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판결서 인정된 ‘삼성 합병 개입’···이재용 판결에선 “없었다”?

박근혜 판결서 인정된 ‘삼성 합병 개입’···이재용 판결에선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2.5 성동훈 기자

국정농단 판결 때는 “부당한 영향력”

이번 1심에선 선행 판결과 정면 배치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은 국민연금공단이 독립적 판단으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이 회장의 청탁도, 박 전 대통령의 부당한 개입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판결에선 국민연금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가 있었다고 인정됐다. 불법 승계 사건을 심리한 이번 1심 재판부가 선행 판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이재용 재판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는 독립적으로 이뤄져”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의 이 회장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당 개입으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의사결정이 왜곡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삼성이 대한승마협회를 맡아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 딸 정유라씨를 지원해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이 회장이 적시에 이행 의사를 전달했고, 이를 통해 이 회장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박 전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유도했다고 봤다. 대통령-청와대-복지부장관으로 이어지는 부당한 개입을 통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결권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ISDS)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은 보건복지부 등 압박과 별개로 국민연금 투자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심의·표결한 것’이라고 주장한 점 등을 들어 검찰 주장을 배척했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이 기소되지 않은 점도 판단 배경으로 들었다.

검찰은 이 회장 측이 국민연금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허위 문건을 전달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허위 사업 부문별 시너지 수치를 기재한 2차 주주설명자료’ ‘안진 딜로이트의 합병 비율 검토보고서’ ‘시너지 자료 문건’ 등이 허위로 조작됐다고 볼 수 없다거나 국민연금에 전달된 적이 없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지시’·문형표 ‘부당 지원’ 모두 인정됐는데…

박근혜 판결서 인정된 ‘삼성 합병 개입’···이재용 판결에선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경향신문 자료사진

반면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당시 재판부는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 합병 안건에 대해 찬성 입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고인(박근혜)의 지시나 승인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6월 당시 고용복지수석에게 “합병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공단 의결권 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한 점, 청와대 참모진과 복지부 사무관이 합병 건을 전문위원회가 아닌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판결에 따르면 당시 복지부 공무원들이 전문위원회 위원들의 찬반 성향을 파악한 결과 전문위원회에서 표결할 경우 합병 안건 찬성 의결이 힘들어 보였다. 이를 보고 받은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 전 장관은 이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돼 징역 2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부당한 지원’이 있었다고 인정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면서 “삼성그룹은 삼성 물산 합병 추진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엘리엇의 출현으로 합병 성사 여부가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에 의해 좌우되는 양상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룹 차원에서 이 사건 합병 성사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email protected]

ⓒ경향신문(http://www.kha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News Related

OTHER NEWS

황일봉 전 광주 남구청장 "정율성 기념사업 추진 사죄"

정율성 사업 철회 촉구 집회 참석한 황일봉 전 회장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황일봉 5·18 부상자회 회장이자 전 광주 남구청장은 28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전범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 Read more »

대입 준비, 기본에 충실한 '적기교육'이 정답

대입 준비, 기본에 충실한 ‘적기교육’이 정답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 날인 17일 대구 수성구 정화여고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가채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었다. 킬러문항이 없어지면 물수능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 Read more »

서울 도봉구,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 완료…보행로 확장·조명 설치

서울 도봉구,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 완료…보행로 확장·조명 설치 오언석 도봉구청장이 지난 24일 우이천 제방길 정비공사 현장을 주민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사진=도봉구청 서울 도봉구(구청장 오언석)가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를 완료하고 ... Read more »

허재현 기자 "최재경 녹취록, 신뢰할만한 취재원에게서 확보"

검찰 피의자 조사…”공수처에 검찰 관계자 고소” ‘대선 허위보도 의혹’ 허재현 기자, 검찰 피의자 조사 (서울=연합뉴스) 조다운 이도흔 기자 =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리한 허위 보도를 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받는 ... Read more »

‘담배 모르는 세대’ 세웠던 뉴질랜드…세수 모자라 금연법 철회

한 남성이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다음 세대 완전 금연을 목표로 한 뉴질랜드의 야심적인 금연 대책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27일 출범한 뉴질랜드의 중도 우파 국민당 주도의 연정은 2009년 1월1일 ... Read more »

'수억 광고 수익 숨기고 해외 여행 유튜버', 재산 추적한다

‘수억 광고 수익 숨기고 해외 여행 유튜버’, 재산 추적한다 김동일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28일 정부세종청사 국세청에서 지능적 재산은닉 고액 체납자 집중 추적조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유명 유튜버 A씨는 매년 수억 ... Read more »

식사 직후 '과일' 먹는 습관… 당장 멈춰야 하는 이유

건강을 위해 매일 과일을 챙겨 먹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과일도 언제 먹느냐에 따라 몸에 끼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식사 후 곧바로 과일을 먹는 습관은 오히려 독이 될 수 ... Read more »
Top List in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