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후 4년은 ‘소사춘기’
폭풍처럼 호르몬 증가해
신체·심리적인 변화 불러
내분비내과 전문의 저자
호르몬으로 인간 생애 분석
“내가 성호르몬 노예였다니”…나이 먹으니 귀가 안 들리는 것마저도 [Books]
사춘기는 성호르몬이 폭발하는 시기라고 했던가. 호르몬의 관점에서 보면 영유아들에게도 ‘소사춘기’가 있다. 생후 첫 4년 동안 아이들은 호르몬 폭풍에 대처해야 한다. 남아의 경우 남성호르몬이 점진적으로 증가해 생후 약 6개월 뒤 최고조에 이른다. 여아는 생후 첫 주부터 두돌까지 주기적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떨어지길 반복한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호르몬은 신체적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측면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대부분 금세 다시 가라앉는다.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다.
문제는 환경적으로 과도하게 호르몬 교란물질에 노출되면서 유아기 때 정상적인 호르몬 조절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조숙증과 아토피 등 증상으로 이어진다. 일례로 아기 위경련에 좋다고 알려진 회향 차를 너무 어린 나이에 먹기 시작하면 유방이 발달하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콩류와 고기가 주를 이루는 식단도 호르몬 균형을 깨뜨린다. 플라스틱과 화장품, 페인트, 살충제는 물론 라벤더 오일 같은 천연 성분의 보습제 역시 과다 사용한다면 예외가 될 수 없다.
신간 ‘호르몬은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는 내분비내과 전문의인 막스 니우도르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학센터(UMC) 당뇨병센터장 겸 혈관의학과장이 인간의 생로병사를 좌우하는 호르몬의 모든 것을 한 권으로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영유아의 발달 과정은 물론 식욕과 체중 조절, 수면 질, 스트레스 반응, 면역 체계, 생식과 불임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전 생애 주기에 걸쳐 호르몬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러면서 호르몬이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떻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 준다. 또 운동선수들이 테스토스테론을 찾는 이유, 호르몬과 관련이 깊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등에 대해서도 다룬다.
대체로 건강의 적신호들은 호르몬 불균형에 의해 시작된다. 예를 들어 배고픔을 자극하는 호르몬 그렐린과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렙틴의 균형이 깨지면 원치 않는 체중 증가와 당뇨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갑상샘호르몬이 부족하면 배변이 원활하지 않고 우울감이 높아질 수 있다. 중년에게 흔히 나타나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돼 중독증을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심할 경우 급성 발작을 일으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오늘날 갱년기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여성의 폐경기도 마찬가지다. 생식능력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성격이 괴팍해지며 살이 찌고 건망증이 심해진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실제로 갱년기를 맞는 5명 중 4명은 이런 증상들을 하나 이상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상당수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정도가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폐경기는 인체의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저자는 폐경기 역시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폐경기 때 겪는 호르몬 불균형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유해 환경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되는 도시 여성이 시골 여성보다 폐경기에 불면증을 겪을 확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책은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을 통해서도 호르몬 이야기를 펼쳐낸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부신 기능 장애로 인해 생전에 호르몬을 너무 적게 생산하는 에디슨병을 앓았다.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 전초전 당시 케네디의 코르티솔 수치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코르티솔은 콩팥의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주로 외부의 스트레스와 같은 자극에 맞서 몸이 에너지를 높일 수 있도록 해 준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케네디는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하마터면 협상 결렬로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다는 역사가들의 회고가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노년기에는 호르몬의 유연성 상실로 코르티솔 수치가 살짝만 높아져도 이를 치매와 조기 사망을 예측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지표로 여긴다. 노년에는 신체가 비타민D를 덜 생산해 혈중 칼슘 수치를 유지하기 위해 부갑상샘호르몬을 늘려 뼈에서 칼슘을 빼낸다. 골다공증에 걸리기 쉬운 것이다. 또 성호르몬 변화의 영향으로 안구 신경 기능이 저하돼 시력이 더 나빠진다. 청각도 마찬가지다. 고령에 더 자주 넘어져 뼈가 부러질 위험이 큰 것도 호르몬과 연관이 깊은 셈이다.
저자는 그렇다고 인간이 호르몬의 노예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호르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위한 우리의 선택과 결정을 달리해 충분히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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