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 목수들의 목공소에선 드릴 소리가 안 난다

편집자주

베.테.랑.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무엇이 베테랑을 만드는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도구, 공들여온 시간, 오랫동안 지켜온 루틴이 그의 뒤에 있다. 차이는 결국 ‘한 끗’에서 결판난다. 베테랑을 완성시킨 그 한 끗의 디테일을 담는다.

이 여자 목수들의 목공소에선 드릴 소리가 안 난다

이 여자 목수들의 목공소에선 드릴 소리가 안 난다

경력 10년 차 목수 이정혜. 2017년부터 가구 브랜드 ‘도잠(dozamm)’을 이끌고 있다. 선박용 합판으로 가정용 가구를 만든다. 여자 혼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는 게 특징이다. 쓰는 사람의 필요에 맞게 배치와 용도를 바꿀 수 있는 구조를 고집한다. 이한호 기자

이 목수들의 공방에선 드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사, 못, 경첩과 같은 금속 부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0.01㎝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다듬은 판과 판을 유격 없이 꽉 채워 맞물린다.

드릴 대신 고무망치를 든 목수들은 전원이 여자다. 대개의 목수처럼 ‘자기 몸집보다 큰 통나무를 맨몸으로 떠멜 수 있는’ 근력의 소유자도 없다.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게 가벼우니까.

지름 105㎝의 4인용 식탁을 표준 체중 여성 혼자서 거뜬히 옮길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완제품을 만져본 고객들은 되묻는다. “어떻게 이렇게 가벼워요?”

이 여자 목수들의 목공소에선 드릴 소리가 안 난다

‘도잠’은 조선 목가구의 짜맞춤 방식으로 가구를 만든다. 500년 전 조선시대의 장인들이 쓰던 방식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게 만드는 기술로, 못과 나사가 필요하지 않다. 매우 까다롭지만 강력하게 나무를 결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한호 기자

무게만 가벼운 게 아니다. 원목으로 만든 시중 식탁 가격은 보통 200만 원을 넘기기 마련이나, 이 목수들이 만든 식탁값은 그 5분의 1 수준이다.

제품이 인기를 얻으며 ‘카피’ 제품도 등장했다. 고객인 척 쇼룸을 기웃거리는 경쟁업체 직원들도 적지 않다. 괘념치 않는다. ‘진짜는 훔칠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국내 가구업계는 ‘대량생산 박리다매’ 전략과 ‘하이엔드 초고가’ 전략으로 철저히 양극화돼 있다. 이런 가운데 ‘100% 수공업의 가구 공방’이 1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한 건 분명 이례적인 일. 누군가 노하우를 물으면 딱 다섯 글자 대답을 내놓는다. “지독한 정성, 그게 다예요.”

이 가구 공방의 이름은 ‘도잠(dozamm)’. 이곳을 이끄는 사람은 9년 차 여성 목수 이정혜(52)씨다.

이 여자 목수들의 목공소에선 드릴 소리가 안 난다

상단의 ‘기사 원문’ 보기를 눌러주세요. 도잠의 공방 풍경과 소리, 도잠의 가구가 만들어지는 과정, 이정혜 목수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등 더 다양한 자료와 함께 기사를 즐길 수 있어요. 커리업닷컴(careerup.hankookilbo.com) 바로 가기

베테랑의 도구 : 반전 소재, 합판이 열어준 길

그에게 목수는 일찌감치 포기한 꿈이었다.

“스물일곱 살 때 전통 목공을 배우다 그만뒀어요. 한심할 정도로 약한 제 몸으로 덤비기엔 턱도 없이 고된 일이었거든요.”

목수들의 세계에선 ‘근력이 곧 실력’이었다. 자기 몸의 두 배도 넘는 통나무를 둘러메고, 대패질도 몇 주에 걸쳐 반복해야 했다. 당시 그의 몸무게는 겨우 49㎏. 스스로 표현하길 ‘종잇장 같은 몸’이었다. 경사를 5분만 올라도 휘청거렸고, 피곤이 조금만 쌓여도 픽픽 쓰러졌다.

