

미국 여성 육상선수 로런 플레시먼의 회고록 ‘여자치고 잘 뛰네’의 한 장면이다. 대학 리그에서 다섯 차례나 우승하고 5,000m 미국 챔피언 타이틀을 두 차례 석권한 정상급 선수인 저자는 ‘달리기를 하는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의 압박의 시작점으로 사춘기 시절을 소환한다. 청소년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인 사춘기 변화는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금기에 불과하다. 신체적으로 전성기를 맞는 18~22세 남자 청소년에 비해 여자 청소년은 호르몬의 작용으로 운동과 관련 없는 신체조직이 발달하고 체중이 증가한다.

이 시기 남녀의 운동 능력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만 스포츠팀을 이끄는 대부분의 남성 리더들은 여성의 신체 변화를 무시하고 남성 중심의 훈련을 강요한다. 여성 선수 상당수는 사춘기를 전후로 스포츠를 그만둔다. 저자처럼 포기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몸을 해하지 않고는 달성하기 힘든 수준의 이상적 체중, 이상적 체형”이라는 기준에 따라 자신의 신체와 끊임없이 불화하고 ‘남자처럼’ 훈련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 저자도 방황과 부침을 거듭하지만 스스로 달릴 이유를 찾아내며 ‘미국에서 가장 빠른 5,000m 여자 선수’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 올린다.

여성 선수로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이뤄낸 성공 스토리도 매력적이지만, 은퇴 후 여성 코치로서 여성으로만 구성된 달리기 팀을 맡아 월경과 정신 건강 문제 등에 집중하며 남성 중심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멀어지게 하는 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에게로 돌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또 배웠다”고 고백한다. ‘달리는 여성에게 세상이 보내는 협박과 경고를 거부하고 나를 위한 달리기를 되찾는 것’과 ‘다음 세대를 위해 여성이 더 자유롭고 즐겁게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저자에겐 같은 일이었을 터다. 책은 삶을 굳게 지키고 싶었던 한 여성 스포츠인의 생존기인 동시에 존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여성 스포츠인들에게 전달하는 곡진한 희망의 메시지다.

'사춘기 여성의 몸' 무시하는 엘리트 스포츠...그녀가 그래도 달린 이유

여자치고 잘 뛰네·로런 플레시먼 지음·이윤정 옮김·글항아리 발행·312쪽·1만6,800원

News Related

OTHER NEWS

황일봉 전 광주 남구청장 "정율성 기념사업 추진 사죄"

정율성 사업 철회 촉구 집회 참석한 황일봉 전 회장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황일봉 5·18 부상자회 회장이자 전 광주 남구청장은 28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전범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 Read more »

대입 준비, 기본에 충실한 '적기교육'이 정답

대입 준비, 기본에 충실한 ‘적기교육’이 정답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 날인 17일 대구 수성구 정화여고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가채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었다. 킬러문항이 없어지면 물수능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 Read more »

서울 도봉구,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 완료…보행로 확장·조명 설치

서울 도봉구,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 완료…보행로 확장·조명 설치 오언석 도봉구청장이 지난 24일 우이천 제방길 정비공사 현장을 주민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사진=도봉구청 서울 도봉구(구청장 오언석)가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를 완료하고 ... Read more »

허재현 기자 "최재경 녹취록, 신뢰할만한 취재원에게서 확보"

검찰 피의자 조사…”공수처에 검찰 관계자 고소” ‘대선 허위보도 의혹’ 허재현 기자, 검찰 피의자 조사 (서울=연합뉴스) 조다운 이도흔 기자 =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리한 허위 보도를 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받는 ... Read more »

‘담배 모르는 세대’ 세웠던 뉴질랜드…세수 모자라 금연법 철회

한 남성이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다음 세대 완전 금연을 목표로 한 뉴질랜드의 야심적인 금연 대책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27일 출범한 뉴질랜드의 중도 우파 국민당 주도의 연정은 2009년 1월1일 ... Read more »

'수억 광고 수익 숨기고 해외 여행 유튜버', 재산 추적한다

‘수억 광고 수익 숨기고 해외 여행 유튜버’, 재산 추적한다 김동일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28일 정부세종청사 국세청에서 지능적 재산은닉 고액 체납자 집중 추적조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유명 유튜버 A씨는 매년 수억 ... Read more »

식사 직후 '과일' 먹는 습관… 당장 멈춰야 하는 이유

건강을 위해 매일 과일을 챙겨 먹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과일도 언제 먹느냐에 따라 몸에 끼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식사 후 곧바로 과일을 먹는 습관은 오히려 독이 될 수 ... Read more »
Top List in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