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전공의 떠나자 지역 공공병원 환자 늘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최현규 기자
60대 신모씨는 80대 어머니의 고관절 수술을 위해 8일 서울 서대문구 적십자병원을 방문했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신씨는 별다른 기다림 없이 입원 수속을 밟았고, 곧바로 어머니의 수술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신씨는 “동네 개인병원에서 고관절 골절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바로 적십자병원으로 왔다”며 “다른 대형병원은 집단행동으로 대기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따로 문의도 하지 않고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신씨는 신촌세브란스 등 인근 대형병원을 주로 이용했지만 적십자병원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같은 병원에서 만난 권모(63)씨도 의사 집단행동 사태 이후 처음 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권씨는 현재 암병동에 입원 중이다. 그는 “6인 병실에 입원 중인데, 3명이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전원 온 환자들”이라며 “검사와 수술 일정이 지연되면서 빨리 받을 수 있는 적십자병원으로 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의료계 집단행동 여파로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등 대형병원의 환자 수용 능력이 떨어지자 일부 환자들이 지역 내 공공병원을 찾고 있다. 전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한 상급종합병원의 입원환자는 5월 첫째 주 기준 2만1977명으로 집단행동 이전인 2월 첫째 주 대비 66%에 불과하다. 병상가동률이 떨어지자 환자들이 공공병원과 종합병원 등을 찾는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의 한 공공병원 관계자는 “의료계 집단행동이 시작된 2월에 비해 3월에 병원을 새롭게 방문한 환자가 9~10% 늘었다”고 밝혔다.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역시 진료 인원이 늘었다. 병원 관계자는 “5% 정도 환자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서울 동부병원도 야간진료 환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전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공공병원일수록 환자 수용 여력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공공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비율이 높은 공공병원의 경우 의료계 집단행동 이후 전공의 이탈 비율이 커 환자가 오히려 줄어든 곳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규모가 작거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의 공공병원은 의료계 집단행동 이후에도 환자가 뚜렷하게 늘지 않았다. 전남 목포시의료원은 “유의미한 환자 수 변화는 없다”며 “대형병원이 주로 담당하는 중증 환자를 수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남 마산의료원 관계자도 “외래진료는 전혀 늘지 않았다”며 “평일 환자가 0명일 때도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재난 상황과 평상시를 막론하고 공공병원으로 환자가 골고루 분산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좋은 위치와 충분한 규모 및 인력, 적정한 진료 등이 우선 갖춰져야 한다”며 “정부의 지원을 통해 국민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선영 차민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