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민주당’?…대통령도 정당의 주인은 아니었다

‘이재명의 민주당’?…대통령도 정당의 주인은 아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의 민주당’?…대통령도 정당의 주인은 아니었다

공천은 어렵습니다. 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 하지만, 공천은 ‘고도의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모든 정당은 시스템 공천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거짓말입니다. 공천은 당권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의지와 정무적 판단으로 결정됩니다.

‘아름다운 공천’은 없습니다. 공천 탈락자는 승복하기 어렵습니다. 정당 후보로 출마할 자격조차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당이 공천 과정에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후유증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입니다. 당근과 채찍이 있는 여당 공천은 대체로 조용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야당 공천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1980~1990년대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야당의 제왕적 총재들도 공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공천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면담 요청과 공천 탈락자들의 거센 항의를 피해 공천 때는 집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친명 인사가 장악한 ‘공천 시스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번 민주당 공천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이재명발 공천 파동’이 민주당을 충격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2000년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가 계파 보스인 김윤환·이기택 고문을 쳐내 ‘금요일의 대학살’이라는 살벌한 기사 제목이 달린 일이 있었는데, 그에 못지않은 장면이 민주당에서 속출하고 있습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친문재인계 중진으로 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홍영표 의원(인천 부평을)도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김영주(서울 영등포갑), 이수진(서울 동작을), 박영순(대전 대덕), 설훈(경기 부천을), 이상헌(울산 북) 의원이 탈당했습니다. 홍영표 의원도 곧 탈당할 것 같습니다.

이 대표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던지 지난 2월28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직장인 정책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자청했습니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변화해야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 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구태의연한 기득권들 그대로 다 은둔시키고 자기 가까운 사람이라고 꽂아 넣는 국민의힘식의 공천, 민주당은 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다. 1년 전에 만들어진 당규가 있고 시스템에 따른 평가가 있고 투명한 심사 결과로 좋은 후보들이 골라지고 있다.”

“우리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같은 기둥 속에 큰 줄기를 함께한다. 작은 가지들은 부딪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명문정당’(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민주당의 통합을 상징하는 조어)이고 국민들 기대치에 맞게 단합해서 이번 선거의 의미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이다.”

“최근에 탈당하는 분들이 ‘한두 분’ 계신 것 같은데 입당도 자유고 탈당도 자유다. 그런데 경기를 하다가 질 것 같으니까 경기 안 하겠다는 것은 국민들 보시기에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이 대표의 말은 대부분 틀렸습니다.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공정하지 않으면 시스템의 결과가 공정할 수 없습니다. 공개되지 않고 있는 현역의원 평가단은 대부분 친이재명 성향의 인사들이었다고 합니다.

심사 과정이 ‘투명’하지도 않습니다.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직을 사퇴한 정필모 의원은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경선 여론조사업체 선정 과정에 부당한 개입이 있었고, 허위 보고를 받아서, 내가 통제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해 사퇴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재명의 민주당’?…대통령도 정당의 주인은 아니었다

서울 중·성동갑 공천에서 배제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가운데)이 2월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홍영표 의원, 오른쪽은 윤영찬 의원이다. 연합뉴스

임종석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이었습니다. ‘작은 가지’가 아니라 ‘뿌리’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명문정당’의 ‘뿌리’를 뽑아버린 것입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임 전 실장 공천 배제에 항의해 “지도부 안에서 더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해찬 전 대표도 임종석 전 실장을 ‘배려’해야 한다고 이재명 대표에게 부탁도 하고 조언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 전 실장 공천 배제로 문 전 대통령이 화가 단단히 났다는 것이 민주당 사람들의 전언입니다. 홍영표 의원 공천 배제는 어떤 시스템에 의해, 어떤 명분으로 이뤄졌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규백 전략공천관리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을 회피했습니다.

