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가게 앞에 서 있는 외로운 남성’을 잘 표현한 콘티. 이런 이미지를 사람이 만들면 한컷당 5~6시간, 30만원의 비용이 드는 데 비해, 생성형 에이아이 플레이그라운드는 1분여 만에 무료로 원하는 품질의 이미지를 생성해냈다. 단, 생성형 에이아이를 통해서 흡족한 이미지를 얻는 빈도는 낮은 편이다.
처음엔 ‘재미있는 장난감이 등장했구나’ 정도였다. 광고업은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카피라이터 친구들은 인공지능에게 카피를 쓰게 하거나 콘티를 짜게 한 다음, ‘사실 이 광고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만든 광고’라는 식의 반전을 가지고 회의에 들어 왔다. 그래서 나는 생성형 에이아이를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 정도’라고 생각했다. 카피는 무난했고(‘무난하다’는 광고업계 표현으론 안 좋다는 뜻이다) 내용도 잘 살펴보면 말이 안되거나 구성이 단조로워서 아이디어로 채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다만 신기하다는 이유로 작년 몇몇 광고회사는 에이아이가 내놓은 아이디어로 광고를 만들었는데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인간이 했던 것처럼 ‘창의성 학습’
장난감으로 생각했던 생성형 에이아이를 도구 정도로 격상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카피보다 아트의 영역에서 시작됐다. 광고 제작팀엔 글 쓰는 카피라이터가 반, 비주얼을 다루는 아트디렉터가 반 정도 되는데, 지난해 초 아트디렉터들을 들썩거리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게 된다고?”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
생성형 에이아이를 통한 콘티 작업이 아트디렉터들에게 빠르게 전파됐다. 이유는 당연히 돈과 시간 때문. 그림이 특히 중요한 화장품·자동차·스포츠 같은 제품에서 콘티를 그리는 건 아주 중요한 업무다. “하드보일드 하게 그려주세요”, “화사하게 그려주세요” 등 구체적인 상황 설명은 기본이고, 콘티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아트디렉터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 이 어려운 일을 에이아이가 몇분 만에 해 낸 것이다.
생성형 에이아이가 콘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많은 아트디렉터들이 콘티를 ‘발주’하기 시작했는데 산출물은 제각각이었다. “한우가 노란색 자동차에 실려가고 있는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만들어 줘”라는 지시에도 생성형 그림 인공지능 미드저니는 다양한 산출물을 내놓았다. 에이아이를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고 지시문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관건이었다.
아주 가끔 성공하고 대체로 실패한 사례를 거치며, 에이아이가 신뢰를 주지 못하자 아트디렉터들은 다시 본인의 경험과 능력이 험난한 광고일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도구라고 일단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나는 에이아이가 꽤 실존적인 위협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사건이 에이아이가 광고업계에서 활용된 지 1년도 안된 사이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광고 크리에이티브팀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창의성’이 개인의 영역이고, 그 창의성을 만드는 건 ‘개인의 소질’과 ‘습득한 경험과 지식’이라는 점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창의성에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객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광고회사에 의뢰하고, 크리에이티브 팀은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것으로 존재이유를 증명한다.
그러나 에이아이는 ‘패턴’을 통해 창의성마저 학습한다.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콘텐츠에 패턴이 있고, 이를 학습하면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전제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아닌 ‘천연’지능인 나도 그렇게 창의성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카피라이터 시절 좋은 글들을 수없이 읽었다. 카피 한줄로 광고를 많이 만들던 시절이라, 김훈처럼 함축적이면서 맥락을 많이 담고 있는 작가의 문장을 손으로 써 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명언을 수집하기도 하고, 일본어·영어로 된 카피들을 번역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은 나조차도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다른 크리에이티브의 패턴을 학습했고 생성형 에이아이도 그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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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가올 ‘인공지능의 승리’
“한우가 노란색 자동차에 실려가는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그려달라”고 하자 생성형 그림 에이아이 미드저니는 물소인지 황소인지 알 수 없는 뿔을 가진 소를 만들었다. 디테일한 그림을 얻고 싶을 때는 에이아이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작업이 여전히 유효하다.
챗지피티에게 “소설가 김훈의 문체로 생성형 AI를 설명해줄래?”라고 요청하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생성형 에이아이(AI)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여는 문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며, 우리의 상상력과 미래에 대한 열망을 자극한다. 텍스트를 예리하게 이해하며, 마치 작가의 마음을 읽어내듯 자연스러운 문장을 창조한다. 마치 고요한 밤하늘의 별들이 새로운 이야기로 물들 듯이 에이아이(AI)는 언어의 놀라운 무한성을 보여준다.”
곰곰이 읽어보면 결코 질이 좋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에이아이는 크리에이터들이 문장을 통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패턴이라고 단순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패턴 위에 ‘사실’을 버무려내는 일을 1분 내외에 아주 우습게 해내면서 인공지능은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소라(SORA)라는 동영상 생성 에이아이가 공개됐다. 이튿날 많은 영화감독·촬영감독·조명감독들의 에스엔에스(SNS)는 회한이 가득 찼다. 현업을 떠난 한 감독님은 “이런 꼴 안보고 은퇴한 내가 다행”이라고 말했고, 막 시작하는 감독님들은 에이아이와 경쟁해야 하는 삶에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에이아이를 통해 더 값싸고, 질 좋은 많은 콘텐츠들이 태어날지 모른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문장을 구성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부족해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업을 갖고, 창의성을 감독하는 일을 하는 나로서는 앞으로 어떤 크리에이티브가 좋다고 판단해야 할지, 나는 무엇을 가지고 에이아이와 경쟁해야 할지 실존적 위협에 빠져있다. 얼마전 일본의 한 광고회사가 에이아이와 대결을 펼쳤다. 인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만든 광고와 인공지능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같은 제품을 놓고 두가지 광고를 만든 다음 어떤 광고가 더 마음에 드냐는 설문조사. 인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이기긴 했다. 52 대 48 간발의 차이로.
글·사진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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