이 여자 목수들의 목공소에선 드릴 소리가 안 난다

24년 전, 공업디자인과에 입학할 때부터 물건에 매력을 느꼈다. 대학 입시 면접에서는 “아름다운 물건들이 좋고, 그런 물건들이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풍경이 좋다”고 대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가구였다. 이한호 기자

목수 일에 소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조각 공정에 들어가면 꼼꼼한 손기술이 자기 무대를 만난 듯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약한 몸이 가진 한계가 날이 갈수록 뚜렷해졌다.

목공 대신 선택한 업은 종일 한자리에 앉아 버티며 하는 일, 디자이너였다. 닷컴 버블 시대에 1세대 웹디자이너로 시작한 커리어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내 손으로 내 가구를 짓고 싶다’는 미련은 쉽게 떨쳐내지지 않았다. 밤새 차가운 빛을 내뿜는 모니터와 씨름을 하고 나면 공허해졌다. 몸의 감각이 고팠다. 손으로 감촉을 느끼고 코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재료의 물성이 그리웠다.

“디자인 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가구에 한눈을 팔았어요. 저는 디자인만 하고, 제작은 아는 목수들에게 맡겼죠. 그런데 실물을 받아보면 언제나 성에 차질 않았어요. 제 손으로 만져보고 고른 소재가 아니니 머릿속 모습과 너무 달랐던 거죠.”

한번은 집성목을 써서 문을 만들었다. 집성목은 작은 나무를 모아 붙여서 굵게 만든 목재다. 무게는 남자 셋이 들러붙어 옮겨야 할 정도였는데 덩칫값도 못 했다. 그 육중한 나무가 맥없이 휘어버릴 줄은 몰랐다. 보기에 예쁜 것도 잠깐. 한번 집안에 들이고 나면 쉽게 위치를 옮길 수조차 없었다. 사람이 가구에 갇힌 모양새가 그거였다. 매일 쓰는 가구는 눈이 아닌 ‘몸’에 맞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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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잠’은 그에게 패배라는 경유지가 없었다면 다다를 수 없었을 도착지다. 이한호 기자

실패를 거듭하고서야 알았다. 그가 만들 가구는 이래야 했다. 가벼울 것, 튼튼할 것, 저렴할 것.

막막했다. 하늘 아래 이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소재가 있기는 할까. 그러던 중 불현듯 떠올랐다. 싸고 튼튼한데 가구에서 본 적은 없는 소재, ‘합판’이었다.

냅다 유통 업체부터 찾아갔다. ‘합판으로 가구를 만들고 싶다’며 운을 뗐다.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되물었다. “미친 짓이라는 걸 본인도 알지?” 가시가 툭툭 불거지는 싸구려 건축용 자재를 가정용 가구에 쓰겠다고 찾아온 사람은 아무래도 그가 처음인 것 같았다. 주눅 들지 않고 한술 더 떴다. “조선 목가구처럼 ‘짜맞춤’을 하고 싶어요.” 사장님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빈손으로 되돌려 보내진 않았다. 서로 다른 종류의 합판 몇 장을 쥐여줬다. ‘일단 써보기나 하라’면서. ‘네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깨우치란 얘기였다.

이 여자 목수들의 목공소에선 드릴 소리가 안 난다

그는 “국내 자재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합판 중 써보지 않은 제품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자신이 만들 가구에 가장 적합한 자재를 찾으려고 테스트해 본 합판만 스무 가지가 넘는다. 이한호 기자

잘라보고, 갈아보고, 칠해보고, 말려봤다. 나중엔 시중에 나온 합판이란 합판은 모두 가져왔다. 예쁘다 싶으면 짓물렀고, 좀 튼튼하다 싶으면 친환경 자재인증 등급이 낮았다. 결과는 모조리 실패.

합판을 스무 번쯤 갈아 치우고 나니, 더 시도해 볼 물건도 없었다. 다시 업체로 달려가 매달렸다. “진짜 이게 다예요? 저한테 안 보여주신 거 없어요?” 사장님은 망설였다. “딱 한 개가 남긴 했는데…” 노련한 목수들도 두 손 두 발 들고 나가떨어진다는 악명 높은 자재였다. “나뭇결은 참 예쁘지?”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덥석 받아온 이 나무가, 그에겐 운명적 도구가 됐다. ‘마린 합판’이다. 합판이라고 하면 으레 가구용 자재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환경부 환경마크 인증 기준인 E0 등급을 받은 마린 합판이 있었다.

