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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금요일 쉬는 ‘한국형 주4일제’ 솔직 반응
■ 경제+ 「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본격적인 ‘연휴 시대’가 열린다.” 2003년 8월 30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다. ‘놀토(노는 토요일)’ 시대의 개막에 직원은 환영했지만, 기업은 비상이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도 떨어질 것이란 걱정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이번엔 주4일제가 꿈틀댄다. 금요일도 쉬는 ‘놀금’을 하자는 것. 삼성전자·SK·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먼저 시작했다. 총선을 앞두고 야권 정당이 ‘주4일제, 4.5일제’를 공약으로 들고나오면서 직장인 관심도 뜨거워졌다. 독일·벨기에·프랑스 등에서 이미 주4일제를 시작했고, 미국에선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 1. “기술 혁신에 생산성 향상”…‘EU 앞장’ 주4일 근무 탄력
◆휴일의 탄생=일주일 중 하루(대체로 일곱째 날)는 모두 다 같이 쉬는 ‘근로자 루틴’은 종교에서 출발했다.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 등 유일신을 믿는 문화권 공통의 관습이다. 관습을 제도로 바꾼 건 산업혁명. 방직공장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급증하자 노동시간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1886년 미국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방직 노동자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한 사건을 시작으로 근로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주5일제를 처음 도입한 건 1926년,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 노동자 사기가 올라가고,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라는 신념에 토·일 이틀간은 공장의 기계를 멈춰 세웠다. 이후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대공황 후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제정한 ‘공정노동기준법’(FLSA, 1938년)으로 ‘5일만 일하는 시대’의 토대가 마련됐다. 초과근무의 기준이 ‘주 40시간’으로 정해진 것이다.
기술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확실히 경험한 경제학자는 근로시간 단축을 필연으로 봤다. ‘거시 경제학의 아버지’ 존 케인스는 1930년 저서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100년 후인 2030년을 이렇게 예측한다.
“몇 년 후 우린 ‘기술 실업’이란 질병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100년 후엔 삶의 수준이 4~8배 높아질 것이다. 사람은 아주 작은 의무나 소일거리만으로도 기뻐할 텐데, 그 기쁨을 ‘빵에 버터를 펴 바르듯’ 널리 나누려면 (하루) 3시간이나 주 15시간 정도만 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기업은 누구를 위해 주4일제를 하나=근로시간 단축의 동력은 기술 혁신이다. 기술 발전으로 단위 시간당 생산성이 높아졌으니 일하는 시간은 줄어도 된다는 것. 18세기 산업혁명기의 방직기가 그랬듯, 지금은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생산효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3월 21일 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주요 기업 AI 도입 실태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의 85.7%가 AI 활용으로 업무시간이 줄었다고 답했다.
미국의 금융정보 전문 웹사이트 뱅크레이트(Bankrate.com)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정규직의 89%는 주4일 근무나 원격·하이브리드 근무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는 지난 1월 독일의 주4일제 실험을 소개하며 “독일은 유럽연합(EU)에서 여성을 포함해 시간제 근로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라며 “주4일 근무를 통해 독일 노동시장에서 활용 가능한 잠재 인력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도했다.
2. 한국, 주4일 아닌 탄력근무…근로시간 줄이면 임금 깎아
주4일제가 탄소 배출을 줄여 친환경 전환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는 2021년 ‘노동시간이 1% 줄어들면 온실가스 배출이 0.8% 준다’는 사실을 검증한 스웨덴 연구와 ‘노동시간이 1% 늘어나면 온실가스 배출도 0.65~0.67% 증가한다’고 입증한 연구를 소개했다. 매사추세츠대 연구팀 역시 주4일제를 전면 시행할 때 탄소 배출량을 연 30% 감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형 주4일제? 삼성·포스코·SK를 보니=국내 일부 대기업이 도입한 ‘주4일제’는 엄밀히 말하면 탄력근무제에 가깝다. 총 노동시간은 유지하되, 월~목요일에 몰아서 일하고 한 달에 한두 번의 금요일엔 휴무를 허용하는 식이다.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 최대 주 52시간) 자체도 그대로다. 기업들도 “우리가 하는 건 주4일제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월급날(21일)이 있는 주의 금요일엔 연차 소진 없이 쉴 수 있게 했다. 다만 필수 근무시간(40시간)을 충족해야 한다. 올해 ‘격주 4일제형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 포스코도 마찬가지다. 2주에 근로시간 80시간만 지키면 격주로 금요일에 쉴 수 있다. 예컨대 첫째 주에 44시간을 근무했다면, 둘째 주엔 월~목요일까지 36시간만 근무하고 금요일엔 쉰다. SK텔레콤·SK스퀘어(격주 금요일), SK하이닉스(매월 둘째 주 금요일) 등의 ‘해피프라이데이’도 주 40시간 근무를 채우는 게 조건이다. 놀금을 해본 직원은 ‘탄력근무제면 어때, 이것만도 감지덕지’라는 반응이다. 포스코의 한 직원(33·여)은 “하루를 놀기 위해서 9일을 갈아넣여야 하지만, 휴일을 연달아 3일 가질 수 있는 건 좋다”고 말했다. SK수펙스 관계자는 “과거에는 상사와 오랜 시간 얼굴 맞대고 관계를 쌓는 방식이 통했다면, 이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업무 능력을 입증하는 게 평가에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3. 영국 기업들 ‘주4일 실험’…“90%, 임금 안줄이고 시행”
◆월급 깎여도 하시겠습니까?=국내에서도 근무시간 자체를 줄인 주4일제를 한 곳이 있긴 하다. 세브란스병원은 2022년 노조 협의에 따라 일부 간호 인력을 대상으로 주4일제를 시작했다. 교대 근무로 인한 피로도 증가가 이유였는데, 총 근무시간을 주 4일 32시간으로 줄여 4일 일하고 3일 연속 쉬도록 바꿨다. 단 급여(기본급 총액)도 8~9%가량 줄였다. 월급이 줄었는데도, 주4일제를 해본 직원의 만족도는 높았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측은 “직원의 행복도가 1.8점, 직장생활 만족도가 14.8점 높아졌으며 이직 의향도는 7.4% 낮아졌다”고 밝혔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세브란스 사례가 그렇듯, 실질 근로시간을 줄이려면 현재 한국에선 ‘임금 삭감’에 대해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이해가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 부정적이다. 국내 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은 “실제 근무일을 주당 1일씩 줄이는 주4일제를 하려면, 급여의 5분의 1을 삭감해야 한다는 게 기업의 공통된 입장일 것”이라며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을 만회하려면 초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AI나 로봇이 사무직과 제조업 현장에 퍼지면 근로시간을 줄여도 생산성 타격이 작거나 거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기본소득 실험 등 ‘일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유럽에선 주4일제에 대한 실험도 진행됐다. 영국의 싱크탱크 오토노미는 2022년 비영리단체 4DWG(4 Day Week Global)·옥스퍼드대 등과 영국의 70여 개 기업 3300여 명을 대상으로 주4일제 실험을 6개월간 진행했다. 이 기업은 “주4일제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89% 기업들이 주4일제를 유지하고 있다. 임금도 그대로 지급하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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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리·고석현·이수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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