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처벌 불가피…행동 성급했다” 24년 전 ‘파업 선배’의 호소

“전공의 처벌 불가피…행동 성급했다” 24년 전 ‘파업 선배’의 호소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고 근무 중단을 선언한 전공의 대표들이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2000년 의약분업에 반발하며 의료계 파업을 이끌었던 선배 의사가 최근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과 병원 이탈을 이어가고 있는 전공의들을 향해 성급한 행동이었다며 “투쟁하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정부와 대화하라”고 조언했다.

권용진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23일 페이스북에 ‘전공의 선생님들께’로 시작하는 글을 올리고 이같이 밝혔다. 권 교수는 일반의이자 ‘의료법학’을 전공한 법학박사로, 의약분업 당시 의협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 총괄간사를 맡아 투쟁을 주도했고 이후 의협 대변인도 지냈다.

그는 정부가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보건의료재난 경보단계를 위기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데 대해 “위기단계 격상은 정부가 상당한 수준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므로 강력한 행정처분을 빠르게 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것은 협박이 아니고 단지 사실일 뿐이고, 주동자 구속과 별개로 여러분 중 상당수가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처분은 기록에 남아 향후 의업을 그만둘 때까지 따라다니게 된다”며 “우리나라 의사 면허를 가지고 해외에 취업하려는 경우 서류에 ‘의료법에 의한 행정처분’이 남아 치명적인 제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20여년간 의료계 투쟁에 앞장섰다는 분들은 형사처벌은 받았지만, 김재정 회장과 한광수 회장 두 분을 제외하고 의료업에 대한 제한은 받지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또 “여러분의 사직이 인정되더라도 현행 의료법에 따른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국내 법체계상 전공의들이 의료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헌법 제36조 제3항’에 국가의 보건 책무를 명시하고 있는 국가”라며 “명시적 조문이 없다면 업무개시명령이 국가가 의사들의 직업선택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위헌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 조항 때문에 이길 확률은 낮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특히 “전공의의 근로조건에 대한 경우는 민법 660조 제2항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겠으나, 여러분이 정상적인 사직절차를 밟지 않고 사직서 제출 후 바로 병원에서 나갔다는 점이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면서 “단순한 사직으로 해석되기 보다 목적을 위한 행위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 의료법상 행정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공의 처벌 불가피…행동 성급했다” 24년 전 ‘파업 선배’의 호소

서울 대형 종합병원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 중단에 돌입했다.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병동에서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아울러 그는 본인의 경험을 들어 의료계 선배들이 무언가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의협 상근이사로 일할 당시 시위를 주도했다가 교육부로부터 고발당해 벌금형을 받았으나, 의협에서 받은 건 소송 비용과 벌금을 내준 게 전부”라며 “의료계 선배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여러분 스스로 결정하고 피해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권 교수는 ‘선배 의사이자 교수로서’ 후배들의 근무 환경이 고통스럽다는 점을 이해한다면서도 “이런 현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란 점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의사로서 전문성에 대한 법적·사회적 처우는 면허를 받은 개인의 행동을 무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직업적 윤리’를 생각해 달라고 했다. 사직서를 제출하자마자 병원을 떠난 것은 의협의 의사윤리 지침에 있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고 있는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어 “여러분의 스승이 여러분이 당장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을 부추기거나 격려했다면 그분들은 여러분을 앞세워 대리 싸움을 시키고 있는 비겁한 사람일 수 있다”고도 꼬집었다. 그는 현 상황은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근무지 무단이탈’에 해당할 수 있다며 거듭 우려를 표했다.

권 교수는 “의업을 포기한다면 여러분의 선택이겠지만, 계속 의업에 종사하고 싶다면 최소한 의사로서 직업윤리와 전공의로서 스승에 대한 예의, 근로자로서 의무 등을 고려할 때 여러분의 행동은 성급했다”며 “진정으로 의업을 그만두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하고 정상적인 퇴직 절차를 밟고 병원을 떠나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투쟁하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내용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정부가 고민하는 국가의 문제들에 대한 더 나은 정책 대안을 갖고 정부와 대화하시기를 바란다”면서 “그것이 급속성장의 부작용에 직면해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전문가가 해야 할 역할이고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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