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에 늘어서 있는 대한항공 항공기들. 사진=대한항공
[데일리임팩트 김현일 기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내주기로 한 대한항공의 결정이 효과를 거둔 모양새다. 유럽연합 경쟁 당국(EC)에서 국내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 심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있다는 보도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유럽 관문을 넘어선다해도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심사 등이 남아있는데다 그 과정에서 추가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업계는 합병이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보고 그 이후를 설계하고 있다.
특히 저비용항공(LCC) 업계에서 양사 합병을 계기로 1,2위 자리를 노리는 물밑작업이 벌써 분주한 것으로 보인다.
23일 항공업계와 외신보도 등에 따르면 EU 경쟁당국은 이달말 또는 다음달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최종 승인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U 집행위 측에서 대한항공이 제출한 시정 조치안에 납득했다는 것.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 기업결합 조건으로 아시아나의 화물사업부 매각과 유럽 4개 도시(프랑크푸르트·바르셀로나·파리·로마) 노선 슬롯을 반납하는 시정 조치안을 제시한 바 있다.
슬롯(Slot)은 해당 국가에서 운수권을 보유한 항공사가 특정 시간대에 이착륙 할 수 있는 권리로, 반납한 슬롯은 해당국 항공사에게 돌아간다.
유럽 승인이 마무리되면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최종 판단이 남는다.
화물 컨테이너 위를 날고 있는 항공기의 모습. 사진=이미지투데이
남은 것은 美·日 심사… 쉽지만 쉽지 않다?
미국과 일본 심사가 상대적으로 무난하다는 예상이 지배적인데 일부에서는 돌발 변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두 국가 중 한 곳이라도 승인하지 않을 경우 합병이 무산되는 만큼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형국이기 때문.
업계에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EU와의 협상 과정에서 ‘알짜매물’인 아시아나 화물사업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는 총 11대의 화물기를 보유 중이며 연간 매출만 1조가 넘어 아시아나 매출의 20% 가량을 담당해 왔다. 코로나 당시만 하더라도 총매출 중 70%를 담당하며 아시아나의 숨통을 틔우기도 했다.
다행히 화물사업부 매각을 통해 화물노선 독점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여객노선에서는 독점 우려를 지적할 여지가 충분한 만큼 업계에서는 추가적인 슬롯 상실이 불가피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양사는 영국과 중국의 기업결합 심사 통과를 위해 영국에서 갖고 있던 17개 슬롯 중 7개를, 중국에서는 무려 46개 슬롯을 반납한 바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다른 항공동맹체 소속인 만큼 합병에 대한 반발이 거세 다소 무리한 노선 요구를 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대한항공은 ‘스카이팀’, 아시아나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에 소속돼 있는 만큼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 산하에 들어갈 경우 항공동맹체 간 노선 비중 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대한항공·아시아나가 공동 운항 중인 13개 노선 중 5개(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뉴욕·LA·시애틀)에서 양사의 합산점유율은 80% 수준에 해당한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양분했던 노선이 독점노선으로 바뀌며 발생할 수 있는 항공권 가격 상승과 서비스 질 하락 등도 우려된다. 여기에 다수의 슬롯을 포기하며 한국 항공 사업의 경쟁력이 약화된 만큼 ‘적절치 못한 합병’이라는 일부의 따가운 시선도 대한항공이 감내해야 할 부분. 양사의 합병으로 인해 한국이 보유한 슬롯이 사라진 부분에서는 국가 항공 경쟁력이 소폭 하락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 저비용항공사 상위 3개 업체 항공기 이미지. (위부터) 진에어,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순서는 작년 실적 및 탑승객 순위와 관계 없음.
LCC 업계도 분주… “이참에 업계 1위 노려야”
이에 LCC 업계 3사에서도 선두권 다툼 싸움이 거세질 전망이다.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분할과 양사의 유럽 중복노선 이관 등으로 수혜를 보는 업체들이 생길 예정이기 때문.
우선 진에어는 아시아나항공의 LCC 2사(에어부산·에어서울)과의 합병을 통해 ‘메가 LCC’의 수장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에 따르면 조원태 회장은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진에어에 흡수합병하는 형식의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LCC 연합체의 출범은 아시아나항공 통합이 다 이뤄지고 난 이후에 논의될 예정인 만큼 아직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는 점.
하지만 합병이 이뤄질 경우 그 규모만큼은 확실한 ‘메가급’이 될 예정이다. 국토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선 여객수의 경우 진에어가 504만1261명, 에어부산이 363만7568명으로, 이 둘을 합할 경우 같은 기간 736만35명을 기록한 제주항공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 여기에 에어서울(151만5148명)까지 더할 경우 이용객만 무려 1000만명이 넘게 된다. 통합 LCC의 매출 규모만 지난해 기준 2조원이 넘는다.
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인수해 1인자 자리를 굳히는 것은 물론 ‘국내 항공업계 2인자’까지 목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력한 인수전 경쟁자였던 에어프레미아와 에어인천, 이스타항공이 모두 발을 빼며 유일 입찰자가 된 만큼 인수 난이도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비싼 몸값과 코로나 이후 한 풀 꺾인 화물 수요로 비싸게 사놓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승자의 저주’에 얻어맞을 가능성은 걱정이다. 우선 화물사업부 가격만 넉넉잡아 7000억원 수준으로 보이는 데다 부채가 1조원 가량이다. 여기에 고용 승계 및 기체 유지보수 등 운용 비용들까지 더해지면 인수 비용이 어마어마해질 것이 예상된다. 지난해 9월 기준 제주항공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3455억원에 불과한 만큼 모기업인 애경그룹, 혹은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인수가 불가능한 상황.
한편 2위 티웨이항공은 양사가 내놓은 유럽 중복 노선을 이관받아 아시아나항공의 빈자리를 메꿀 진정한 2인자로서의 발돋움을 노리고 있다. 과거 EU 당국에서 양사 합병의 선제 조건으로 오는 6월부터 유럽 4개 도시를 운항할 새로운 항공사를 찾는 조건을 내건 만큼 생각보다 빠르게 합병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 유력한 상황. 업계에서는 당분간 티웨이가 장은 대한항공으로부터 장거리 운항이 가능한 항공기를 임대하고 운항승무원을 파견 받아 운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티웨이항공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21~23개의 유럽노선 슬롯이 이관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매출액은 정확히 산정이 어려우나,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해당 노선으로(주간21회 운항) 2023년 기준 연간 5300억원 수준의 매출액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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