“‘마린’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잠수함이나 배의 내장재에 쓰이는 특수 자재예요. 9㎜ 정도로 아주 얇은데, 강도는 엄청나요. 가공할 때 자칫 잘못하면 금속 날이 뭉툭하게 갈려 나갈 정도죠. 직접 써 보니 왜 목수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는지 알 법하더라고요. 듣던 대로 사나운 물성이었어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6개월을 절박하게 매달린 끝에 내 것으로 만들었다. 자신만이 다룰 수 있는 도구가 된 것이다. 도잠의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독자적 기술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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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작업에 쓰이는 스테인(목재의 나뭇결을 살려 채색할 수 있는 마무리 재료)은 유아용 가구에도 쓰이는 도료를 택했다. 수십 개의 제품을 써보고 깐깐하게 골랐다. 이한호 기자

자신들만의 제작 공정도 만들었다. 약한 몸의 한계로 목공을 포기해야 했던 25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큰 힘이 필요한 재단은 CNC 가공 기계(컴퓨터 수치 제어 자동화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했어요. 합판은 표면이 얇고 가볍기 때문에 여자 혼자서도 들어 올려 기계에 넣을 수 있거든요. 우리 공방의 목수들은 저를 포함해 8명 전원이 여자죠.”

오랜 시간 남자들이 전유해 온 이 분야에 ‘여성의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새 길을 낸 거다. 소재가 가벼운 ‘합판’이 되었기에 가능해진 일이기도 하다.

도잠이란 공방의 이름에도 그런 정체성이 담겼다. 도잠은 옛 중국 시인 도연명의 본명이다. 도잠이 쓴 유명한 시 ‘귀거래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무릎 하나 들일 작은 집, 이 얼마나 편안한가.” ‘그런 집에 알맞은 작고 가벼운 가구를 만들자.’ 그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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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맞춤 방식으로 가구를 만들 때는 힘을 잘 빼야 한다. 있는 힘껏 내리쳤다가는 판과 판이 맞물리지 않고 엇나간다. 이한호 기자

베테랑의 루틴 : 스케치 대신 글쓰기

보통의 디자이너들은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스케치를 한다. 시각적 이미지로 사고한다는 뜻이다. 머릿속에 있는 형태를 먼저 꺼내고, 그 형태를 구현해 줄 ‘재료’를 찾아 나선다. 그가 디자이너로 사는 30년 동안 유지한 ‘루틴’은 조금 달랐다.

“스케치가 아니라 글쓰기를 하죠. 형태를 정하기 앞서 ‘논리’부터 세우는 과정이에요.”

가구를 만들 때도 그 루틴을 적용했다. 가구를 만들기로 했다면 집에 대한 질문부터 한다. ‘현대 도시인들은 어느 정도 크기의 집에 사는가?’ 답을 써 내려간다. ‘1인당 평균 30㎡(9평) 정도의 작은 집에 산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작은 집에 필요한 가구는 어때야 하는가?’ 답은 이어진다. ‘작은 집의 크기에 알맞아야 한다’, ‘가볍게 옮길 수 있어야 한다’,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조합을 통해 여러 가지 용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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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잠’의 소가구들을 적층하면, 또 하나의 새로운 가구가 된다. 수납장, 장식장으로도 쓸 수 있다. 이한호 기자

“물건의 쓰임에 스스로 묻고 답하는 거예요.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깊어지게 되죠. 왜 이 소재로 만들어야 하는지, 왜 이런 모양이어야만 하는지… 스스로 논리를 구축하는 거예요.”

한때는 그도 스타일에 욕심을 냈다.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만든 물건을 집에 들여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만드는 사람의 자아가 강하게 들어간 형태는 평범한 일상에 스며들기 어렵다는 것을.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디자이너 일을 할 때처럼.

도잠의 오프라인 쇼룸을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쇼룸에 왜 올까. 제품의 실물이 궁금해서일 테다. 가구는 충동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결정이 쉬운 물건이 아니니까. 그러니 쇼룸을 방문한 고객에게 다가가 판매를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브랜드를 알리는 공간, 물건을 파는 건 ‘부차적 목적’이다.’

