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갑절’ 위스키값, 한국에서 유독 비싼 이유는? [ESC]
‘일본의 갑절’ 위스키값, 한국에서 유독 비싼 이유는? [ESC]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국을 오가기 어려웠던 그때 재미있는 여행상품이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해 외국 공항에 착륙하지 않고 출발한 곳으로 다시 회항하는 무착륙 국제관광비행 상품이었다. 탑승자는 비행기에서나마 그리운 국외여행의 맛을 볼 수 있었고, 면세점도 이용할 수 있었다. 이 여행상품은 국외여행객이 급감한 상황에서 항공·면세점 업계에 숨통을 틔워주기도 했다.
마침 그 무렵 ‘25년 더 베시 윌리엄슨 스토리’ 위스키가 인기를 끌면서 이 위스키를 사려고 무착륙 국제관광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이들이 있었다. 이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서부 아일라섬에서 200년 전통의 싱글몰트 스카치 증류소인 라프로익에서 생산하는 것이었다. 무착륙 국제관광 비행기를 타면 면세가 한도인 400달러(약 53만원) 밑으로 이 위스키를 구입할 수 있었다. 나도 이 여행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여러 사정상 실제 떠나지는 못했다. 국내 보틀샵에서 이 위스키에 붙은 200만원의 판매가를 보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대만 등 가까운 나라로 위스키 원정을 떠나곤 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길거리 마트에서도 국내에서도 인기 있는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1만7천~1만8천엔(약 15~16만원)대, 발렌타인 30년의 경우 3만~4만엔(약 27만~36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한국에선 조니워커 블루라벨이 30만원대, 발렌타인 30년을 70만원대에 판매하고 있으니, 엔화가 저공 행진을 하는 지금 일본에선 국내 판매가의 절반 이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다른 나라의 위스키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술에 매기는 세금은 술의 가격에 부과하는 종가세와 알코올 도수와 용량에 따르는 종량세,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영국·독일·일본 등 많은 나라는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세는 기본적으로 종가세 방식이다. 맥주·탁주에만 2020년부터 종량세를 적용하고 있다. 위스키 등 증류주의 경우 원가의 72%가 주세로 붙고, 주세의 30%가 교육세, 10%의 부가가치세가 부과된다. 원가가 비쌀수록 세금이 무거워진다. 모든 술에 종가세를 채택했던 1972년 당시 주세 정책의 핵심은 주류 중 가장 점유율이 높았던 희석식 소주였다. 외국기업의 제소와 국제무역기구(WTO)의 권고에 따라 모든 증류주의 주세가 72%로 단일화된 2000년 이전에 소주에 붙는 주세는 원가의 72%, 위스키·브랜디는 100%였다.
예전보다 고가 술에 대한 인기가 많아지고, 위스키를 포함해 국내에서도 다양한 증류주가 제조되고 있는 지금, 주세 체계를 종량세로 개정해야 한다는 소비자·생산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희석식 소주는 여러 술 중에 싸고 깔끔한 맛이 장점이다. 다만, 이 술을 위한 세금 정책 때문에 다양한 술들이 설 자리를 얻지 못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점점 주류 소비가 감소하고 있는 지금, 고부가가치의 더 좋은 술들을 생산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종량세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 2020년 맥주의 과세체계가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고 난 뒤 맥주 상품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국산 맥주의 소비가 활성화됐다. 국내에서 고부가가치 술 생산이 활성화되면 우리 술을 사러 원정을 오는 외국인도 많아지지 않을까.
글·그림 김성욱 위스키 블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