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구하기냐 정권 구하기냐…네타냐후의 줄타기

8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간 이들의 가족들과 지지자들이 이스라엘 정부에 인질 석방 협상을 우선시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라파흐냐 인질이냐”, “라파흐는 노(No), 협상은 예스(Yes)”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동의한 휴전안을 일축하고 탱크 등으로 라파흐 검문소를 장악한 하루 뒤인 8일(현지시각) 하마스에 잡힌 인질의 가족과 반전 시위대들은 텔아비브의 주요 도로를 막고는 시위를 했다. 이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인질 구출을 무산시킬 수 있는 라파흐 공격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부를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도 무시하고 라파흐 지상 공격을 고집하는 이유는 극우 세력이 포함된 연립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 등 내각의 극우파들은 하마스 박멸을 위해 전쟁이 지속돼야 하며 라파흐 공격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라파흐 공격을 포기하면 내각을 붕괴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인질 구출을 우선시하라는 가족 등 국내 여론과 라파흐 공격을 반대하는 미국의 압력도 받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라파흐 지상 공격의 첫 단계인 라파흐 검문소 장악에 나선 것은 정권 유지를 위한 라파흐 공격을 우선시하면서도 인질 구출을 완전히 무산시키지 않았음을 보이기 위한 시간벌기로 보인다. 하마스가 지난 6일 전격적으로 동의한 인질 석방 등 휴전안은 이스라엘이 이미 앞서 동의했던 휴전안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하마스가 요구하는 핵심인 영구 휴전은 일단 휴전 뒤 협상의 2번째 단계에서 “지속가능한 평온”이라는 언급으로 대체하고, 이는 이스라엘도 앞서 동의했던 문구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앞서 휴전 성사에 상관없이 라파흐를 공격할 것으로고 공언해, 휴전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하마스가 이스라엘이 동의했던 휴전안에 동의하자, 네타냐후는 갑자기 곤경에 처했다. 하지만, 전시 내각에서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전시 내각은 네타냐후 정부가 야권까지 포함한 전쟁 수행 논의 기구 설치 필요성에 따라 조직한 내각 속 내각이다. 전시 내각에 참여 중인 야당인 국가통합당 대표 베니 간츠가 휴전에 반대했다. 네타냐후의 경쟁자인 간츠가 하마스 휴전 동의를 일축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간츠도 본질적으로 대 하마스 강경파다. 현재 네타냐후에 비해 지지율이 높은 간츠는 휴전이 어차피 지속가능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는 강경파들에 구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네타냐후는 즉각 하마스의 휴전 동의를 일축하고는 라파흐 검문소를 장악하는 병력을 파견해 하마스에 압력을 가하는 한편 “실무” 협상팀을 “이스라엘에 수용가능한 조건에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을 소진하기 위해” 카이로로 파견했다고 정부의 한 관리는 언론에 밝혔다. 네타냐후는 휴전 협상을 깨기 위해 시간벌기에 나선 것이다.

네타냐후는 무엇보다도 휴전을 받아들이면, 극우파들의 이탈로 내각이 붕괴될 우려가 가장 컸다. 이때문에 네타냐후는 극우파들이 원하는 라파흐 공격을 으르면서, 휴전 협상도 지체 혹은 무산시키는 책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라파흐 공격을 으르거나 제한된 공격을 하는 양상은 미국 대선 때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스라엘군 장성 출신인 좌파 정치인 야이르 골란은 파이낸셜타임스에 “네타냐후는 앞서의 협상 시도를 무력화해왔고, 이는 전쟁 종식을 피하고 시간을 벌려는 방안일 뿐이다”라며 “핵심 문제는 네타냐후가 정말로 협상 타결을 원하냐는 것인데, 나의 결론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협상 타결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네타냐후가 정권 유지를 우선시하면서, 인질 석방이나 휴전은 번번히 무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