떠오르는 질문에 따라 글을 쓰다 보니, 접객 방향도 명확해졌다. ‘고객이 먼저 다가올 때까지 물러서서 기다린다’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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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직접 쓴 ‘도잠’의 설명서. 이 한 장의 종이가 유일한 마케팅 도구다. 박지윤 기자

도잠의 유일한 마케팅 방법 역시 ‘A4 한 장’이다. 약 1,000자 분량에 도잠의 기술, 디자인, 제작 방식, 브랜드 정체성을 담았다. 단출하지만 명료한 글이다. 완성된 제품을 포장할 때 한 장씩 끼워 넣는다. 한번 선택해 준 고객이 다시 오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그 외의 광고는 하지 않는다.

“딱 이 한 장의 종이가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에요. 우리가 이 가구에 어떤 진심을 담는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거든요. 메시지는 충분해요. 어떤 브랜드인지 모르고 ‘그냥 예뻐서’ 구매한 고객들도 이 글을 읽고 나면 그 진심을 알게 되겠죠.”

이 한 장의 글을 읽고 도잠의 충성 고객이 된 이들이 적지 않다.

‘행복한 삶에 필요한 건 큰 집과 많은 물건이 아닌 마음의 평화가 깃든 집과 늘 손이 가는 정든 물건들이겠지요. 그렇게 삶에 꼭 필요한, 본질에 가까운 물건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가 쓴 메시지는 복잡하지 않다. 진심은 간결한 문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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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잠’이 만든 가구들. 고객의 필요와 기호에 맞게 디자인부터 함께 구상한다. 세 마리의 고양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특대형으로 제작한 캣타워, 하단에 책을 꽂을 수 있도록 만든 거실용 소파, 고객의 취향을 고려해 강렬한 원색의 도료를 쓴 수납장, 포스터와 엽서 등 지류 상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만든 트롤리까지 변주는 무궁무진하다. 도잠 제공

베테랑의 시간 : ‘지금’이 아니면 없는 것

그는 살면서 창업만 세 번 했다. 뭔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망설이지 않았다. 그냥 저질렀다.

스물다섯 살에 차린 디자인 회사 ‘베가 스튜디오’는 눈부시게 성공했다. ‘닷컴 버블’이라는 호재가 끊임없이 기회를 물어다 줬다. 국내 최초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 포털 사이트 ‘프리챌’ 등의 최초 버전을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분야를 넓혀 기업 브랜딩, 출판 편집 디자인까지 진출했다. 입소문을 타고 일이 밀려들었다. ‘앞으로도 내가 하는 일이 실패할 리는 없다’고 믿었다.

오산인 게 당연한 일. 마흔한 살에 차린 수공업 장터 플랫폼 ‘소생공단’이 허무하게 실패했다. 공예품을 만드는 소규모 생산자들이 직접 자기 물건을 올리고 직판할 수 있는 온라인 이커머스 플랫폼을 꿈꿨다. 전 재산을 털어 전자 상거래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노력이 허무할 정도로 매출이 저조했다. 투자한 돈이 줄줄 녹는 시간이었다. ‘실패할 리 없다’는 믿음은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에 불과했단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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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살에 딸을 낳으며 그의 삶은 변했다.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는 한동안 아팠다. 그 역시 산후 후유증을 심하게 앓으며 집에 눌러앉게 됐다. 10년 넘게 유지해 오던 디자인 스튜디오도 문을 닫아야 했다. 당시로선 막막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도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우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을 테다. 이한호 기자

이 실패를 만회하려고 벌인 세 번째 창업이 ‘도잠’이다. 합판을 찾는 여정이 절박한 생존투쟁이기도 했던 이유다. 누군가는 오해할 만하다. ‘일을 벌일 기력이 차고 넘쳤던 것 아니냐’고. 실상은 어떨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침대에 누워 있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신체 장기가 선천적으로 약했거든요. 조금만 뛰어도 숨이 넘어가 버릴 것 같고, 여기저기서 예고도 없이 자주 쓰러졌죠. 가끔 몸 상태가 괜찮은 날엔 남들의 3, 4배를 움직였어요. 공부도 배로 하고, 놀기도 배로 놀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적으니까. ‘기회가 주어지면 망설이지 말고 잡아야겠다’, 그런 자세였나 봐요.”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삶에서 ‘미래 시제’가 사라졌다.

