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우주국(NASA)이 개조한 ‘날아다니는 실험실’ DC-8 항공기 내부 모습. NASA 제공
미 항공우주국(NASA)이 개조한 ‘날아다니는 실험실’ DC-8 항공기 내부 모습. NASA 제공
오산 공군기지 활주로에 서 있는 DC-8 항공기는 겉보기엔 우리가 흔히 아는 민항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바깥에 조그만 관 같은 것들이 붙어 있고, 꼬리날개에 ‘NASA(미 항공우주국)’라는 큼직한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계단을 올라간 뒤 마주한 내부 모습은 전혀 달랐다. 원래대로라면 승객들이 줄지어 앉아 있을 좌석들 중간중간에는 온갖 기계와 디스플레이가 늘어서 있어, 사람들이 앉을 공간조차 별로 없어 보였다. 2주 동안 한반도 상공을 날며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정도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아시아 대기질 공동조사(ASIA-HQ) 임무 핵심이 되는 플랫폼이 바로 이 항공기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16일 경기도 평택의 오산 공군기지를 찾아 이 항공기를 직접 둘러보고, 임무에 실제 참여하는 관계자들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8년만에 임무, ‘위성’ 추가됐지만 관측값 ‘검증’ 위해 ‘공중실험실’ 투입
오산 공군기지 활주로에 서 있는 NASA의 ‘날아다니는 실험실’ DC-8 항공기. 김형준 기자
오산 공군기지 활주로에 서 있는 NASA의 ‘날아다니는 실험실’ DC-8 항공기. 김형준 기자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국립환경과학원과 NASA가 진행한 ‘한미 대기질 합동연구(KORUS-AQ)’의 후속 성격이다. 당시 국내외 80개 기관 580여명의 과학자가 참여했다.
연구 결과 중 주목받은 것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측정된 초미세먼지(PM 2.5)의 ‘출처’를 밝힌 것이었다. 국내와 국외가 각각 52%와 48%였고 국외는 중국 34%, 북한 9%, 일본 등 기타가 6%였다.
다만 8년 전과는 목적과 수단이 달라졌다. KORUS-AQ는 한반도의 초미세먼지(PM2.5)와 오존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광학적 오염이 집중되는 5~6월 대기질이 조사 대상이었다. ASIA-AQ는 동북아시아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겨울철이 조사 대상이다.
그사이 새로 생긴 수단은 2020년 발사된 천리안 2B 정지궤도위성(GEMS)이다. 지구로부터 3만 5786km 높이에 위성이 떠 있으면, 이 위성의 공전 속도와 지구의 자전 속도가 같기 때문에 언제나 같은 지점을 바라보게 된다.
한반도를 포함해 동서로는 일본에서 인도까지, 남북으로는 몽골 남부부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까지 아시아 22개국 대기질을 감시할 수 있다. 하지만 위성으로 관측한 내용을 활용하려면 다른 관측값과 비교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 프로젝트가 국제 공동으로 진행되고, NASA가 ‘날아다니는 실험실’로 개조한 DC-8을 투입하는 이유다. NASA와 국립환경과학원, 기상과학원, 서울대, 고려대, 한국외대 등 국내외 주요기관 45곳에서 5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국립환경과학원 유명수 기후대기연구부장은 “한반도 겨울철 대기질 악화의 원인 규명을 위한 과학적 조사”와 함께 “공동조사에서 생산된 자료에 근거해 미세먼지 예보 등 국내 대기환경정책의 효과성과 신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비행고도 1km, 공항에선 15m까지도 낮게…’국제 협력’ 필요한 이유는?
NASA의 걸프스트림 G-3 항공기 배면에 붙어 있는 관측장비. 김형준 기자
NASA의 걸프스트림 G-3 항공기 배면에 붙어 있는 관측장비. 김형준 기자
2016년과 2021년 자료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미세먼지(PM 10) 농도는 21%, 초미세먼지(PM 2.5)는 24%, 이산화질소(NO2)는 22%, 아황산가스(SO2)는 42%가 각각 감소했다. 각국이 많이 노력해 오염도를 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간 정도 오염 사례’는 발생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DC-8은 고고도에서부터 낮게는 1km 고도까지 내려와 서울 상공을 비행하면서 관측한다. 또 NASA에서 보유한 또다른 항공기인 걸프스트림 G-3이 10km 고도까지 올라가고, 우리 측 한서대와 기상과학원이 보유한 킹 에어 1900D, C90GT, B350 항공기도 각각 DC-8의 보완, 대규모 배출시설 감시, 온실가스 감축 임무를 맡고 비행한다.
이 과정에서 항공기들은 서해 상공과 함께 수도권 일대를 비행하게 되는데,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이유가 다 있다. 크로포드 박사는 “김포공항이나 서울공항(공군 15특수임무비행단)에서는 50피트(15m) 고도까지 접근해 비행하면서 여러 가지 오염원들의 분포와 구조 등을 완전하게 확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날아다니는 실험실’인 만큼 숱하게 늘어선 장비들 가운데서 어떤 장비들은 측정 즉시 항공기 안에서 바로 분석이 가능하다. 반대로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보내서 분석해야 하는 장비들도 있다. 데이터를 해석해서 발표하는 데는 1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ASIA-HQ 임무 관계자들이 16일 오산 공군기지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형준 기자
ASIA-HQ 임무 관계자들이 16일 오산 공군기지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형준 기자
다만 한국에선 대기오염 이슈가 ‘정치화’되는 측면도 없잖아 있다. 2016년 조사에서 드러났듯, 외국 미세먼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은 중국이 차지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8년이 흐르는 동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이어진 한한령(限韓令), 전랑(늑대전사, 戰狼)외교 등으로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질문에 우리 관계자들은 중국과의 협업을 “원한다”고 단언했다. NASA 측도 ‘열린 과학(open science) 데이터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검증을 마치는 대로 전 세계에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대기오염 문제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ASIA-HQ 임무는 서울로 오기 전에 마닐라(필리핀),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방콕(태국), 타이난(대만)을 거쳐 왔는데, 도시마다 특징이 다 다르다. 공장 또는 자동차, 대중교통 등의 구성이 제각기 달라서다.
그러므로 어떤 오염물질은 특정한 나라 때문에 나온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떤 오염물질은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포괄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이를 정확히 측정하고 규명하는 것이 ASIA-HQ 임무의 목적이다.
보다 정확한 관측을 하고, 그에 기반해 대기오염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무적인 외교관계 추이와는 별개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이유를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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