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매달 아동 센터 아이들에게 생일잔치 열어준 양천구 ‘탕수육 할아버지’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의 한 아동센터에서 ‘탕수육 할아버지’ 원용록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분식집 사장 원씨는 17년째 매달 아동센터 아이들을 위해 생일 잔치를 열어주고 있다. /김영우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5시 서울 양천구의 한 아동 센터에서는 4월생인 윤모(12)양과 장모(15)양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생일상에는 탕수육과 떡볶이 30인분이 놓였다. 원용록(69)씨가 자신의 분식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이었다. 생일상을 본 아이들은 원씨를 보며 “할아버지, 맛있겠어요. 많이 먹을래요”라고 했다. 원씨는 “내 음식이 최고라고 해주는 아이들이 언제나 고맙고 든든하다”며 웃었다.
센터 아이들에게 원씨는 ‘탕수육 할아버지’로 불린다. 매달 갓 만든 탕수육과 떡볶이를 들고 아이들을 위한 생일상을 차려주기 때문이다. 이날 생일잔치에서 태권도복을 입은 한 학생은 “할아버지, 저 수학 100점 맞았어요”라며 원씨에게 시험지를 들고 달려갔다. 원씨는 “100점을 맞았으니 용돈을 줘야겠다”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 아이에게 줬다.
아이들을 위한 생일상은 지난 2007년 시작됐다. 원씨가 기초생활수급자와 한 부모 가정 아이들이 다니는 아동 센터에 “생일잔치를 열어주고 싶다”고 문의했다고 한다. 그가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건 자신도 가난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1995년 공예품 사업을 하던 원씨는 수억 원대 납품 계약금으로 받은 수표가 부도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1년 뒤 사업을 접고 길거리 포장마차를 열었는데, 이때부터 탕수육을 팔았다. 원씨는 “대부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내 포장마차를 찾아줬다”며 “사업이 망해 힘들어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언젠간 이런 사람들을 꼭 챙겨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지금 분식점이 자리 잡은 건 4년 뒤인 2000년부터다. 양천구 깨비시장에 분식점을 열었고, 이후 정착에 성공했다.
그는 분식집이 자리 잡으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옛 다짐을 실천하기로 했다. 특히 가난한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고 한다. 자신이 겪었던 가난을 어릴 적부터 겪는 아이들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어린이 후원 단체와 연락이 닿았고,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원씨는 “어떻게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 분식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생일잔치를 열어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일상이라도 차려줘서 아이들이 밝게 자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원씨의 선행이 알려지자 주변에서도 동참했다. 작년 5월부터는 깨비시장의 떡집 주인과 상인회장이 “같이 돕고 싶다”고 나섰다. 이들은 아이들 생일 때마다 떡과 케이크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 4시쯤 서울 양천구 깨비시장의 한 분식집에서 사장 원용록씨가 아동센터 생일잔치에 보낼 탕수육을 만들고 있다. /김영우 기자
아이들은 이런 원씨를 위해 지난 1월 ‘보은(報恩) 생일잔치’를 열었다. 사회복지사와 함께 케이크를 준비했고, 고깔모자를 쓴 원씨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아이들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생신 축하드립니다’ ‘생일잔치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원씨는 “아이들이 쓴 편지를 읽으면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줄 수 있게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원씨의 요즘 고민은 물가 상승이다. 아이들 생일상을 차리기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는 10년 동안 2000원이었던 탕수육 1인분 값을 3000원으로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원씨는 아이들을 위한 생일잔치는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원씨는 “내가 생일상을 차려준 아이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커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키운 자식처럼 기쁘다”며 “생일잔치는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인 만큼, 힘이 닿을 때까진 아이들을 위한 생일잔치를 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