탈당한 국회의원은 ‘한두 분’이 아닙니다. 이상민·이원욱·조응천·김종민·김영주·이수진·박영순·설훈·이상헌 등 벌써 9명에 이릅니다. 모두 이 대표 때문에 민주당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몇명이 더 탈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입당도 자유고 탈당도 자유”라는 발언에서는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냉기와 독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민주당 전직 의원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과 예의는 물론이고,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인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무슨 짓들이냐” 화난 지지층 이탈

 

이 대표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1월20일 충남 논산 화지중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를 한 뒤 한 식당 앞 단상에서 갑자기 즉석연설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갖지 않은 홀홀단신(혈혈단신)으로 먼지 털 듯이 털리면서 우리 사회 소수 기득권자와 싸우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 제가 민주당이라는 큰 그릇 속에 갇혀 가는 것 같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가겠다.”

그렇습니다. 이 대표는 오래전부터 ‘이재명의 민주당’을 꿈꿨던 것입니다. 대선 패배 직후 보궐선거에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이 된 것도, 8·28 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서 대표가 된 것도 되짚어 보면 ‘이재명의 민주당’ 관점으로 보면 다 이해가 됩니다. 지금 벌어지는 ‘이재명발 공천 파동’의 근본 원인도 ‘이재명의 민주당’ 만들기입니다.

문제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려다가 민주당이 총선에서 지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전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첫째,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극적 지지층입니다. 둘째, ‘무슨 짓들을 하는 거냐’고 화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극적 지지층입니다. 셋째, ‘내 그럴 줄 알았다. 대선 때 윤석열을 찍을 수 없어서 이재명 찍었는데, 이번에는 민주당 절대 안 찍는다’고 돌아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탈층입니다.

민심은 여론조사 수치로도 나타납니다. 3월1일 발표한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40%, 민주당 33%였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많이 벌어졌습니다.

‘이재명의 민주당’?…대통령도 정당의 주인은 아니었다

민주당 공천 파동은 ‘조국 신당’ 돌풍의 배경으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재명 대표 때문에 민주당을 찍지 않겠다는 유권자 중에는 조국혁신당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특히 호남에서 그런 흐름이 뚜렷하게 읽힌다고 합니다. 민주당으로서는 갈수록 태산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민주당이 쪼개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언론이나 외부의 비판과 달리 민주당 안에서는 ‘체념’과 ‘각자도생’의 기류가 읽힙니다. 민주당의 한 원로 정치인은 “이재명 대표를 말릴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것 같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재명 대표나 친이재명 권리당원들에게 ‘찍혀서’ 공천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둘째, 공천 갈등이 더 커지면 4·10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고 자신도 낙선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자신의 처지를 솔로몬의 재판을 받는 어머니로 비유했습니다. 민주당이라는 아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가짜 어머니’(이재명 대표)에게 아이를 양보할 수밖에 없는 ‘진짜 어머니’의 심정이라는 설명입니다.

 

대통령도 ‘민주당 주인’ 아니었는데…

 

이런 상태에서 민주당의 총선 승리가 가능할까요? 이재명 대표가 바라는 대로 공천 파동이 가라앉고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기면 어떻게 될까요?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올라갈 것입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8월 전당대회에 다시 대표로 출마할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당 의원 중에는 “차라리 총선에서 지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재명 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날까요? 상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매우 독특한 사람입니다. 민주당 안팎에는 이재명 대표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층’이 두텁게 존재합니다. 총선에서 져도 ‘민주당을 살리려면 이재명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전당대회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총선에서 이겨도, 총선에서 져도,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라는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민주당이 이겨도 걱정, 져도 걱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재명의 민주당’?…대통령도 정당의 주인은 아니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장이 2월29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전략공관위 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무리하겠습니다. 민주당은 이승만 독재에 맞서 1955년 창당한 정당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민주당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 공천으로 4·10 22대 총선에서 당선되는 사람들이 과연 ‘친이재명 국회의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잘나서 공천을 받았고 총선에서 당선됐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이재명 대표를 외면할 것입니다. 공천 파동까지 일으켜가며 민주당을 장악하려는 이재명 대표의 꿈은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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