“서른 살쯤이었나. 교통사고 직전에 목숨을 구하며 임종 체험을 한 적이 있어요. 인생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도 같은 체험을 했죠. 몇 초 만에 내 인생을 돌아보는데, 신기하게도 아쉬운 게 없더라고요. 이것보다 더 최선을 다해 살 수는 없었겠구나 싶더라고요. 당장 삶이 끝난다 해도 억울한 게 없었죠.”

‘나중은 없다’는 삶의 태도가 확고해진 계기다. 삶의 유한성을 깨닫자, 전보다 대범해졌다.

“원래도 뻔뻔했던 사람이 더 뻔뻔해진 거죠.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죽겠다’는 마음으로 언제나 직진하는 거예요. ‘뒷감당은 어쩌지?’라는 생각은 안 해요. 제가 가진 가장 강한 힘은 아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일 거예요.”

베테랑의 한끗 : 일을 쪼개지 않는다

-당신을 베테랑으로 만든 ‘한 끗’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공방의 모든 목수가 재단부터 포장까지 자기의 손으로 직접 할 수 있게 가르친 것, 그게 제 한 끗이라고 생각해요.”

-분업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샌딩을 잘하는 사람은 샌딩만, 칠을 잘하는 사람은 칠만 할 수도 있겠죠. 당장의 생산성은 올라갈 거예요. 더 많은 주문을 더 빠르게 처리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이런 환경에선 사람을 키우지 못해요. 장인을 만들 수 없는 거죠.”

이 여자 목수들의 목공소에선 드릴 소리가 안 난다

‘도잠’의 여성 목수들은 전원 파트타이머이자 ‘N잡러’이다. 일주일에 2, 3번 공방에 출근한다. 같은 날 출근한 목수들끼리 그날 하나의 ‘팀’이 돼 일한다. 이한호 기자

-효율성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거네요.

“세상의 모든 일은 쪼개기 시작하면 재미가 없어져요. 재미가 없어지면 자기 일을 좋아할 수도 없겠죠.”

그는 신입 목수가 들어오면 재단부터 샌딩, 칠, 조립, 폴리싱, 포장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가르친다. 아무리 짧아도 6개월이 걸린다. 그뿐인가. 8년간 공방의 목수들이 함께 쌓은 노하우도 정성껏 전수한다. 처음엔 각각의 기술이 더디게 늘지만, 전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나면 무서운 속도로 숙련도가 붙는다는 걸 체험했다. 모든 과정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명의 목수가 다른 이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도 하나의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게 한다. 잘하게 되면, 좋아하게 된다. 좋아하게 되면 더 잘하게 된다. 성장의 나선효과다.

누군가 도잠의 제작 비법을 묻는다면 대단할 게 없다. ‘지독한 정성’이 전부다. 가공 과정에서 생기는 합판의 가시를 어떻게 해결했냐는 구체적 문의도 많다. 난처하다. 달리 묘수가 있는 게 아니어서다. 그냥 ‘사람이 하나하나 매만진다’는 게 방법이다. 남들 같으면 귀찮다고, 번거롭다고 하지 않을 일을 그냥 기꺼이 하는 거다.

“7명의 목수들이 만든 완성작들을 검수하다 보면, 제각기 다른 성향이 그대로 보여요.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도 보이고요. 개중엔 실력은 부족할지라도 생산자로서의 마음이 훌륭한 사람들이 있어요.”

-훌륭한 마음이란 게 뭔가요.

”물건에 애정을 싣는 마음이겠지요. 내가 만든 이 물건이 다른 사람의 삶 속에 들어갔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려는 마음, 잘된 부분도 잘못된 부분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 애정 어린 마음이란 게 그런 거예요. 제가 기술은 가르칠 수 있어도, 이런 마음은 못 가르쳐요.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기술이 더디게 늘어도 기다려 주죠. 잘 해낼 걸 아니까요.”

내가 만든 물건을 100%의 정성으로 섬기는 이 마음이야말로, 베테랑 이정혜의 숨겨진 한 끗이 아닐까.

잠깐, 나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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