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억 토할까봐 잠수…‘건방진 천재’ 12년만에 돌아왔다

 

사우디 LIV, 합계 16오버파 최하위

    골프 인사이드 

골프는 인생과도 같지요. 한 라운드에서 골퍼는 희망, 허풍, 집착, 좌절, 질투, 유혹, 후회 등 온갖 감정을 경험하며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가 ‘18홀에 담긴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이번엔 12년 만에 그린으로 귀환한 전설의 천재 골퍼, 앤서니 김의 영화 같은 스토리입니다.

 

133억 토할까봐 잠수…‘건방진 천재’ 12년만에 돌아왔다

앤서니 김

앤서니 김

2012년 5월 3일. 앤서니 김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웰스파고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2오버파 74타를 친 뒤 캐디백을 차 트렁크에 집어 던지고 떠나버렸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앤서니 김이 지난 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인근 로열 그린 골프장에서 열린 LIV 대회에 출전했다. 선수의 은퇴 번복은 흔한 일이지만, 12년 만의 컴백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오래 자리를 비운 선수가 돌아오기 힘든 건 두 가지 이유다. 우선 기량이 떨어진다. 또한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두번째 문제가 더 극복하기 어렵다.

 

앤서니 김은 첫 등장부터 튀었다. 2006년 프로로 전향해 첫 출전한 PGA 투어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PGA 투어 신인이 된 2007년 “나는 호랑이(타이거 우즈)를 잡으러 온 사자”라며 큰 소리를 친 건방진 청년이었다.

 

133억 토할까봐 잠수…‘건방진 천재’ 12년만에 돌아왔다

이름 이니셜인 ‘AK’를 새긴 버클. 타이거 우즈의 ‘TW’에 대항한다는 뜻을 담았다. [중앙포토]

이름 이니셜인 ‘AK’를 새긴 버클. 타이거 우즈의 ‘TW’에 대항한다는 뜻을 담았다. [중앙포토]

한 발엔 흰색, 다른 발엔 검은색 신발을 신고 대회에 나오기도 했다. 이니셜인 ‘AK’를 새긴 커다란 버클을 하고 다녔는데 우즈의 ‘TW’에 맞선다는 의미였다. 자신감에 넘쳤고 장타를 쳤으며 경기 스타일도 화려했다. “아시아 선수에 대한 편견을 깬 선수”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의 정식 이름은 앤서니 하진 김이다.

 

앤서니 김은 2008년 5타 차로 첫 우승하더니 타이거 우즈 주최 ATT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25세 이하 미국 선수가 한 해 2승을 거둔 건 우즈 이후 앤서니 김이 처음이었다. 하이라이트는 그 해 라이더컵이었다. 유럽의 에이스 세르히로 가르시아를 만나 5홀 차로 완승했다. 선봉으로 나간 앤서니 김의 승리에 사기가 오른 미국은 9년 만에 유럽을 꺾었다.

 

우즈가 출전한 라이더컵에서 미국은 1승7패였다. 우즈에게 실망한 미국 골프계는 앤서니 김을 백마 타고 온 초인으로 여겼다. 한국계 앤서니 김이 미국의 미래라는 찬사를 받았다.

 

골프장 밖에서도 앤서니 김에게는 드라마 같은 사건이 많았다. 호주의 로버트 앨런비는 “새벽 4시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숙소로 들어온 앤서니 김에게 패한 건 수치”라고 했다. 풍운아 이미지와 더불어 술을 많이 마시고도 이길 수 있는 천재라는 이미지도 남겼다.

 

그는 오만하면서도 삐딱한 ‘앙팡테리블’이었다. 월남전에 다녀온 엄한 한국 아버지와 불화가 있었다. 역시 베트남전 참전용사 아버지를 둔 타이거 우즈와 연결된다. 사람들은 앤서니 김을 ‘자신의 재능을 사랑하지 않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133억 토할까봐 잠수…‘건방진 천재’ 12년만에 돌아왔다

2008년 라이더컵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뒤 성조기를 흔드는 앤서니 김. [중앙포토]

2008년 라이더컵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뒤 성조기를 흔드는 앤서니 김. [중앙포토]

훈훈한 일화도 있다. 2008년 피자집에 간 앤서니 김이 임신 중인 여직원에게 “(태어날 아이 때문에) 남편이 아주 좋아할 것 같다”고 했더니 웨이트리스는 “남자친구가 떠나갔다”면서 울었다. 앤서니 김은 “1만~2만 달러의 팁을 줬다”고 했다. 그의 코치는 “앤서니 김은 어릴 적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무료로 레슨을 해줬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받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을 보니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앤서니 김이 잠적한 뒤 ‘히피처럼 살고 있다’ ‘노숙자가 됐다’ 등의 소문이 돌았다. 미디어와 대중은 그를 끊임없이 찾아 다녔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복귀설이 몇 차례 나왔다. 미디어와 대중은 그를 잊지 못했다.

 

그가 잠적한 이유는 몇 년이 지나 알려졌다. 아킬레스건 부상이 심했고, 그로 인해 1000만 달러(약 133억원)가 넘는 보험금을 받게 됐는데 한 번이라도 경기에 참가하면 보험금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1000만 달러나 되는 어마어마한 보험금은 앤서니 김 신화를 더욱 공고히 했다.

 

앤서니 김의 전성기는 매우 짧았다. PGA 투어에서 3승을 거둔 이후 부상에 시달렸다. 그러나 홀연히 잠적하면서 역설적으로 살아났다. 순탄치 않은 가족사, 뛰어난 재능, 반항과 일탈, 그러면서도 따뜻한 인간성 등이 얽힌 복잡한 캐릭터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남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앤서니 김은 스포츠계의 J D 샐린저가 됐다”고 했다. 샐린저가 쓴 『호밀 밭의 파수꾼』은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일어난 일을 묘사한 자전적 소설이다.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청소년의 방황·폭력·외설 등 논란이 생기자 저자는 은둔해 버렸다.

 

앤서니 김은 복귀전에서 3라운드 합계 16오버파로 최하위에 그쳤다. 실망했다는 의견과 12년 만의 복귀인 걸 감안하면 괜찮은 성적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한국계 선수 중 미국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다가 골프계 최고의 미스터리 인물이 된 김하진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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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인 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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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골프전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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