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상향 사다리’ 강화하겠다는 정부…근본 개선은 미흡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 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최근 경제 지표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1일 정부가 발표한 ‘사회이동성 개선 방안’은 우리 사회의 일자리 상향 이동의 사다리가 약화됐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과 미래 소득에 끼치는 영향력이 확대됐고, 출산·육아 부담이 집중된 30∼40대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낮은 점도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게 정부 진단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청년고용올케어’ 플랫폼 구축과 육아휴직·출산휴가 제도 강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취업 졸업생에게 이력 관리와 취업·진로 상담을 해주는 직업계고 거점학교(현재 전국 17개)를 확대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 고졸채용 만점 기준(현행 8%)을 높여 적극적인 고졸채용을 유도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 중에는 채용절차법을 개정해 민간기업에 근로조건 정보 제공 노력 의무를 부여할 계획이기도 하다. 군인의 원활한 사회 진출을 위한 장병내일준비적금의 납입한도·매칭지원금은 현재 월 최대 40만원에서 내년부터 55만원으로 늘린다.
저소득층 우수 학생을 발굴해 지원하는 제도인 ‘꿈사다리 장학금’ 지원 대상을 현재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부터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연계 장학금인 ‘희망사다리 장학생’을 선발할 때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이 우선 선발되도록 관련 제도를 개편할 방침이기도 하다.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세제 감면 등을 받을 수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올해 하반기 중 전면 개편한다고도 밝혔다. 현재 아이에스에이는 중개형, 신탁형, 일임형으로 구분돼 있는데 이런 유형별 구분을 통합해 소비자 선택권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1인 1계좌 원칙을 폐지하고, 수수료뿐 아니라 아이에스에이 제공 상품 목록 등도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 개편안 등이 추후 구체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아울러 정부는 부부 합산 1주택 이하 기초연금수급자가 10년 이상 장기보유한 주택·토지·건물 등 부동산을 매각한 뒤 양도차익을 연금계좌에 납입하면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부동산 연금화 촉진 세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세제 혜택 내용은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구체화하고, 내년 상반기 제도를 시행하는 게 목표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사회이동성 개선 방안 등을 통해 미래세대가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경제구조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존에 운영 중인 관련 제도를 강화·보완하는 데 그쳤고, 사회이동성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까지는 못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사회이동성 지수 2020’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사회이동성 역량이 100점 만점에 71.4점(주요 82개국 중 25위) 수준인데, 세부 항목 중 노동 조건(61점·36위)과 사회적 보호(55점·45위), 공평한 임금 분배(42점·56위) 등에선 다른 나라에 견줘 취약한 편이다. 그러나 이날 대책에는 이런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방안이나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 강화 대책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육아휴직 급여 확대 등의 지원 강화는 고용보험 가입자만 대상으로, 가입률이 절반에 그치는 비정규직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남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정책 키워드로 제시한 ‘사회이동성 개선’과 ‘역동경제’가 윤석열 대통령이 이끄는 범정부의 차원의 정책 기조로서 기능할지를 두고도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윤석열 정부는 재정의 역할을 축소하고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는 세금은 부담을 완화하는 데에만 초점을 둬왔다”며 “취임 이후 줄곧 지향해온 ‘작은 정부’를 고수해왔는데, 그런 지향을 유지하면서 사회이동성을 강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환욱 기획재정부 경제구조개혁국장은 전날 열린 기자 설명회에서 “이번 대책은 첫번째 사회이동성 개선 방안으로, 달리기에 견주자면 ‘워밍업’을 하는 단계”라며 “성과가 날 때까지 지속해서 추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