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도, 페미니즘도 어려운데 '에코 페미니즘'이요?

에코도, 페미니즘도 어려운데 '에코 페미니즘'이요?

에코도, 페미니즘도 어려운데 ‘에코 페미니즘’이요?

16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물권 행동 ‘카라’ 사무실 외벽에 ‘마침내 개식용 종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한 작가

“마침내 개식용 종식!”

‘동물권행동 카라’ 단체 건물에 거대한 현수막이 걸렸다. 이달 9일 개식용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2027년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한마디로 이제 ‘개고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셈이다. 이 일보 전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권 활동가들이 싸우고 목소리 높였을까. 위풍당당하게 걸린 거대한 현수막이 우리 사회가 느리더라도 착실하게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벅찼다.

페미니즘 활동을 하며 접한 환경문제

페미니즘 활동을 하며 변한 많은 것 중 하나가 동물권을 비롯한 생태환경에 대한 시선이다. 이전에도 반려견, 반려묘와 살았던 경험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동물권이나 환경 문제에 신경을 쓰며 살지는 않았다. 열악하고 잔인한 환경에서 키워지는 동물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약육강식 같은 것을 떠올리며 인간이 고기를 먹는 건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봄가을은 추억 속 단어가 되고 열대국가처럼 스콜이 쏟아지는 등 이상기후에 곤욕을 겪어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나라에도 망고나 자랐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패배주의로 냉소했다.

신기하게도 페미니스트 친구들 중에는 이런 나의 게으름과 패배주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친구들은 종 차별주의에 반대하며 동물의 사체를 ‘고기’라 부르는 것에 반대하고 채식을 실천했다. 더 많은 친구들이 공장식 사육의 잔혹함을 지적하며 그와 관련한 고기를 먹지 않았고 우유 대신 두유를 선택하기도 했다. 무차별하게 생산되고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으로 오염되는 환경을 지키려 옷을 살 때 구제 제품을 먼저 알아보는 친구도 있었고 일회용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장바구니, 텀블러, 다회용 빨대나 수저를 들고 다니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덩달아 분위기를 맞추느라 회식 때면 부지런히 두부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았고 행사 때 간식을 준비하더라도 비건 빵이 있는 베이커리를 들렀다.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비건 디저트는 가격이 조금 더 비싼 경우가 많아서 하나씩 집을 때마다 이 가격이면 더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비건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어느 날은 집에서 혼자 치킨을 시켜 먹는 나를 보며 문득 이상한 부끄러움과 의아함이 들기도 했다. 대체 그들은 왜, 대체 어떻게 페미니즘이라는 어려운 길을 걸으면서 동시에 환경 문제까지 신경 쓸 수 있는 걸까? 그것은 마치 외발자전거를 타며 손으로는 저글링을 하는 것 같았다.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의 연결고리, 에코 페미니즘

에코도, 페미니즘도 어려운데 '에코 페미니즘'이요?

페미니즘과 비거니즘의 접점에 관한 책 ‘살리는 맛’.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과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자 동물권 활동가인 전범선이 주고받은 편지를 담았다. 동녘 제공

고기를 너무 좋아해 아침에도 삼겹살을 구워 먹던 친구는 페미니즘을 접하고 고기를 점차 줄여나가더니 어느 순간 페스코 베지테리언(유제품, 달걀, 어류는 먹는 채식주의자)이 됐다. 그 친구의 변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페미니즘과 환경운동의 연결고리에 대한 의문이 비로소 풀렸다.

친구는 페미니즘을 접하고 자신을 둘러싼 각종 차별과 억압, 폭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친구는 여성으로 살며 늘상 ‘보기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 다이어트를 권장받았다. 그런데 이때, ‘보기 좋은 몸’은 어떤 형태이고 그 주체는 누구인가? 지난 글에서도 지적했듯, 그것은 여성이 자신의 몸을 잘 기능하게끔 권장하기보다 타인이 보기에 매력적이게끔 권장돼 왔다. 이때 시선의 주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대체로 더 많은 권력을 쥔 남성에게 있으며 이로 인해 여성은 자신의 몸을 타자화해 인식하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탈코르셋 운동에 뛰어든 친구는 이내 ‘타자화’라는 비슷한 기제의 착취와 억압이 여성에게만 향하고 있지 않으며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모든 존재에게 유사하게 뻗어나가 있음을 알게 됐다. 특히 동물을 향한 시선과 태도가 그랬다. 우리는 동물을 생명을 가진 개별적인 주체로 바라보지 못하고 인간의 쓸모라는 목적의 수단으로 대해 왔다. 닭은 태어나자마자 분리돼 쓸모에 따라 갈려나가고 이 과정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도 A4용지 한 장만 한 갑갑한 철창 안에서 살다가 고작 한 달, 길어야 1~2년 안에 죽임을 당한다. 돼지와 소를 비롯해 가축화된 다른 생명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몸은 ‘삼겹살’, ‘꽃등심’처럼 인간의 취향에 따라 분류되고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철저하게 통제된 채 사육, 도살된다.

