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대비된 '젊은 노인' 늘자 빈곤율 하락…"노인 빈곤 프레임 벗어나야"

“미래 노인들은 지금 노인보다 상당히 여유 있는 부분이 많다. 국민 연금액도 많고 더 많은 자산도 가지고 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열린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 숙의 토론회에서 “지금처럼 (기초연금 수급 기준) 70%를 고수하는 대신 소득 기준으로 중간 정도로 지급 기준을 변경하면 지급 대상이 줄고 더 빈곤한 분들에게 더 많은 급여를 줄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2020년 기준 40.4%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회원국 평균 14.2%의 3배에 달하는 한국의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기초연금의 수급 대상은 점차 줄이는 대신 저소득층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3일부터 14, 20, 21일까지 4일 간 열린 숙의토론회 내내 소득보장파와 재정안정파는 ‘노인 빈곤율’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리 싸움을 펼쳤다.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는 그동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여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는 소득보장파의 핵심 논거로 활용돼왔다. 노인 10명 중 4명이 빈곤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소득대체율 인상은 ‘필수조건’이란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재정안정파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노인 빈곤율을 이유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현상의 절반만 보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김수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21일 토론회에서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2014년 33.1%였던 65~69세 노인의 빈곤율은 2021년 21.7%로 떨어졌다.

전체 노인의 빈곤율은 2014년 47.1%, 2021년 37.7%에 달했는데, 소위 ‘젊은 노인’들의 빈곤율은 그보다 16%포인트 가량 낮았고, 그 안에서도 7년만에 11.4%포인트가 하락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해 9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소득과 자산으로 진단한 노인빈곤과 정책방향’ 보고서에도 나타난다. KDI 분석 결과 2021년 기준 1940년대 이전 출생 노인의 빈곤율은 40~50%대지만 50년대 전반 출생으로 가면 27.8%, 50년대 후반생으로 가면 18.7%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년대 이후 베이비붐 세대는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기와 함께 자산을 불려왔고, 1988년 출범한 국민연금 등을 통해 노후를 대비할 수 있었던 세대다. KDI 분석 결과 처분가능소득 기준 노인빈곤율은 2016년 43.6%에서 2021년 37.7%로 떨어졌다. 감소 요인을 세부적으로 분석해본 결과 소위 ‘덜 빈곤한 세대’ 노인의 증가에 따른 빈곤율 감소 효과는 5년 만에 7.5%포인트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연금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국민연금공단 통계연보에 따르면 현행 75세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 중 가입기간 20년 이상인 경우는 1000명 이하 수준이다. 하지만 현 60~70세에선 40만명, 50~60세에선 45만명으로 장기 가입자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김수완 교수는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40%에 달하는 노인빈곤율만을 기준으로 미래세대에 재정 부담을 전가하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이뤄져선 안된다는 것이다.

빈곤율이 ‘자산’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가구 평균 총자산은 2016년 3억5000만원에서 2021년 5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중 82.4%가 부동산으로, 미국(38.7%)와는 차이가 크고 유럽(60~70%)보다도 높다. 한국 노인들의 자산 대부분이 소득 창출이 어려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뜻이다.

KDI가 순자산을 소득으로 환산해 계산해보니 노인 빈곤율이 7~8%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자산을 연금화해 자산을 맡기고 연금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14~16%포인트까지 빈곤율이 떨어진다.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10명 중 4명이 빈곤하다”는 것은 해외와는 다른 한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란 것이다.

이 때문에 재정안정파 전문가들은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기보단 저소득층의 가입 기간을 늘리고 기초연금을 두텁게 보장하는 것이 낫다고 강조한다.

공론위에 따르면 소득대체율 50%로 인상 시 평균소득자(254만원·30년 가입)의 예상 월 연금액은 76만2000원에서 95만2000원으로 19만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가입 기간이 30년인 평균 근로자를 가정한 수치로, 현재의 가입 기간 기준으로 소득 하위 40%의 연금 증가분은 월 6만원에 불과하다.

재정안정파 전문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저소득자일수록 가입기간이 짧다보니 소득대체율을 높여도 혜택이 적은 것”이라며 “재정으론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해 가입 기간을 늘려주고 기초연금도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받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다”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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