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의 색이 바뀌는 런던의 유서깊은 전철 노선도

여섯 개의 색이 바뀌는 런던의 유서깊은 전철 노선도

영국 런던 전철 노선도

런던 전철 노선도에서 지상철(Overground) 6개 노선 표시가 달라진다. 이 노선도의 초석은 1931년에 만들어진 것. 이후 전 세계 전철 노선도의 표준이 되었고, 2009년에는 템즈강 실종 소동을 겪기도 했던 유서깊은 노선도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런던의 유서깊은 전철(지하철과 지상철을 함께 아우르는 명칭) 노선도가 새롭게 바뀌었다. 런던 지상철 6개 노선에 각각 고유한 색상과 새로운 이름이 생긴 것이다. 이를 통해 노선마다 뚜렷한 정체성을 부여(과거 지상철은 노선도에서 모두 주황색으로 표시됐다)하고, 전철 승객들이 원하는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6개 노선 명칭은 각 지역의 특별한 역사를 반영해 만들어졌다. 각각 ‘라이언네스 라인’과 ‘마일드메이 라인’, ‘윈드러시 라인’, ‘위버 라인’, ‘서프러제트 라인’, ‘리버티 라인’ 등이다.

이번에 새롭게 단장하는 전철 노선도는 지금의 런던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런던 지하철(Underground) 첫 번째 구간은 1863년에 개통됐다. 그 후 수십 년에 걸쳐 수 많은 노선이 만들어졌고, 다양한 노선도가 나왔다. 하지만 서로 다른 회사들이 소유한 노선들을 정돈하지 않은 상태로 표현해 혼란을 초래했다. 그리고 노선도가 다양하고 많았지만, 런던 방문객 및 현지인들의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요즘의 노선도 같은 상징적인 것은 없었다.

오늘날 사용되는 노선도의 초석은 1931년 해리 벡이 만든 ‘다이어그램’이다. 그 전까지 영국에 수많은 노선도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웠는지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다이어그램 디자이너는 몇 제곱마일 규모의 런던 중심부를 이리저리 관통하고 1900년 기준으로 농지와 채소 농원, 미들섹스의 외딴 마을까지 뻗어 있던 노선을 어떻게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또한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코트 주머니에 접어 넣을 수 있는 크기의 지도 한 장에 담을 수 있었을까?

크기가 중요했다

전철 네트워크가 이리저리 퍼져 있다보니, 노선도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런던 중심부만 해도 코벤트 가든과 레스터 스퀘어 같은 역은 서로 200m 거리에 있는 반면, 킹스크로스와 패링던 같은 역은 1.85km 떨어져 있었다. 도심 외곽을 보면, 베이커 스트리트에서 50마일 정도 떨어진 시골 소도시인 버킹엄셔의 버니 정션과 브릴까지 지하철이 뻗어 있었다. 당시의 노선도는 이러한 지리적 거리를 축척에 맞게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철망을 지리적 관점에서 표시하려는 노선도는 1930년대 기준으로 크기가 너무 컸다.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혼잡한 지하철에서 사용하기엔 부적합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전철 노선도는 런던 중심부에 있는 노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도시 가장자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어지는 노선이 문제가 됐다. 마치 전철 노선이 인어와 괴물이 사는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항로처럼 그려졌던 것이다.

물론 예술가가 디자인한 초기의 노선도 중 상당수는 매우 매력적이고 오늘날에도 수집품으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런 노선도는 포괄적인 정보도 부족하고, 유용성도 떨어졌다.

노선도인가? 몬드리안의 그림인가?

1925년 ‘언더그라운드 그룹(지하철을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한 젊은 공학도 해리 벡은 1931년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냈다. 런던 시민과 수도 방문객들을 위한 유용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많은 사랑을 받는 디자인이 된 해법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노선도는 오늘날에도 많은 노선도의 표준이 되고 있다.

여섯 개의 색이 바뀌는 런던의 유서깊은 전철 노선도

해리 벡의 1931년 디자인은 이후 모든 지하철 노선도의 기준이 됐다.