에코 페미니즘은 이러한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확산이 만들어내는 환경오염과 차별, 착취와 소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태동했다. 자연과 문명을,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고 우열을 두어 누군가는 지배하는 주체로, 또 다른 누군가는 지배되는 대상으로 삼는 이 구조의 잔인함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구분하고 차별, 통제하는 가부장제와 닮았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이 모든 자연과 생명을 통제하고 도구화할 수 있다는 오만을 비판하는 데 함께 목소리 냈다.

또한 그것은 페미니즘 운동이 이야기하는 돌봄과도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가부장제는 돌봄을 여성의 당연한 역할로 치부하면서 동시에 가치를 절하해왔다. 페미니즘 운동은 모든 존재가 돌봄 없이 생존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게 목소리 높였고 돌봄의 범위를 육아에서 자기 자신, 나아가 모든 생명과 환경으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게 했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을 접하고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경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비거니즘을 이끄는 젊은 여성들과 그에 무감한 사람들

에코도, 페미니즘도 어려운데 '에코 페미니즘'이요?

게티이미지뱅크

그래서인지 여성을 중심으로 생태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비건 전문 음식점의 경우 카드사 발표에 따르면 주요 고객층이 20, 30대 여성이고 2022년 기준, 3년간 음식점 증가세가 약 400%에 달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화장품과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비건 패션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으며 심지어는 비건 콘돔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반가운 변화 한편에 여전히 그 흐름을 낯설어하거나 냉소하는 사람 역시 적지 않다. 특히 많은 남성들에게 에코(Eco)도 페미니즘도 뒷전일 때가 많다. 2023년 발표된 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에 따르면 비거니즘에 대해 여성은 44%가 알고 있다고 말하는 반면, 남성은 38%에 그쳤다. 또한 ‘채식주의는 환경과 동물권을 보호하는 식생활 방식이다’라는 설문에 대해 여성은 60% 가까이가 동의했지만, 남성은 각각 48%(환경), 55%(동물권)로 비동의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이러한 인식은 다른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2021년 발표된 KBS 세대인식 집중조사에 따르면 “환경보다 개발이 중요하다”는 설문에 청년 남성은 43.8%가 동의한 반면, 청년 여성은 11.5%에 불과했다.

실제 주변 비거니즘 활동을 하는 남성들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채식을 실천하는 한 남자 지인은 ‘고기’와 ‘술’로 점철된 친구 모임이 자주 부담스러웠다. 식당에서 육류가 아닌 음식을 먹기 어려운 것은 그나마 견딜 수 있었으나 오히려 더 힘든 건 주변의 말과 시선이었다. 평소 자신의 건강에 크게 관심 보인 적 없으면서도 채식을 한다고 하면 다짜고짜 ‘근손실’ 온다는 이야기부터 했다.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고구마나 배추는 안 불쌍하냐고 응수하기 일쑤였고 환경운동이라고는 SNS의 알고리즘이 만들어주는 자극적인 영상을 본 것이 전부이면서도 ‘극단적’이고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있다며 조롱하곤 했다.

변화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태도마저 페미니즘을 향한 부정적 반응과 매우 흡사한 패턴을 보인다. 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위계적인 문화 속에서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남성성을 강요받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가치관을 흔드는 변화에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거부감을 표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는 환경운동에 있어서도 비슷한 유형의 방어기제가 작동함을 느낀다. 아무리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지금의 공장식 산업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 리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지금처럼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형태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당장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문제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을 때, 많은 이들은 막연한 낙관처럼 보이는 패배주의에 젖어들어간다.

그러나 활동을 하면 할수록 세상은 패배주의가 아니라 무엇이라도 조금씩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변하는걸 느낀다. 당장 모든 고기를 끊기 어려워도 간헐적으로나마 채식하는 습관을 기르거나 대체 식품이 있을 때 한 번씩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일상에서 쓰레기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텀블러, 다회용기를 들고 다니고 분리수거에 좀 더 신경쓰는 방법도 있다. 만약 조금 더 실천을 확장해볼 여력이 된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 비건인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다과와 식당을 준비하면 더 센스 있는 모임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편의점 제품 중에서도 비건 식품이 늘어나고 있어 다과를 고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당장 개개인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냉소하고 포기하기보다 정부와 정책, 국제기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거나 후원으로 지지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나도 아직 에코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한다. 평소 삶도 환경 문제에 말을 얹기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적어도 지구라는 안식처가 내 요람이자 무덤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갈 터전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당신도 마찬가지라면 오늘 한 끼는 비건식 어떨까? 에코 페미니즘과 관련한 책과 함께라면 금상첨화이고 말이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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