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 신임 와이티엔(YTN) 사장이 지난 3일 ‘불공정 보도 대국민 사과’ 방송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와이티엔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 겨울 한국방송(KBS)에서 불거졌던 ‘방송 장악’ 논란이 와이티엔(YTN)에서 재현되고 있다. 새 사장이 들어서자마자 시사·보도 프로그램 진행자가 교체되고, 노사 단체협약에 명시된 공정방송 장치는 무력화되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송이 불방되는 식이다.
언론 현업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송 장악 패턴의 기저에 권력의 ‘공영방송 길들이기’를 넘어선 ‘비판 언론 죽이기’ 의도가 깔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백·박민의 ‘데칼코마니 행보’
와이티엔은 지난 3일 ‘불공정 보도 대국민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여기서 김백 신임 사장은 “와이티엔이 그간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선거 때만 되면 불공정·불균형 보도가 독버섯처럼 반복됐다”며 고개 숙였다. 그는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와이티엔의 김건희 여사 관련 보도를 집어내며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인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보도했다”고 말했고, 이어 오세훈 서울시장의 ‘내곡동 처가 땅 셀프보상 의혹’ 보도(2021), ‘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인용 보도(2022)를 ‘불공정 보도’ 사례로 언급했다.
이 사과는 박민 한국방송 사장의 대국민 기자회견 재탕이다. 박 사장은 취임 이튿날인 지난해 11월1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방송이 공영방송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신뢰를 잃었다”라고 했다. 그 역시 ‘오세훈 서울시장 처가 땅 의혹’ 보도와 ‘뉴스타파 녹취록’ 인용 보도를 대표적인 ‘불공정 편파 보도’로 지목했다. 한국방송과 와이티엔 모두 사과는 일방적으로 이뤄졌다. 취재 당사자 혹은 내부 구성원과 논의는 없었다. 공개 기자회견(한국방송)과 사전 녹화방송(와이티엔)이라는 형식적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박민 신임 한국방송(KBS) 사장(왼쪽 둘째)과 임원진들이 지난해 11월14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두 방송사 신임 대표의 ‘데칼코마니 행보’는 사과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박민 사장 취임 뒤 한국방송에서는 간판 시사 프로그램 ‘더 라이브’가 폐지됐고, 구성원 동의를 받아 보도·제작 책임자를 임명하도록 한 임명동의제가 무시됐으며, ‘다큐 인사이트’의 세월호 10주기 방송이 제작 중단됐다.
와이티엔도 마찬가지다. 김백 사장이 선임된 지난달 29일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진행자가 교체됐고, 임면동의제 없이 보도국장이 임명됐으며, ‘돌발영상’ 불방 사태가 이어졌다. 한국방송에서 약 석 달 간 벌어진 일을 와이티엔은 일주일 만에 해치웠다.
민영화, 수신료 분리징수…극단적인 방식을 쓴다
고한석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와이티엔지부장은 “용산 대통령실에 승인을 받는 공통 절차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행위와 내용이 담긴 언론 장악 시나리오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 역시 “얼마 전 ‘한국방송 장악 문건’이 보도됐는데, 특정 세력이 계획적으로 언론 장악을 실행하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문화방송(MBC) 보도로 최근 폭로된 해당 문건에는 ‘사장의 대국민 담화’ 등 실제로 실행된 계획이 담겨 있어 논란을 키웠다.
한국방송과 와이티엔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기에도 정권의 ‘낙하산 사장’에 구성원들이 반발하며 장기 파업·집단 해직 등 고초를 겪은 바 있다. 김백 사장의 경우, 당시 와이티엔 해직 사태를 주도하고 경영기획실장, 보도국장, 상무이사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 벌어지는 ‘방송 장악’은 그때보다 교묘하고 과격한 형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시행령을 통한 수신료 분리징수(한국방송)나 방송통신위원회의 민영화 승인(와이티엔) 등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드는 비가역적인 변화가 선행됐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조 등 90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지난달 29일 와이티엔(YTN) 사옥 앞에서 김백 사장 선임에 대한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강수 기자 [email protected]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홍보실장은 “이전 정권에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그대로 둔 채 친정권 인사를 다수 밀어 넣는 방식을 썼다. 그건 민주당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 윤석열 정부는 수신료 재원을 건드려서 케이비에스 내부에 분열을 만들어내거나, 보도전문채널의 주식회사 성격을 이용해서 와이티엔 최대주주를 바꿔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이어 “공영방송을 ‘친정권 스피커’로 활용하기보다, 상대 정치 세력의 팬덤을 조성하는 기지로 간주하고 아예 해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영방송 회의론과 언론 독립성 사이
홍원식 교수는 이러한 강압적 언론 정책이 이번 선거 표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홍 교수는 “‘땡전뉴스’를 연상시키는 공영방송의 퇴행을 보면서 유권자들은 말로만 자유를 강조하는 현 정권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한편으로 공영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로, 다른 한편으로 언론 독립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논의가 회의론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강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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