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깎아내고 이승만 띄우고…3·1절에 ‘만주군’ 박정희까지

홍범도 깎아내고 이승만 띄우고…3·1절에 ‘만주군’ 박정희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3.1절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일 3·1절 기념사에서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역사를 독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의 확장이 통일”이라며 국경일 행사 연설에선 처음으로 통일을 본격적으로 언급했다. 이름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띄우는 한편, ‘자유를 확대’하는 통일로 독립운동 정신을 완성해야 한다는 논리로 흡수통일에 치우친 주장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무장독립운동과 외교독립운동, 교육과 문화독립운동을 열거하면서 “저는 이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역사가 대대손손 올바르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의 언급은 원론적이었지만, 이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배경 설명은 노골적이었다. 이 관계자는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그동안 과도하게 무장독립투쟁이 강조돼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제 치하에서 문학가도 있고, 교육가도 있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털어서 무장독립운동을 양성하고 키운,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가들도, 예술가들도 있다”며 “일제에 저항해서 무슨 무기를 들고 무장투쟁한 사람만 우리 독립에 기여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불거진, 대표적 무장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논란을 겨냥해 무장독립투쟁의 의미가 과도하다고 깎아내린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제 정치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세계 각국에서 외교독립운동에 나선 선각자들도 있었다”고도 했다. ‘선각자’는 미국 등에서 외교독립운동을 펼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윤 대통령은 “자본도 자원도 없었던 나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 고속도로를 내고 원전을 짓고 산업을 일으켰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도 추어올렸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결국 두 분(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을 시사하는 것인데 굳이 연설에 특정한 지도자 이름을 거명할 필요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날 윤 대통령은 “독립과 동시에 북녘땅 반쪽을 공산전체주의에 빼앗겼고, 참혹한 전쟁까지 겪어야 했다”며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의 확장이 통일”이라고 말했다.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내용상 흡수통일에 무게를 둔 것이다. 최근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북한에 맞대응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간 윤 대통령은 이전 광복절과 3·1절 등 국경일 행사 연설에선 통일을 크게 거론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북한 정권은 오로지 핵과 미사일에 의존하며, 2600만 북한 주민들을 도탄과 절망의 늪에 가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남북 경색 국면 해소를 위한 대북 제안 등은 담겨 있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세가지 원칙과 기계적인 3단계 통일방안이 있는데 여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철학과 비전이 누락돼 있다”며 “윤석열 정부의 통일관과 통일 비전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만들어져 지금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자주·평화·민주의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 3단계 통일방안이 담겼는데, 여기에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온 자유주의 철학·비전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권혁철 배지현 기자, 이제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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