하지만 벡이 회사에 ‘다이어그램’을 처음 제시했을 때, 사측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선들이 가로, 세로 또는 45도 각도로 뻗어가며 격자무늬를 이루는 노선도가 전기 회로도와 몬드리안 그림의 교차점 같았고 지리와는 동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벡의 노선도에선 역간 거리나 정확한 지리적 위치를 한 눈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정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승객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한 역에서 다른 역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방법과 노선 간 환승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33년 무렵 런던의 교통 체계는 또 다른 변화를 맞았다. 런던 전철과 시내버스, 트램, 트롤리버스, 리버 버스, 그린 라인 코치가 공기업 ‘런던 여객 운송 위원회’ 산하로 통합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벡의 급진적인 ‘다이어그램’도 대중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1932년 일부 역에서 500부만 시험 배포했던, 벡의 노선도는 1933년엔 70만 부를 인쇄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재판을 주문해야 할 정도로, 단시간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당시 벡의 노선도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는 디스트릭트 라인(녹색)의 서쪽 끝이나 리크먼즈워스 너머의 메트로폴리탄(자홍색)의 시골 지역을 노선도에 넣을 수 없었다. 그는 이런 디자인 문제를 수년에 걸쳐 개선했다. 그리고 1960년 런던교통을 퇴사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버전을 인쇄했다. 이후 노선도 디자인 작업은 런던교통의 홍보 담당자였던 해롤드 허친슨이 이어받았다.

하지만 벡은 자신의 디자인이 제3자에 의해 달라지는 게 마뜩잖았고 주의의식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가 런던교통과 오랜 기간 법적 분쟁을 벌인 이유다. 그는 1965년 소송을 포기한 뒤에도 1974년 사망할 때까지 파리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 등 개인적으로 노선도 작업을 계속할 정도로 이 일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여섯 개의 색이 바뀌는 런던의 유서깊은 전철 노선도

처음 구상된 지 93년이 지난 현재의 디자인

노선도 작업은 1986년 이후론 기업 차원에서 진행했다. 원조로 인정받는 벡을 제외한 개별 디자이너의 이름은 기업명으로 대체됐다. 벡의 노선도는 오래 전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가, 수많은 전철 노선도에 영감을 줬다. 또한 티셔츠, 커피 머그잔, 다른 수많은 기념품의 주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울어라, 강아

커다란 변화는 모두가 알게 된다. 수년간 도크랜드 경전철과 지상철 네트워크, 크로스레일, 그리니치 반도와 로열 독스를 잇는 에미레이트 에어라인 케이블카 등이 런던의 전철 노선도에 추가됐다. 그런데 2009년 템즈강이 노선도에서 사라졌다. 템즈강은 오랫동안 지리적 요소로 노선도에 한자리를 지켜왔다. 그런 템즈강이 사라지자, 대중의 항의와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가 쏟아졌다.

템즈강은 몇 달 후 노선도에 재등장했다. 물론 지하철 노선도 수집가들은 희귀본인 템즈강 없는 노선도를 선호할 것이다.

2006년 BBC2는 ‘위대한 영국 디자인 선발’을 진행했다. 미니와 E-Type 재규어, 비틀즈의 앨범 자켓 등 이름난 디자인 작품에서 매력적인 디자인 하나를 시청자들이 선택하는 프로그램이었다. 20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참여한 이 프로그램에서 벡의 노선도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항공기로 꼽히는 콩코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여섯 개의 색이 바뀌는 런던의 유서깊은 전철 노선도

역 이름을 유명인의 이름으로 바꾼 이 인쇄물은 상징적인 지도를 그대로 재현했다.

벡의 노선도와 그 후속작들은 예술에도 영감을 줬다. 런던 지하철 역을 위해 데이비드 부스가 만든 ‘테이트 갤러리 바이 튜브(1986)’는 물감 튜브를 짜서 전철 노선을 표현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1992년부터 사이먼 패터슨이 역 이름을 수많은 예술가와 탐험가, 과학자, 배우, 작가로 바꾼 ‘그레이트 베어’를 전시하고 있다.

영감을 받은 것은 예술가들뿐만이 아니다. 세대에 걸쳐 런던의 학생들은 통학길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역 이름을 외국어로 바꾸는 놀이를 하곤 한다. 킹스 크로스역을 독일어 표현인 ‘코니히 크로이츠’로 바꿔 부르는 식이다. 전철 노선도의 선명한 그래픽과 밝은 색상, 탁월한 존스턴체(서체의 이름)를 활용해 노선도에 있는 역명을 외우려는 사람들도 많다.

게임과 기억 대결에서 기념품과 예술품까지, 벡의 다이어그램은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매우 특별한 런던 지도를 새겨놓았다. 이 노선도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지하철 노선도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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